[과제] 정치합시다

기사작성 실습

by 써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모두들 익히 들어봤을 법한 구절이다. 이는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가상 상태로 극도의 혼란과, 불안의 상태를 일컫는다. 홉스는 이러한 상태를 벗어나 자기보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합리적인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하기 위해 국가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도록 국가를 잘 다스리는 일을 우리는 정치라고 한다.


그렇다면 국가를 수립한 현대사회의 우리는 홉스가 말한 투쟁상태에서 벗어나 있는가? 과연 원활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언젠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전체적 줄거리는 희망 없이 암담했다. 주인공인 수남은 어렸을 때 이미 자격증을 14개나 취득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으나, 컴퓨터가 그녀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그녀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 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머지않아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린 그녀의 남편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고 수남이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이후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며 대출까지 받아서 자가 마련을 꿈꿨지만, 갈수록 불어나는 대출금에 현실은 더욱 암담해진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남편 또한 자살시도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고,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수남에게 의사는 존엄사를 권유한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자가 마련은 멀어져 가는 역설적인 삶. 손가락이 잘려 당장 수술비가 필요하지만,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하고 직장을 잃게 되는, 돈이 없으면 생명까지 담보로 내놔야 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불행한 모습은 당장의 우리 사회와 멀지 않게 느껴진다. 투기지역 지정, 청약, 대출 규제등으로 집 값 하락을 유도하는 정부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빗발치는 집 값. 수출 잘되는 대기업을 만들기 위한 중소기업 역량 가로막기 정책.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노동자의 40%이상이 비정규직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져있는 비정규직 문제등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과연 내가, 아니 우리가 또 다른 수남으로 자리매김 되지 않으리라고 자신 할 수 있을까.


최근 관심있게 본 기사들 중 13살 촉법소년들이 배달 아르바이트 생을 차로 치어 사망에 이르게했지만, 만 14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로 형사 처분이 어렵다는 사건. 또한 여성의 성착취물을 제작, 배포함으로써 여성 인권 유린을 한 일명 ‘n 번방’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공분하게 했다. 이전의 사회 정치체제만으로는 우리의 기본적 권리가 충분히 지켜지지 않을 수 있음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화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단적인 사건만으로도 앞서 던진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투쟁 상태에 있으며 우리 사회의 정치는 완전하지 못하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했다. 하지만 그렇게 공표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3.15 의거, 4.19 사건, 5.18 광주 민주화, 6.10 민주항쟁등을 통해 끊임없이 민주화를 꿈꿔왔다. 고쳐 말하자면 앞서 말한 사건들에서 살펴 볼 수 있듯 우리는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등이 완전히 보장되는 나라를 아직 마주 하지 못했으며 갈망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현대사회의 복잡한 사회갈등과 개개인의 이익을 모두 고려하기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가 소망하는 더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가들을 내세우고 그들에게 제도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을 일임한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 뿐만이 아닌 우리의 권리, 삶을 바꾸는 것과 다름 없다.


오는 4월 15일 총선이 실시된다.


후보자들은 가지각색의 선거공약을 내세우지만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변화’.


앞서 살펴 봤듯이 우리가 꿈꾸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존 사회의 모순을 없애는 변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변화가 나에게, 우리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결국 ‘나’만이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위기감을 갖고 나와 정치에 대해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수동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수남으로 안주할 것인가. 계몽된 인간으로서 더 나은 시민사회를 구축할 것인가. 정치는 국가 원수, 정치가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하는 것, 즉 4월 15일 이후로 새로운 정치체제가 거듭날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결국 우리로부터 도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끝 맺는다.


‘정치합시다.’



기사 작성 실습 '나와 정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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