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그 초월적인

크리스마스 타일(김금희)

by 글쟁이 써니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선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우리나라의 장점이라고 했다. 어른이 된 나는 누가 봐도 초라하고 별 특징 없는 꽃인 무궁화를 아름답다고 힘겹게 예찬하는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글만큼이나 국민들을 가스라이팅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은 혹독한 추위와 무더위를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거의 50도에 달하는 온도 차이를 국민들이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산다는 것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문구가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도 나온다. 하지만 그토록 시니컬한 시기를 지나 조금 둥글어진 지금 나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아서 행복하다. 계절이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계절에 들어온 노래를 듣는 것이다. 지금처럼 겨울이면 박효신의 '눈의 꽃' 이나 쿨의 '작은 기다림', 라라랜드 영화의 ost 들, 머라이어 캐리 등의 크리스마스 노래와 캐롤들 등. 계절이 바뀌고 처음 듣는 노래는 마치 가장 먼저 먹는 그 계절의 햇과일같이 신선하고 상큼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겨울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면서 그 모든 시간들이 참으로 행복했고 힘들었던 순간조차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방법은 그 계절을 배경으로 한 시나 소설을 읽는 것이다. 겨울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이나 정호승 시인이나 백석 시인의 겨울시들을 읽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김금희 작가의 연작소설집이 나왔을 때 정말 반가웠다. 집에서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맛있는 걸 아껴먹는 심정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크리스마스라는 사탕을 더 깊고 진하게 녹여먹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눈 오는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그야말로 초월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 은하의 밤


46살 독신 여성이자 방송 작가인 은하의 외로움이 덤덤하고 건조한 어조 가운데 섞여들어 마침내 그 외로움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게 만든다. 김금희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인물과 쿨하고 시크한 문체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에 조카 겨레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훈훈하게 끝나서 미소를 짓게 한다. 겨레의 엄마 같은 매정하고 자기 자식만 위하는 인물은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아서 조연까지도 인물 형상화를 아주 꼼꼼하게 잘 한 것 같다.


인생이란 결국 온전히 혼자서 고독하게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남의 눈이나 남에게 잘보이기 위한 노력 같은 피하지방 같은 것들은 모두 걷어내고 혼자서 인생과 마주하라, 당신이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그렇지 않다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소설이다.


삼년 전 은하가 차디찬 회복실에서 깨어나 한 결심은 이런 것이었다. 삶에 피하지방처럼 껴 있는 모든 영양가 없는 관계들과 결별해야지. 그것들이 은하 인생에 달라붙어 얼마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일으켜왔는지는 막 수술을 마친 은하의 몸이 증거하고 있었다.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발병 이전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삶에는 오로지 고독, 크기를 잴 수 없이 크고 깊은 고독만이 필요하리라는 결론이었다. 그것은 어느 흐린 날 거리를 걷다가 낙엽이 떨어져내리는 가로수 밑을 지나거나, 어느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다 한강에 어른대는 불빛들을 애잔하게 바라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독이었다. 설명하자면 아주 무섭도록 자기 삶 속으로 포섭된 고독이었다. 참여자 없는 연극이자 듣는 이 없는 아리아, 만남이 불발된 채 혼자서 나누는 열렬한 악수 같은 것.


인생 역전이라니, 그렇게 인생이 쉽게 바뀌다니 너무 환상 같은 얘기 아닌가. 은하가 생각하기에 인생의 극적인 변화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건 나의 의식과 상관없이 스멀스멀 조용하게 은밀하게 불가피하게 찾아들었다, 이를테면 암세포처럼.


다만 겨레가 자신을 이해해줄까 하는 의문은 두려움으로 남았다. 어른들에게는 그렇게 까마득한 고독 속으로 굴러떨어져야 겨우 나를 지킬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 그런 구덩이 안에서 저 혼자 구르고 싸우고 힐난하고 항변하며 망가진 자기 인생을 수습하려 애쓰다보면 그를 지켜보는 건 머리 위의 작은 밤하늘뿐이라는 것.


도와줄까 친구,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계속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이지, 하고.


식당 주인은 자영업자 느낌이 거의 없는 이곳 주민 같은 인상이었다. 예능을 하다보면 회차마다 길든 짧든 식당 신을 찍어야 할 때가 잦은데 그럴 때 만나는 식당 사장들은 아무리 친절하더라도 어딘가 뾰족한 칼날 같은 면이 느껴졌다. 그게 식당 악성 댓글에 등장하듯 장사가 잘 돼 배가 불러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건 끼니때만 되면 몰려드는 그 허기에 찬 입들을 먹여온 자가 자신을 단련해온 결과처럼도 읽혔다.


그것은 은하가 암센터 근처 프랜차이즈 죽집에서도 도무지 일지 않는 식욕과 싸워야 했던 어느 시절을 빗줄기와 함께 씻어내주는 느낌이었다.


은하가 교회도 다니세요? 하고 다시 묻자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때만 간다고 대답했다. 그날이 주님 그 냥반 생일이라 기분이 좋은 그 냥반이 기도를 잘 들어줘서 간다고. 은하는 그 말에 푹 웃었다가 농담인가 진담인가 알 수 없어 다시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가면 어떤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뭐 바랄 게 있겄어, 그냥 아프지 마라, 허지."


할머니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답했다.


"아프지 마라. 죽어서도 아프덜 말고 살아서도 아프덜 말고 그 말밖에 더 있겄어."


그것은 암 선고 이후부터 자신이 내내 하고팠던 기도이기도 했으므로 은하는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그때 지민이 도착해 은하 작가님? 하고 불렀고 은하가 담요를 걷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여분의 점퍼를 챙겨 온 지민 뒤로 희고 둥근 보름달이 따라와 있었다.


은하가 눈 오는 풍경을 좋아하는 건 눈송이들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동선들이 서로 엉켜 도시를 한순간 전혀 다른 흐름으로 만들어놓는 것. 어떤 눈송이들은 위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정말 그것이 살아 낙하의 고저를 조절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흰 새처럼, 흰 벌처럼 느껴지는 눈이었다.


은하가 다시 수도를 틀어 물을 받아 내밀었더니 개가 찹찹찹 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은하는 피부에 닿는 그 개의 보드라운 혀를 느끼며 양손을 계속 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개가 물을 마시고 은하도 갈증에서 벗어났던 순간은 생각해볼수록 결이 달라졌다. 은하가 인생의 가장 저점에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휩싸였을 때 그렇지 않다고, 너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일깨우기 위해 누군가 그 떠돌이 개를 보낸 것 같았다.


그런 불안과 의혹, 두려움은 은하에게도 체취처럼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어떠한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이 밤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은하의 크리스마스였다.


2. 데이, 이브닝, 나이트


손주 손을 잡고 영화관에 데려가는 할머니라니, 너무 힙하지 않은가. '너무 상한 사람 옆에 있지 말라' 라는 조언도 정말 쿨하지 않은가. 그야말로 김금희 소설에 너무 잘 어울리는 할머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 영화라는 갈래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깊게 느낄 수 있다. 영화 한 편을 볼 때 40분 동안이나 어둠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사실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과 영화관에 가게 된다고. 그동안 영화관에 함께 갔던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만들었다. 주인공 신한가을은 안미진과 잘 되었을까? 자신의 풀네임을 기억 못하는 무심한 선배는 이제 잊고 온전한 이름으로 불러주는 안미진과 잘 되었으면 좋겠다. 독서 모임에 영화 업계에서 일하는 분이 계셨는데 영화에 한쪽 발을 담근 채로 다른 생업에 종사하며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의 열패감이 사실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고 했다. 어색한 부분이나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전혀 없다고. 작가가 방송 업계, 영화 업계 쪽으로 취재를 많이 하고 썼나보다.


스크린 빛이 일방향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어둡고 텅 빈 객석에 앉은 우리는 때로 우주를 표랑하는 사람들처럼 막막하게 상상된다.


그뒤로는 함께했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는 '그리움의 종신형'에 빠지게 되었으니까.


영화를 보다 밖으로 나와도 해는 중천이었고, 그렇게 손잡고 가는 길에 할머니는 인생에 필요한 경계랄까 교훈이랄까 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은 "너무 상한 사람 곁에는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꿈을 잃지 마라,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돼라, 근면하라처럼 흔한 당부가 아니라서 인생의 아주 비밀스러운 경계를 품은 듯 느껴졌다.


그리고 대개 교훈들은 실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행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실수, 너무 상한 사람 곁을 지키고 말 것을 암시하고 있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여러 번 의심했지만 영화를 보고 할머니와 돌아오던 그 한낮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믿었다.


"너무 가까우면......차라리 눈을 감게 되니까."


병동에서 일하는 건 사람들의 편견만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마이너스가 되는 기분은 자주 들었다. 계속해서 밑으로 떨어지는 모래시계나, 손가락 사이를 하염없이 통과하는 물줄기 따위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 처음에 나는 눈을 감게 된다는 유석이 형의 말을,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피하게 된다고 이해했다가 나중에는 그냥 흐르는 시간에 나 자신을 맡기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거창하게 부르는 무언가가 병동 안팎으로 흐르고 있었다. 졸업 작품 찍을 돈을 모으겠다고 했지만 잔고는 늘지 않았고, 나는 적금계좌를 만들었다가 헐고 만들었다 다시 헐어버렸다.


영화라는 미래 앞에서는 사실 자기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처지라고 선배는 얘기하곤 했다. 아직 출발하지 않은 버스 안에 함께 서 있는 거라고.


"영화가 빛의 예술이란 건 반만 맞는 말이야. 이미지가 움직이려면 영화는 프레임당 두번 이상 빛을 차단하거든. 두시간짜리 영화라면 우린 영화관에서 사십분 정도는 어둠만 바라봐야 하는 거지. 어쩌면 막막하고 두려운 순간들이잖아? 학교 수업 때 그 말 듣고 영화관에 가까운 사람들이랑 같이 가는 건 그 때문이구나 하고 나 혼자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가 더 좋아졌고."


어쩌면 우리는 그 밤들 내내 영화를 찍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영화에 관객이 되어, 이 사랑이 가망 없는 것이라도 어떻게든 그것이 지닌 일말의 빛을 지켜주면서.


나는 전철역과 반대로 내처 걸었다. 밤을 꼬박 새운 피로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그렇게 오래 걸어야 어떤 것들과 결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미진이 말했듯 그건 수치심일 수도 있고 나를 누르고 있던 열패감의 다른 이름들일 수도 있었다. 영화관을 나와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걸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음의 국면들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될까봐 할머니는 내 손을 꼭 붙들고 걸었을까. 가능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바랄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축원이기에 그런 말을 해준 걸까.


3. 월계동 옥주


어딘가 중국스러운 '옥주'라는 이름과 '월계동' 이라는 지명이 너무 절묘하게 어울린다. 뭔가 모르게 쿨하고 털털해 보이는 옥주라는 인물도 매력적이다. 꽁꽁 얼어 있는 와중에 괜찮냐는 질문에 '하이-하오(그럭저럭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것도 뭔가 유머러스하다. 옥주-지민-현우(맛집 알파고)의 삼각관계 중 옥주-현우의 관계가 나오는데 옥주보다는 현우가 더 많이 사랑했던 쪽인 것 같다. 중국 여행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장소를 다 찾아봤다. 귤자주섬은 실제 있는 곳인데 마지막에 등장한 호수가 어디인지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와서 너무 궁금하다. 등잔불 역할을 할 정도로 빛나는 호수라니.(중국인들의 과장 아닐까?) 이런 곳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 어쩌면 작가는 다른 장소를 여기에 이어붙인 걸까? 가본 곳 중에선 홋카이도 비에이에서 갔던 청의 호수가 생각난다.

다 읽고 보니 앞부분에 예후이가 중국어 과외를 해달라는 옥주에게 괜찮겠냐고 물은 것은 자신이 사투리를 쓰는데도 괜찮냐는 뜻인 것 같다. 독서모임 여자분들은 야콥을 짝사랑하는 윤슬이 야콥이 자기가 아닌 예후이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예후이를 걸고 넘어져서 공격하는 것이 정말 찌질하고 못났다고 했다. 야콥의 애정을 받는 것이 예후이의 잘못인가? 왜 같은 여자를 공격하나. 요즘 하남자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하여자라는 말을 쓰고 싶다고. 또 누군가가 남녀가 여럿이서 어울려서 여행을 가면 그 여행은 반드시 망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로 중국은 평생 갈 일이 없겠다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 갑자기 중국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실내에서도 추위를 양말처럼 신고 살게 될 거라고.


"선배, 세상은 선배가 내키는대로 낙서해도 되는 백지장이 아니야."


비록 지금은 너무 춥고 속도 좋지 않고 눈꺼풀과 함께 몸도 무겁지만 어쨌든 오늘은 노력한 날 아닌가. 노력이 중요하다. 어떻든 살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해.


어쩌면 현우와 자신은 거기서부터 어긋났는지도 몰랐다. 옥주는 서른을 앞둔 지금까지 학생이지만 졸업한 현우는 어느덧 직장을 잡아 다른 궤도에 진입해 나아가고 있는 것. 거기서 둘은 이제 서로를 이해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연인 사이로 헤어졌을 때보다 옥주는 더 아픈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러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말을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입을 열어 지금과는 다른 숨을 쉬어보고 싶게 하는 사람. 그런데 옥주에 관해서는 과거도 현재도 알지 못해서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 사람.


"윤슬, 여기 와서 노을을 안 본다는 건 강에 보석을 빠뜨리는 것이나 다름없어."


문득 하늘이 깨어난 것처럼 붉은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저무는 해가 비치면서 구름의 부피가 도드라졌고 그렇게 짙어진 층적운들은 마치 누군가가 느슨하게 늘려 잡은 비단천 같았다.


둘은 정말 여름 여행에 어울리는 환한 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층층의 돌들에 폭포물이 부딪히면서 이는 물거품은 마치 아래로 아래로 빠르게 뛰어드는 수천의 투명한 새들 같았다.


호수는 더이상 연마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세공된 금속처럼 빛나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되비출 수 있을 것처럼. 나무가 담기면 나무가 되살아나고 새가 담기면 새가 그대로 되살아나 가지를 옮겨다니며 날개짓할 수 있는, 물이 지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양감이었다.


상하이에서 다펑 팬과 잠깐 어울린 일정을 빼고는 서쪽 끝의 둔황까지 내내 혼자 다닌 여정이었다. 옥주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했다. 이제 식구들이 월계동에 다 같이 모일 날은 없고, 자신의 스무살 시절과 관련된 많은 이들도 떠나버렸다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 만해졌다.


그래도 그해 예후이와 함께 보았던 호수를 생각하면, 세상 어디에서는 호숫물로 등잔을 밝힐 수도 있다는 얘기를 기꺼이 믿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상심이 아물면서 옥주는 옥주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금 월계동 옥주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못난 자신이 갸륵해질 때까지 걷는 중랑천의 흔하디흔한 사람으로.



4. 하바나 눈사람 클럽


독서 모임의 많은 분들이 가장 좋은 작품으로 꼽았던 소설이다. 나도 이 소설과 첫번째 '은하의 밤' 두 편이 가장 좋았다. 이 소설집에는 부산이 많이 등장해서 좋았다. 나 역시 여주인공처럼 9살에 부산으로 전학을 갔고 대학을 서울로 오기 전까지 살았으므로 소설 속에 나오는 부산의 장소들과 부산 사람들 특유의 털털하고 소박한 정서가 아주 낯익었다.


"나 너랑 자지는 않으려고" 라는 말에 남학생이 질겁해서 헤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담임 목사님의 아들이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인데 오죽했을까. 사실 교회에서는 혼전순결을 강조하고 결혼 전의 성에 대하여 매우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다. 20대 30대 다 큰 청년들한테도 그런데 한창 공부할 10대한테는 오죽하랴. 사실 한국 기독교가 청년 교인들 수가 급격히 줄고 지금 점점 망해가는 것은 이것 때문도 크다고 생각한다. 청년들 절반 이상이 제대로 된 직장이 없고 부동산 값이 살인적으로 올라서 결혼을 못하는데 교회에서는 정작 개혁이 필요한 정치인들이나 장로층에는 오냐오냐하고 혼전순결이니 십일조니 동성애 반대니 하면서 청년들만 잡고 있다. 이러니 교회에 붙어있는 청년들은 대학 경쟁과 취업 경쟁에 승리하여 안전하게 정규직과 결혼에 안착한 소수 피라미드 상위계층의 청년들이 대다수일 것이고 그래서 안 그래도 한국 기독교는 보수적인데 더 보수화되고 대중들과 유리되는 것 같다.


독서모임 분들은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마지막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둘은 과연 잘 될까? 아마 잘 되지 않을까. 주찬성은 설마 이번에도 혼전순결 어쩌고 하다 또 헤어지진 않겠지. 주찬성은 결국 서울대에 합격한 것일까. 주찬성, 현우, 옥주, 지민 다 알고보면 서울대생? 서울대가 아니라도 연고대 정도는 될 것 같다. 알고 보니 엘리트 집단이었군. 하긴 그러니까 지민도 PD가 되고 현우도 대기업에 들어갔겠지.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눈의 결정 같은 것. 똑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는 그것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져내리는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다르고 다른 것들이 초속 30센티미터로 떨어져내리는 데는 어딘가 초월적인 부분이 있다. 초월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듯 느껴지지만 창밖을 보기 위해 발꿈치를 드는 행동에도 있다고, 주찬성이 말했던 것처럼.


처음으로 들어가본 교회에는 애들이 우글그렸다. 그동안 나를 빼고 다들 신앙생활을 해왔는지 성탄절이라 교회를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평소에 보던 얼굴들이 그대로 있었고 나는 꼭 휴일에 등교한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별로였다는 얘기다...창밖을 보니 눈이 빗금을 치듯 내리고 있었다.


건초 더미처럼 수북한 자기 불행과 부채를 근심하느라 집안을 살필 여유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고아원에는 안 보낸다." 따위의 말을 하면서. 그 말은 처음에는 막연한 공포였다가 나중에는 반감이 들게 했고 이내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버림받느니 먼저 떠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같은 것.


나는 종이에 배어나온 기름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근처에 떨어진 설탕가루를 찍어 입안에 넣어보았다. 그때의 단맛이란 손등에 떨어지는 눈처럼 아주 미미하고 짧았다.


그렇게 뒷모습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몸이 오징어처럼 늘어나고 늘어나 아무리 달려나가도 그 자리에 나풀거리는 촉수 하나쯤은 남아 있는 일 같다고 상상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긴 다리를 가진 대왕오징어인 셈이라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기적'과 '분노'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엑셀러레이터로 가속하면서는 기적을, 브레이크를 밟으면서는 분노를. 그렇게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면서 어디론가 하염없이 흐르는 기분, 그건 그때 그 소읍에서도 느끼던 것이었다.


주찬성이 그렇게 창밖을 보는 내 모습에도 초월이 있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찬성은 계절로 치자면 겨울이 지나고 봄볕이 막 의식될 무렵의 아이 같았다. 아직은 굳은 몸과 땅이 풀리지 않고 겨울에 얻은 혹독한 기억들도 잊히지는 않았는데 자연히 손가락이 꼼지락거리고 어깨가 펴지는 타이밍의 아이. 나는 주찬성이 그토록 희미하게 웃는 애라는 데 놀랐고 주찬성은 내가 그 정도로 말이 많다는 데 놀랐다.


서핑보드를 든 사람들과 한낮의 미풍, 어떤 움츠린 어깨도 펼 수 있을 것처럼 충분하게 쏟아지는 햇볕이.


나는 얘가 내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그 뒤를 따라가면서 하자는 게 아니라 하지 말자는 거였다고, 그러니까 나는 너랑 안 잘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찬성은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이번에는 아예 뛰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부터, 누구로부터 뛰는지 과연 알고나 있었을까. 가끔 아주 높은 하늘에서 송정바닷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어떤 시선을 상상해보곤 했따. 이를테면 별의 시점 같은 것. 그렇게 아득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면 그 한낮의 달리기는 얼마나 무구하게 그려질까 궁금해하면서.


종교와 상관없는 나 같은 자영업자에게도 주말은 하루도 쉴 수 없는 대목이었다. 우연과 기적도 평소에 그런 걸 느껴온 사람들이나 겪는 것 아닐까.


서로를 좋아했던 아이들이 더이상 그 마음을 이어가지 못할 때 세상은 어디로 튈지 모를 동력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그때 아이들은 미래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니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별안간 차갑게 구는가,하고 생각했다. 왜 결국 내탓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가...창을 열어 손을 내밀자 밤바람이 불었고 순간순간 세기가 다른 그 바람들은 나를 자꾸 붙드는 찬 손들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며칠 밤을 지새운 터라 완전히 지쳐 있었다. 기다리는 마음은 나 자신을 아주 근원에서부터 갉아먹는 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그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없는데 이상하게도 이 도시에는 내가 있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떠났던 내가, 돌아오지 않겠다고 겨울에 먼 길을 갔던 내가. 내 이름으로 된 미용실을 열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당연히 부산을 떠올렸다. 어쩌면 서울에서 사는 내내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조금씩 저축해두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는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늘 일용할 삶의 기준들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데도 덤덤한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이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이 내게 더 어울리거나 심지어는 옳다는 느낌.


내가 지녔던 슬픔을 세상에 흔하고 평균적인 기성의 슬픔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반응이었다.


예상대로인데도 어쩐지 고개를 떨구게 됐다. 바란 적 없는데도, 기다린 적 없는데도.


인간이 하늘한테 받은 몇 안 되는 선물이 망각인데, 그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덕분에 지나고 나면 어쨌든 견딜 만해지잖아요, 얼마나 다행이야.


화려하게 빛나던 크리스마스트리 조명도 꺼졌을 즈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홉살의 내가 하바나 클럽 앞에서 우두커니 맞고 있었던 눈이, 그뒤로 수십번 맞닥뜨렸지만 한번도 시시하지 않았던 그 작고 특별한 것들이.

작가님 친필 엽서


5. 첫눈으로


모임에서는 이 소설과 마지막 소설이 별로라고 했지만 나는 아주 좋았다. 별로라고 말할 수 있는 해맑음이 부럽기도 했다. 사실 소봄이 겪은 것과 거의 비슷한 일을 나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봄에게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아빠 왜 죽었는데? 왜 없는데?" 라는 부분은 정말 압권이었다. 경험한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잘 쓴 표현이다. 가족들에게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지금 우리 옆에 '없다'는 것, 단절 그 자체가 더 심장이 미어지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별 소봄과 차이가 있다면 나는 아빠에게 좋은 말, 격려의 성경 말씀, 기도, 찬송 이런 말들만 해주었다. 그래서 소봄이 한 것 같은 후회는 없다. 그 때 당시에 나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에 더 기도했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아주 지옥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그 때의 나를 떠올리면 너무 불쌍해서 안아주고 싶다. 소봄처럼 술도 못 마시던 때였는데 말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 신도 외면할 때는 눈을 꾹 감고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그 때는 그걸 몰랐다.


엄마가 소봄 남매에게 하려다 안 한 말은 뭐였을까? 예상해보건데 술 때문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술을 줄이려 노력하고 죽음을 피하려 애써도 결국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 괴로워해라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소봄씨, 막상 아빠가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하니까 두렵고 화가 나지 않았어?"

소봄이 대답을 않자 지민은 또 한번 두렵지 않았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하고 다그치듯 물었다. 소봄은 그때까지 가까운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없었다. 지민은 두렵지 않았어?라고 물을 때에야 그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투병하는 아빠와 그렇게 싸웠구나. 싸울 수 있는 날이 기한도 없이 남은 듯 믿고 싶어서 그렇게 시간과 마음을 낭비했구나. 소봄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민은 팔을 내리고 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소봄씨가 했던 말들은 차갑거나 못됐거나 그런 말이 아니야, 그냥, 뭐어랄까, 그냥."

이윽고 지민은 "그건 그냥 너어무 두려워서 움츠러든 사람이 하는 아주 작은 말일 뿐이었을 거야." 라고 정리했다.


노래도 대화도 원샷도 없는 회식 분위기는 맥줏집의 오래된 팝콘처럼 금세 눅눅해졌다.


"엄마는 아빠가 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 안 해."

엄마는 그렇게 단호히 말하고는, 눈으로만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끄고 잘 준비를 했다. 소봄은 그러면 엄마 생각은 뭔가, 아빠가 어떻게 돌아갔다고 생각하는가 뒷말을 기다렸지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뭐라고 생각하는데?"

소봄이 기다리다 묻는데 방문이 열리고 동생이 나와 식탁으로 갔다. 그 잠깐 사이에도 소봄과 동생은 무섭게 서로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동생은 물을 마시고도 엄마 답이 궁금한지 들어가지 않고 미적댔다.

"아빠는,"

"그래, 아빠, 왜 죽었는데, 왜 없는데?"

그렇게 묻는 순간 소봄은 아픔이 너울처럼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왜 죽었냐고 할 때보다 왜 없냐고 할 때 막막함이 더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치 놀리듯 아빠는, 하고 한번 더 중얼거리더니 "니들은 몰라" 하고 말을 맺었다.

"니들처럼 창창한 애들이 지금 그걸 어떻게 알겠니. 말해도 몰라."


예비된 성과가 있다는 것은 따뜻한 차 한잔처럼 노상 몸과 마음을 뭉근하게 만드는 일이었다...뭔가 삶 자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적당히 예열된 차를 부드럽게 액셀을 밟아 몰듯 자기 삶을 운전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생겼다.


12월인데도 햇볕이 드는 정도에 따라 어느 것은 아주 붉고 어느 것은 여름과 아직 이별하지 않은 듯 여전한 푸른 잎이었다. 마치 시간이 어떤 것에는 지나가고 어떤 것에는 가지 않고 머문 것처럼.


저는 영 나쁜 인간이에요.

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리는 동안 소봄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소봄은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취한 채로 돌아온 아빠가 현관 계단을 다 올라오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곤 했다는 건, 그 편으로 난 방을 가진 소봄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여덟개의 계단을 오르지 못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안타깝게도 술꾼들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 위로 죄 사함을 선언하듯 공중에서 끝도 없이 내려오는 그 눈송이. 그것은 비와 다르게 소리가 없고 쌓인다는 점에서 분명한 아우라가 있었다. 그렇게 걷는 동안 소봄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반짝이며 지민의 말이 계속되었다. 소봄은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힘으로, 그날의 밤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6.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개를 키워보지 않아서 크게 공감가진 않았지만 소설 자체는 정말 좋았다. 만약 개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독서 모임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아주 좋아했다. 개라고 하는 '종'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소설은 거의 처음 본 것 같다. 반려동물이 여느 인물 못지않게 중요한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들이 세미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고 세미는 그렇게 바라만 봐도 설기 그리고 설기와 같은 종인 그들, 개들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휴대전화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보다 그 순간 설기에 대한 실감은 뚜렷해졌다. 세미는 처음으로 '종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날마다 인류애를 잃어 이제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되살릴 수 없을 듯한 소속감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둥근 머리와 복슬복슬한 털과 납작한 코를 가진 그 부류들 속에 때로 설기는 아직 살아 있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여름이 다가오면서 세미에게는 파라솔 아래 그늘처럼 서늘한 비관이 펼쳐졌따. 산책길에서 개들을 보는 것으로 설기를 잃은 슬픔이 옅어지리라고 믿다니. 그런 순진함은 아둔함에 가깝지 않은가, 스스로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래 서로를 지켜봐서 같은 영화를 계속해서 돌려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드는 이 관계는 언제 끝나나.


세미의 고민은 더 이상 설기가 곁에 없다는 것에도 있었지만 자신이 지금 이 상실 안에 안주하고 싶다는 것에도 있었다. 화가 났다가 고통스러웠다가 그리움이 들었다가 나중에는 그 마음을 놓아버리면서 불행감 자체에 기쁘게 투항하는 듯한 느낌. 그렇게 상처에 갇힌 사람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낮은 먹구름들이 천천히 흐르고 맥주의 김도 다 빠질 무렵 세미는 "느낄 수가 없어. 느낌이 안 와" 라고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듯 절절히 소중한 존재가 있었던 느낌은 사라지고 그냥 자기는 이 도시 어디엔가 구겨져버려도 상관없는 인간이 된 듯하다고.


가까운 사람이 하늘에 간 경우는 외할머니가 유일해서 "할머니 만났어? 잘해줘?" 하고 묻기도 했다. 물론 잘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외삼촌과 함께 살던 할머니는 식구들이 반려견만 예뻐한다며 집 앞에 온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버리려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통과한다는 건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 할머니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머니를 너무 믿지는 말라고 세미는 설기에게 진지하게 경고했다. 그냥 인간 같은 건 다 피해 다녀, 내가 하늘로 갈 때까지.


5호선에서 내려 샛강공원으로 걸으면서 세미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자기소개서를 썼던 취업 준비생 시절을 떠올렸다. 그런 세미의 발치를 설기가 늘 웅크린 채로 지키고 있었던 것을. 세미가 자기 인생을 밀고 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매 순간 배경처럼 설기가 있었다. 부모도 다른 가족도 아닌 인간사에 대해 자기가 아는 만큼만 알았을 그 네 발의 포유류가.


시애씨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개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떠올리고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


"개들은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지. 호두도 싫은 사람이 오면 표현하고 좋은 사람이 와도 표현했어. 자기 마음을 숨기지 않았어. 나는 언젠가부터 그냥 호두처럼 살기로 했던 것 같아. 그래도 살다보면 가시박 줄기들이 엉겨서 큰맘 먹고 매번 잘라내야 해. 그래야 한다."


구미베어는 어머니 가신 지 육년 가까이 되었다며 위로받을 때는 지났다고 사양했다.


"받으세요, 과장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있던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은 안 변하잖아요. 그런 건 영원히 그대로잖아요."


여름의 숲이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활기에 차 있다면 가을의 숲은 평온을 향해 조용히 열리는 공기를 가지고 있었다. 햇살이 순해지고 바람이 선선해지면서 자연스레 차분해지는 사람들 마음과 닮아 있었다.


설기가 가고 나서 세미에게는 지나가는 개들의 발소리를 듣는 버릇이 생겼다. 발톱으로 보도를 살짝살짝 긁으며 걷는 가볍고 빠른 템포의 스텝들. 그 발소리는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세미 귀에 들려왔고 그래서 돌아보면 어김없이 개들이 있었다. 한번 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개들이, 그렇게 해서 인간을 믿을 줄 아는 개들이 설기처럼 기품 있게 걷고 있었다.


세미는 다시 방향을 바꿔 걸었고 그런 세미 곁을 쌀가루 같은 흰 눈이 내려 뒤따랐다.


7. 크리스마스에는


이 소설은 가장 별로였다는 평을 많이 들은 소설이다. 맛집 알파고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고 지루하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비슷하게 느꼈다. 하지만 앞의 '첫눈으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연작 소설 특유의 인물들과 상황들끼리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다. 지민이 소봄에게 잘 공감해주고 살뜰히 챙겨주는 이유가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지민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민도 아픈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여기서 밝혀진다. 동병상련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듯이 같은 고통을 겪은 가진 사람들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지민과 맛집 알파고 현우의 관계가 자세히 나오는데 둘의 관계에서는 지민이 현우를 더 많이 좋아한 것 같다. 현우에게 쓰는 메일에서 '더 많이 좋아하는 자의 어쩔 수 없는 찌질함' 이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현우는 왜 맛집 알파고 노릇을 한 건가? 그건 그냥 재미로 했다고 쳐도 왜 굳이 지민과 방송국 사람들을 속이면서까지 촬영에 응한 걸까? 여기에 대한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책을 말듯이 쥐고 기우뚱한 머리를 한 손으로 괸 채 골몰한 여자의 모습은 내내 지켜야 할 그 밤이 그렇듯 피로하면서도 나른하고 또한 어딘가 불온해 보였다.


나는 눈이 오는 건 정말 싫었다. 눈이 와서 그 희고 차고 가볍고 빛나는 것이 와서 부산을 덮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저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날이 되어 아주 건조하고 건조하게 본촬영에 참고할 내용만 '잘 뽑아서' 여기를 뜨고 싶을 뿐이었다.


환자가 집안에 있는 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음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며 느낀 것이었다.


그러니까 눈 내리는 희귀한 부산의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했던 일들은 겨우 그런 사실에 대해 알게 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모두의 행복을 비는 박애주의의 날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알게 되고 꿈꾸고 심지어 철학하는 일은 대체 뭔가...이윽고 텔레비전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종로의 보신각에서 사람들이 종을 울렸다.


8. 작가의 말


창비 '스위치' 등에 연재를 시작해 한편 한편 보탤 때마다 마음 속 가장 깊은 그늘과 가장 환한 빛을 동시에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한해를 정신없이 보내다 연말이 되면, 곧 소멸될 일년이라는 시간과 그 속에서도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 뚜렷해지듯 말이다. 인물들 저마다 각자의 어려움과 피로, 슬픔과 고독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긴긴 밤을 지나 걸어오면 12월이라는 기착지에 멈춰서게 되고, 그것을 축복하듯 내리는 하늘 높은 곳의 흰 눈을 만나면 비로소 아득해지기도 한다고. 그렇게 우리가 아득하게 삶을 관조해낼 때 소란스러운 소동 너머에 있는 진짜 삶을 만지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고. 우리에게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맞이할 모두의 겨울에 평화가 있기를, 각자가 완성한 크리스마스 풍경들이 그 각자의 이유로 가치 있게 사랑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겨울을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책. 안 읽어보셨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리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