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오래된 정원(황석영)

by 글쟁이 써니

Q. 어떻게 읽으셨나?


-상권은 너무 좋다, 역시 대가의 소설이다 하며 읽었는데 하권은 좀 늘어졌다.

상권은 오현우와 한윤희의 서사가 적절히 교차되고 한윤희의 편지도 그럴듯하다. 하권은 그냥 한윤희가 쓴 소설 느낌이고 벨런스가 붕괴된다.

하권은 절반으로 축소해도 될듯하다. 소설적 구조에서는 안타깝다.

앞부분은 사랑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듯하다. 메시지 전달 위해 뒷부분은 스토리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민주화 운동하던 사람들 웬만하면 사면되어 나온 것 같은데 오현우는 왜 이렇게 못 나오나 궁금했는데 뒤로 갈수록 비전향 장기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전향 장기수이기 때문에, 끝까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뒷부분에 동유럽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이 시대 좌파 지식인들이 느꼈을 허무함과 방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일생을 바쳐 추구했던 사상이 몰락해버린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일생을 바쳤나 싶을 것 같다.

-꼭 사회주의가 사라졌다고 볼 수 없는 것 같다. 지금 북유럽과 서유럽 복지국가들을 수정사회주의 형태로 끌어가고 있다. 그들이 누리는 복지는 사회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Q. 전향에 대한 현우와 윤희 아버지의 상반된 모습을 어떻게 보셨나?


-오현우는 가족보다 사상을 더 사랑한 것 같다. 가족에게는 다소 무책임하지 않나 싶다. 윤희 아버지는 그래

도 가족을 선택했다. 전향서를 안 썼다면 윤희 아버지도 장기수가 되었을 것이다.

-한 번 눈 감으면 편하게 살 수 있지만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전향서를 안 썼을 것이다. 신념이 어떻게 보면 정말 무서운 것이다.

-정말 편하게 살았을까. 한윤희 아버지는 전향자이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신념을 지킨 오현우와 대비된다. 감옥에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을 것 같다.

-신념을 지키는 건 좋지만 일단 전향서 쓰고 나와서 뒤에서 민주화 운동하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작가가 자신의 감옥 체험을 소설화해서인지 감옥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끔찍했다. 몸을 정신이 이겨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오현우는 공적인 측면과 사적인 측면 중 공적인 면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진보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적인 면만 중시한다면 나라는 개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우려된다. 일제 강점기 때나 산업화 시대 때는 자신의 이익과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더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내던져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정도로 좋아진 나라에서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버기 위해서 몰두하고 있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어둡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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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윤희 캐릭터는 어떻게 보셨나?


-여성 캐릭터를 너무 입체적으로 잘 표현했다. 아버지가 전향해서 너무 힘들었던 걸 어릴 때부터 봐와서 현우를 붙잡지 못했을 것 같다는 점에서 현우를 보내는 것이 매우 개연성 있다.

-강인하고 야무진 여성이다. 생활력도 강하다. 그녀가 조금만 더 연약하고 여린 여성이었다면 현우를 붙잡든지, 임신 사실을 알려서 어떻게든 전향서 쓰고 나오도록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그녀가 안쓰러웠다. 너무 꿋꿋하게 혼자 잘 참는 성격인 것 같아서.

-가난한 전남자친구한테 잘 하는 걸 보면 정말 순수하고 낭만이 있는 여자이다.

-하지만 윤희는 아이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별로 보고 싶어하지도 않고. 뒷부분에 모성이 완전 사라진다. 모성이 없는 캐릭터라고 보기에 현우나 전남친, 송영태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캐릭터 붕괴인가 싶기도 하다.

-작가님이 독일이 통일되는 장면을 꼭 넣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러려면 윤희가 독일에 계속 있어야 하고 모성도 없어져야 한다. 심지어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 윤희 엄마를 부자로 만들었다. (웃음)

-은결은 오현우의 아이이므로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풀려면 은결이와의 사이가 애틋해야 하는데. 좀 아쉬웠다.

-현우는 사실 윤희가 수절(?) 안 해도 할 말 없는 것 아닌가. 어째서 그렇게 현우만 바라보는지.

-짧은 기간 불타는 연애를 해서 더 잊지 못했던 거 아닐까. 결혼해서 몇 년 살았으면 다른 남자 만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짧은 시간 불같은 사랑을 했다. 이 기억으로 평생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좌파 지식인들이 사랑을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사랑은 사치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내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는 생각이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다. 윤석열을 보라 (웃음)

-한윤희처럼 평범하게 살지만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진보가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그림에 매진한 것으로 보였다. 결핍이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 하는 경우가 많다.

-결핍이 없는데도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하루키가 그렇다. 딱히 결핍이 없는 것 같은데 성실하다.

-황석영 작가는 그 파란만장한 삶이 작품에 녹아든다. 작가의 말에서 쓰신 것처럼 정말 문학을 살아내신 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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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송영태는 어떻게 보셨나?


-윤희는 아이도 있고 아이 아버지는 감옥 가 있고 엄청 복잡한 상황인데 끝까지 좋아하는 거 보면 대단하다.

-윤희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입맞추는 장면이 안타까웠다. 어찌 보면 그게 마지막 시도였던 것 같은데 만약 윤희가 받아주었다면 그는 기차에서 안 내리지 않았을까. 둘은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열차에서 내려 자살을 택했을 것 같은데 너무 안타까웠다.

-마지막 시도였나. 나는 윤희에게 한 작별 인사로 보았다. 자살보다는 월북으로 보였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북한은 정말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가 실제 월북한 시기와도 소설 속 시기가 비슷하다.

-동유럽과 소련이 무너졌을 때 그 시절 좌파 지식인들은 정말 혼란스럽고 허무했을 것 같다. 마치 태양이 없어진 기분 같지 않았을까. 사실 이후로 지구의 모든 영역이(북한 같은 곳 빼고) 자본이라는 태양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Q. 소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황석영 작가인데 이러한 스타일의 문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원래 재미있는 게 좋아 장르 문학 위주로 보았는데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를 읽으면서 이런 류의 문학이 주는 묵직함과 문학성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이런 문학을 더 읽고 싶어졌다.

-한국은 굴곡진 근현대사를 살아왔기 때문에 리얼리즘 문학이 발달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훌륭한 작품은 산업화 시대의 모순을 정확하게 드러냈다. 우리나라는 리얼리즘 문학에 빚을 많이 졌다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리얼리즘의 승리라고들 했고 실제로 계엄 정국을 돌파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과거가 현재를 구한다라고도 했다. 물론 한강 작가 작품 중에 리얼리즘적이지 않은 작품들도 많지만. 어쨌든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우리나라엔 너무 다행이다.

-좋은 문학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성찰하게 하고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찰을 안 하는 게 인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도 안 읽고 생각도 성찰도 하지 않고 유튜브 가짜 뉴스 알고리즘에 휘둘리는 인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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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황석영 작가의 문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


-매우 선이 굵고 담담하고 남성적인 기운도 느껴진다. 그런데 그 역기능인지 정말 슬픈 장면도 그냥 덤덤하게 넘어간다. 감정이 소진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이런 부분을 이렇게 넘어가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강 작가나 김애란 작가가 쓴다면 정말 너무 슬퍼서 미칠 것 같이 만드는, 그렇게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덤덤하게 넘어간다.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차이인가 싶기도 한다.

-그렇다고 황석영 작가의 소설이 슬프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슬픈, 묵직하게 느껴지는, 절제미가 있다. 그게 오히려 터뜨리는 것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Q. 그 이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시절의 풍경 묘사가 좋았다. 어린시절 생각도 났다. 은결이가 나랑 동갑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이상했다.

- 생각해보면 그렇게 옛날도 아니다. 불과 몇 십년만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만약 오현우가 지금 출소했다면 그는 더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 감옥 안에서 오현우의 감정이 무뎌진 게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너무 덤덤해서 놀랐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못 버텼을 것 같다.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맞다. 소설 속에도 정신병원에 간 인물이 나온다.


Q.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 시간의 어긋남과 역사의 폭력을 드러내는 비극적 구조

-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한 상실,이상,불가능한 회복을의 상징-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운동, 장기수 문제, 냉전 구조를 문학적으로 압축한 작품


따라서 한국 현대사 속에서 개인의 사랑과 삶은 어떻게 역사와 맞물려 파괴되는가를 묻는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정리해주었다.


<책 속 한 줄>


한 세대가 흘러가버렸다. 광주, 그러나 이제는 저 울렁거림 따위는 없다. 전에는 그 도시의 이름만 떠올려도 마치 글자 주위에 불의 링을 달아놓은 것처럼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무슨 특산물로 유명해진 관광지 이름처럼 들린다. 몇년 만인가. 나는 턱짓으로 숫자를 헤아려보았다. 일년, 이년......십칠년, 십팔년, 십구년. 그들의 얼굴이나 기억할 수 있을까. 내 안에는 저들은 모두 앳되고 어설프고 가난한 젊은이들이었다. 죽은 이들은 더욱 영원히 젊다.


당신은 헛간의 슬레이트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위태롭고 맑게 이 세상 중간에 걸려 있는데.


꽃은 시들어 말라도 바랜 채로 아름다운데 포유류인 사람의 몸은 어째서 이렇게 무참하게 허물어져가는 걸까요.


그곳을 떠난 뒤에 당신의 젊은 얼굴을 그린 적이 있어요. 나중에 그림의 빈 여백에는 이만큼 늙어버린 나를 그려넣었지요. 그랬더니 당신은 내 아들 같아 보였어요.


유행가 하나 적어놓을게요. 사랑은 언째서 언제나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지. 사랑은 어째서 죽음과 꼭 닮은꼴인지.


오래 전에 불경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정이 맺혔던 부분들이 제일 먼저 썩어 없어진대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인생은 길고 혁명은 짧아 그런가. 사는 것이 다아 욕이여.


처음 여기 오던 밤에 나는 뼁끼통 위에 올라서서 먼 어둠속 허공에 몇점씩 빛나는 별을 보았소. 별인 줄 알았다가 산동네 가난한 창에서 보내는 불빛임을 이튿날에사 알아보았소. 초저녁에는 산허리에 불빛이 가득하더니 밤이 깊고 새벽이 가까울수록 한점 두점 사라져 저만큼 하나 다시 저어만큼 하나씩. 그제사 창이 다시 별이 되는 연유를 새겨봅니다. 잠들지 못한 마음 별이 되는 지금, 내 것도 저기서는 별이 되겠지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갈뫼에서의 우리 생활을 단 몇달이라도 연장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어요. 아니 단 몇주일이라도.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당신의 얼굴에서 그 낯선 지방도시의 사진관에서 찍어보낸 아버지의 얼굴에 어려있던 젊은날의 허기와 무슨 열병 비슷한 결연한 비장함이 엿보였다고나 할까요.


남자와 함부로 밥 같이 먹지 마라, 둘이서 밥먹으면 정 생긴다구요.


우리가 바라던 세상,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갈뫼의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과 같은 그런 곳이라고 나는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당신이 책을 통해서 생각하고 이루어낼 세상은 결코 단조롭거나 평화스런 고장은 아니겠지요. 평등을 위한 단호하고 강력한 계급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긴장된 소용돌이의 공간이 되겠지요. 혁명의 적들이 둘러싸고 있을테니까요. 당신은 이 생활이 자유주의자의 공간이라고 스스로 비하하지 마셔요. 내가 바라는 것은 겨우 이만큼밖엔 안되니까요. 그 어떤 체제라 할지라도 당신과 나의 이 초라한 피난처는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나에게 이념은 아무런 문젯거리도 아니겠지요. 당신만 곁에 있다면......


윤희야, 나는 그때, 해방된 우리나라를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세상으로 만들려고 친구들과 같이 활동을 했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꼴이 이게 뭐냐. 우리 몇몇이 눈보라를 헤치며 뛰어다녔던 그 산자락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잡혀서 남원수용소 가서 느이 큰삼촌 시키는 대로 전향서 쓰고 그리고 거기서 젊은 나는 시대하구 같이 죽어버렸어. 역까지 이 껍데기를 끌고 잘도 버텨왔다.


얘, 글쎄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자기 잘못을 정확히 알게 되고 또 자신을 용서하게 되더구나. 나는 절대로 그때를 후회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런 길밖에 없었을까 하구 생각해볼 때가 많아. 그래, 세상에서 지어낸 삼라만상은 부처님 말씀처럼 세상이 지닌 한계만큼의 꼴로 나타나게 마련이지. 내 동료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그저 허공중에 빛나는 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양쪽을 보니까 서로 거울을 맞대놓은듯이 그저 사람살이의 좌우가 바뀐 데 지나지 않았어. 내용은 서로 싸우는 동안에 서로를 닮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람세상의 이 미완은 멋있지 않니? 미처 해내기 전에 같은 무렵에 살던 모두가 죽어버리니까. 불교에서 그걸 뭐라고 하더라. 백년 후에는 현재 세상에 살고 있던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댄다. 그맘때 사람들은 모두가 새사람들이지. 그렇게 거듭된단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가 지녔던 인생의 한계를 그대루 물려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약점을 자기 것으루 사랑하게 된대. 언닌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닌가 몰라.


나는 다만 자유라든가 사람의 기본권이라든가 생존의 존엄성 등등을 존중하는 세상이었으면 해. 그이도 그런 사람에 지나지 않았어.


그래요, 사는 일에는 에누리가 없지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든 끌어안고 겪는 이에게만 꼭 그만큼 삶은 자신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차례 차례로 내놓거든요. 참으로 지당한 말씀.


나는 이제부터 나 자신에게로 돌아갈 결심을 했습니다. 제발, 몹쓸 병에 걸리거나 쓰러지지 말기를 빌어요. 살다가 언젠가 갈뫼 생각이 나면 그리로 돌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우리는 무참하게 패배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무슨 대수예요. 까짓 거, 쓰러진 채로 그냥 하늘을 볼 거예요. 하늘 구석엔 저어 끝자락에 가느다란 띠처럼 노을이라도 한줄기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무섭고 끔찍한 희망처럼 가냘프게 남아 있게요. 잘 있어요. 부디 당신의 암울하고 어두운 고독 속에서 뭔가 구원이 남아 있을 걸 미리 기대하진 말구요.


어떤 젊은이냐? 나두 잘 모르겠지만, 시를 쓴대. 우리 엄마는 희미하게 웃으셨어. 그러곤 이러는 거야. 난 책벌레에게 데었는데, 시를 읽는다면 모를까 쓰는 일은 사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되거든. 요샌 머 그렇지두 않대요. 학교 선생님두 하구 출판사나 신문사나 머 직업은 많대요. 엄마는 역시 아버지의 아내였어.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어. 직장 걱정을 하는 게 아냐. 사회가 어려운 시절이 되면 시를 쓰는 사람은 못 견디게 된다더라. 모든 책에는 사회가 이러이러해서는 안된다고 씌어 있거든.


아버지와 엄마와 언니는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닮았는지 몰라. 생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같이.


내가 울컥했던 건 글이나 그림이 아니라 달력에 무수히 그어진 가위표 때문이었을 게다. 지난 일년 동안의 열두달 날짜마다 빈틈없이 엑스표가 그어져 있었고 또 이번 연말에 미리 받은 비슷한 새 달력은 아직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은 저 공백의 날짜들과 이미 표를 하고 지나가버린 작년의 날들이 여기서는 전혀 의미도 없는 시간인 것만 같았다. 내가 지켜온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람불고 벼락치고 캄캄하던 끔찍한 밤도 동이 트면 기적처럼 밝아오듯이 혁명의 순간은 올 것입니다.


혁명이라고. 그건 정지된 섬광이야. 오현우처럼 유폐되거나 그의 아우들같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연발사격에 쓰러지지 않는 한 그는 출퇴근하는 토론자로 기진맥진 살아가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혁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환멸에 치를 떨게 된다 할지라도 피부를 찌리는 듯한 전율로 나는 살아있다고 중얼거리게 하는 사업.


미경아, 예술과 혁명이 가는 길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처음 시작했던 삶으로 되돌리려는 안간힘이야. 지상에서 비롯된 새벽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상에 세워진 한낮의 모든 허접쓰레기 같은 제도를 부숴버리는 일.


미경아, 표현할 시간도 없었던 너의 젊음을 생각한다. 네가 그에 관해 자랑스레 얘기할 때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얼굴로 따스함을 내보이던 게 생각난다. 나는 그곳에 가봤어. 네가 신나를 뿌리고 불덩이가 되어 떨어졌다는 공장 정문 건너편 그 건물 옥상엘 올라가봤어. 일층은 부대찌개 전문식당이고 이층은 다방이고 그 위는 당구장이더라. 나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게 당구장 앞문을 슬쩍 지나서 가파른 시멘트 층계로 올라가 그 끝에 있는 작은 철문에 이르렀다. 녹슨 문을 밀어보았더니 요술처럼 쪽문이 슬그머니 열리는 거야. 그래서는 한발을 내딛자마자 삭막한 슬라브 지붕 위에 서게 된 거야. 빈 소주병들이 뒹굴어다니고 오줌 지린 냄새도 났어. 나는 네가 섰던 자리에 정확하게 가서 발을 디뎌볼 수가 있었다. 공장 정문이 똑바로 보이는 바로 그 지점이겠지. 노동자들이 길을 메우고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퇴근시간 무렵이었을 거야. 너는 무엇처럼 보였을까. 아마 꽃은 아니었을걸. 차라리 네가 뿌린 유인물이 그렇게 보였겠지. 너는 타오르는 물체처럼 그냥 털퍼덕, 떨어졌어.


내가 곁에 있었다면, 우린 다 같은 딸인데도, 내가 엄마가 되었을 것 같애. 내 손으로 쓰다듬어주면 너의 그실린 머리카락은 푸슬푸슬 부서져내리고 손가락은 타다 남은 삭정이 같았겠지만.


나는 다시 층계를 내려와 알루미늄 새시 창에 달린 식당에 앉아 부대찌개 시켜놓고 혼자서 소주를 마셨다. 겨울이라 금세 깊은 밤처럼 깜깜해지고 공장 앞에는 새파란 가로등이 켜졌어. 거기서 거뭇거뭇한 사람들의 자취가 나타나더니 길이 점점 가득차기 시작했지. 그런 조명에다 칙칙한 작업복차람이라 그들은 어둠속을 흘러가는 물처럼 보였다.


그들은 언제쯤 도달하여 바다를 이루게 될까. 어디만큼 흘러가서.


꿈속의 여인을 그리다가 뒤늦게 속옷을 본 거야.


이제부터 물신의 세계가 지배할 테지. 시장은 모든 지구 사람들에게 동일한 생산양식을 강요하고 망하지 않으려면 이게 문명이니까 받아들이라고 들이댈 거야. 누구나 번들거리는 크리스털 눈알이 되어 아무런 상상력도 없이 돈에 반응하는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지두 몰라.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나는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나서 그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독방에서 아프게 이해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국가권력을 장악하려는 여러가지 시도는 낡아버렸거나 불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세기에 자본과 물질의 체제 속에서 반체제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았던 생각은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왜곡되었다.


작가 후기


이제 나의 반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인 듯한 생각이 든다. 곡절 많은 세월이었지만 나는 글을 쓰든 쓰지 않든 '문학을' 오롯이 살아냈다. 어쨌든 죽는 날까지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온몸으로 사는 것이다. 나의 산전수전은 작가로서의 마음바탕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나와 내 벗들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우리가 겪은 일들을 미래나 예견에 사로잡힌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현실 변화를 끌어내오기 위한 구체적인 과정으로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제는 시대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물결 속에 휩쓸리며 헤엄쳐가던 하찮고 가냘픈 개인의 나날을 통해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투로 얘기하자면 오래된 정원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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