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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Dec 02. 2020

츠네오를 위한 변명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20대 초반 때였을 것이다. 그땐 너무 여자를 스무스하게 잘 갈아타는 츠네오가 나쁜 남자처럼 느껴졌다. 츠네오는 좋은 남자가 아니다. 카나에(우에노 주리)와 사귀기 전에도 여자가 있었고 카나에와 사귀고 있었으면서 조제와 만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많은 여자들을 분노하게 한 지점은 조제와 헤어지고 나오자마자 카나에가 기다리고 있었던 부분이다. 잠시도 여자 없이는 못 사는 남자 같았다. 조제의 집을 수리해주었던 것도 그냥 당시 여친인 카나에가 알려줘서일 뿐이고 그래서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라는 칭찬에 쑥쓰러워한다. 그 뒤 다시 만난 조제에게 잘해줬던 것도 그녀가 여자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일 년 뒤 그녀를 무정하게 버린다.                                                                                        그러나 십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츠네오의 고단함이 보인다. 츠네오 동생의 "형, 지쳤어?" 라는 기습적인 물음에 아무런 답을 못하던 츠네오의 대답은 "내가 도망쳤다" 는 것이다. 조제가 처음 울면서 한 고백 "옆에 있어줘, 언제까지나" 라는 말에 알겠다고 답을 했던 츠네오였다. 유모차를 스케이트 보드에 달아 거기에 조제를 쌩쌩 태우고 다니고 동물원에 가서 보고 싶다던 호랑이를 보여주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났다. 조제의 세계는 불편하고 번거롭고 고단한 세계였다. 조금이라도 이동하려면 업어주거나 유모차에 태워야 한다.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는 길에서 츠네오의 고단함이 잘 드러난다. 터널에서 손 색깔이 변한다며 좋아하는 조제의 재잘거림에 운전 중이라며 화를 내고 조제를 업으며 휠체어를 사야겠다고 하고 조제가 너가 업어주는 게 더 좋다니까 좀 봐달라고 나도 나이가 든다고 한다. 츠네오에게 조제와 함께 해야 하는 노후가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츠네오가 부모님께 조제를 데려가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서로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랑도 영원할까? 한쪽의 무한 희생이 담보되어야 하는 관계도 영원할 수 있을까? 인어 공주와 왕자의 사랑도 결국 인어가 인간이 되었기에 가능함을 꿈꾸기라도 할 수 있었다. 츠네오에게 조제의 장애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사랑이 주는 설렘과 열정, 무한 긍정이 사라지고 나니 이성이 작동했을 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희생해야 할까, 평생 이렇게 불편하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사랑했던 조제는 불현듯 짐처럼 버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정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비루한 현실보다는 고매한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그러나 인간은 그다지 정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물질과 육체와 편의에 좌우된다. 인간은 희생을 기꺼워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거룩하고 고매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 자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 만만치 않게 고된데 사랑까지 힘들면 그 사랑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지 않을까?                                                     

 츠네오는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는 장애인 조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평범한 여자, 조제를 사랑한 것이고 그 사랑은 현실의 벽에 좌절되었을 뿐이다. 다시 본 영화 속 츠네오는 더 이상 나쁜 남자가 아닌 그냥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그건 십 몇 년의 세월을 건너온 내가 이 세상이 스물 몇 살 때 보던 것처럼 말랑말랑하고 환한 곳이 아니라 고되고 척박한 곳임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상 츠네오를 위한 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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