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반전노래 3-행운을 빌어요, 여름날(페퍼톤스)
당신이 페퍼톤스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됐어. 우리 만난 지 꽤 오래되었고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아직 당신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나봐.
속초 다녀온 날, 차가 많이 막혔고 오랜 운전에 지친 당신이 투정 부리듯 말했지.
"페퍼톤스 노래가 듣고 싶어."
당신은 장난기 넘치는 눈으로 덧붙였지.
“근데 캠퍼스 커플이라는 노래 가사 정말 웃기다. 반전이 있어.”
막상 들어보니 캠퍼스 커플 뿐 아니라 다른 노래에도 반전이 있었어. 캠퍼스 커플이 귀엽고 재미있는 반전이라면 ‘행운을 빌어요’ 나 ‘여름날’ 은 슬픈 반전이었지. 세 노래 다 페퍼톤스 특유의 활기와 밝음이 느껴진다는 공통점이 있었어. 뒤의 두 노래는 가사에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그냥 밝고 귀여운 사랑노래로 느껴지기까지 해.
‘행운을 빌어요’를 들으니 우리의 이별 장면이 바로 떠올랐어. 마치 이 노래의 작사가가 당신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별했을 때 당신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지.
당신과의 이별이 첫 이별은 아니었어. 나는 그 때까지 이별을 떠올리면 눈물, 슬픔, 애원, 고통 같은 단어들이 생각났어. 하지만 그날 당신과 내가 한 이별은 전혀 다른 양상의 이별이었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당신은 나를 웃겨줬어. 당신이 자꾸 유머를 던져서 난 몇 번이나 울다가도 웃었지. 당신은 몇 번 나를 붙잡았지만 내가 전혀 생각을 돌리지 않자 나를 놓아줬어. 그런데 나를 걱정하면서, 배려하면서 놓아줬어. 우리가 사랑할 때 당신이 나를 웃게 했던 순간들처럼. 그리고 내가 끝까지 당신에게서 본 것은 나를 살피던 당신 특유의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 이별마저도 울면서 하지 않겠다는, 웃으며 보내겠다는 결심으로 그렇게 했던 거겠지?
나는 생각했어. 이런 사람을 앞으로 또 만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앞으로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후회와 미련의 지옥 속에서 괴로워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난 끝까지 나를 붙잡고 안놓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몰라.
<행운을 빌어요 - 페퍼톤스>
반짝 눈부신 날 / 쨘하고 나타날 것 같아 / 방금 짓궂은 그 표정
문득 머리위로 / 차가운 공기가 흐른다 / 이젠 인사를 할 시간
시작하는 여행자여 안녕 /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때
오 그대로 내가 사랑한/너의 말투 너의 웃음 그대로
생각해보면 똑같은 풍경/이 하늘과 바람,복잡한 도시
오 그대여 눈을 감으면 / 나는 늘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행운을 빌어줘요 / 웃음을 보여줘요 / 눈물은 흘리지 않을게, 굿바이
뒤돌아 서지마요 / 쉼없이 달려가요
노래가 멈추지 않도록 / 수많은 이야기 끝없는 모험만이 /그대와 함께이길-
안녕 고마웠어 / 짧았던 너와 나의 계절
끝은 또 하나의 시작 / 잔뜩 배낭을 멘
작은 어깨를 두드린다 / 이젠 떠나야 할 시간
숨가쁜 시간의 강을 건너 /엇갈린 축의 바람이 분다
오 그대 작은 별이 되기를 / 망설였던 나의 서툰 노래 이젠 할 수 있어
빛나기 시작한 별 /세차게 부는 바람 /눈물은 흘리지 않을게, 굿바이
오랜 시간이 흘러 /쓰러질 듯 벅찬 날 /이 서툰 노래가 닿기를
긴 여행의 날들 /끝없는 행운만이 /그대와 함께이길
이별을 '새로운 시작' 으로, 떠나는 연인을 '시작하는 여행자' 로 표현한 이 노래는 참 신선하고 청량하게 느껴져. 이별조차도 그렇게 느껴질 만큼.
그렇지만 역시 이 노래는 슬퍼. 멜로디는 활기차고 밝지만 마지막 멜로디가 갑자기 끝나. ‘끝없는 행운만이 그대와 함께이길.’ 이라는 마지막 소절이 뚝 끊기듯 끝나버려. 어떤 간주도, 마무리도 없이. 너와의 인연이 끝나버렸음을, 쓸데없는 미련 따위 갖지 않겠다는 것을, 이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어.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툭, 별안간 끊어져버린 것이지. 그래서 슬퍼.
이 노래는 당신과 닮았어. 당신의 밝고 긍정적인, 또 부드럽고 너그럽고 따뜻한 성격과. 그래서 당신은 이 노래가 좋았나봐.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이 너무 좋아서 결국 떠날 수 없었나봐.
고마워. 다시 찾아와줘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붙잡아줘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줘서. 앞으로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말자.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