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계약 협의가 시작된 후 달라지는 요구사항

by 써니

PART 2. 계약 전에 이미 시작된 일들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내부 결정이 내려지면 초반에는 계약 조건과 일정, 내부 절차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제안서에는 없던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기능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운영 쪽에서는 이런 부분도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제안서에는 없었지만, 당연히 포함되는 거 맞죠?”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라기보다, 그동안 굳이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이제야 나오기 시작한 경우에 가깝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합의가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말해도 되는 단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점의 요구사항은 ‘추가 요청’이라기보다, 진행을 전제로 다시 꺼내진 내부 판단에 가깝다.


문제는 이 요구들이 제안서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추가 요구사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순간부터, 이후에 등장하는 요구는 추가 요청이 아니라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었어야 할 요소로 이해되기 쉽다.


기획자는 이 지점에서 처음으로 압박을 느낀다. 이 요구가 정말 새로운 것인지, 아니면 제안 단계에서 문서로 정리되지 않았던 이야기인지. 그리고 지금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일정과 구조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하게 된다.


문제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는 데 있다. 제안서는 이미 제출되었고, 프로젝트는 사실상 시작 단계로 인식되고 있는데, 계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다. 이 애매한 구간에서 기획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과 ‘이미 진행 중이다’라는 현실 사이에 서게 된다.



이 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제안서 이후에 등장하는 요구사항은 항상 범위를 넓히려는 의도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요구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정리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프로젝트는 아주 이른 단계부터 명확한 기준 없이 진행되게 된다.




다음 장에서는, 계약이 체결된 이후 말의 무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계약 전에 오갔던 이야기들이 어떻게 기준이 되어 돌아오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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