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이번 독서 모임 책이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였다. 작년부터 가장 핫한 소설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모임원들이 너무 인기가 많아 도서관에서 도저히 빌릴 수 없어 샀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요즘 대세 배우라는 박정민이 '넷플릭스보다 더 재밌다' 며 극찬을 한 데다 작가가 젊고 미인이라 다른 작가와 달리 작가 사진을 크게 띄운 기사가 많아 좀 거품인가 하는 마음이 있긴 했다. (원래 남들이 다 열광하면 약간 시큰둥한 편) 그런데 소설을 읽고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정말 이 넓은 스펙트럼과 깊은 감정의 폭과 역사 의식을 소설에 접목하는 솜씨 이 나이대의 작가가 가능한가, 정말 본인이 다 쓴 게 맞을까, 혹시 대필 작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보통 많은 단편 소설집들이 절반 정도는 완성도가 떨어져 의무감으로 읽게 되는데 이 소설집은 작품의 질이 고르게 뛰어났다. 특히 스무드, 구의집, 혼모노 같은 작품들은 정말 발군이라 놀라면서 읽었다.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사회적 맥락과 닿아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장류진 작가는 이미 넘어선 것 같고 최은영 작가나 백수린 작가(다분히 비슷한 분위기와 인물들이 일상적 이야기를 하는 편)도 뛰어넘은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 시간이 지나면 김애란 작가, 더 나아가 한강 작가처럼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기작이 기대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작품 전반적으로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던지고 그것들이 겹쳐지거나 분리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결말도 상당히 잘써서 결말까지 읽으면 마치 입체적인 작품을 조망하는 느낌이 들고 독자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1. 길티클럽 : 호랑이 만지기
작가가 영화 업계와 팬클럽에 대한 취재를 엄청 열심히 한 것 같았다. 내가 덕질하던 감독의 실체가 환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예술은 진짜인데 그것을 추구하는 감독의 실체와 그 팬덤은 가짜라는 구도이다. 감독의 아동 학대와 마지막의 동물 학대가 겹쳐지는 부분도 절묘했다. 동남아 여행에서 하는 동물 체험은 대부분 동물 학대가 동반되기에 거의 안 하는 편이라 더 공감이 갔다. 동물 학대의 분위기와 뉘앙스를 아무도 감지하지 못하는데 임산부인 서술자만이 누린내를 맡으며 감지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 서술자조차도 어쩔 수 없이 호랑이를 만지면서 쾌감을 느낀다. 영화 업계에 계신 분이 촬영을 하다보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이런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며 아주 사실적인 에피소드라고 했다.
책 속 한 줄
어쩌면 정말 허구 아닐까 하는, 내가 실패한 영화를 한편 본 게 아닐까 하는, 별 반개도 아까울 만큼의 너절한 서사, 치덕치덕 처바른 클리셰. 질문도 남지 않고 더할 말도 없는 싸구려 엔딩. 감독이 지고 만 영화.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영화. 그렇게 지독히도 못 만든 영화를 본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호랑이가 불편한 듯 근육을 움찔댈 때마다 척추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었다.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게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2. 스무드
개인적으로 광화문이나 시청역에서 약속이 있을 때 극우 집회의 쩌렁쩌렁한 소음과 마주치면 짜증이 확 난다. 마치 벌레떼를 보는 것 같은 역겨움이 솟아오르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극우 집회를 대상으로 이런 소설을 쓰다니. 상상력과 참신한 소재에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인 부모님을 두었으면서도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알지도 못하는 서술자 한국계 미국인 듀이의 시선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이것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한국 고급 아파트의 실태를 보며 '한국인들은 이렇게 차별적인가' 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재미있었고 노인들이 대부분인 극우 집회에서 눈에 잘 띄는 젊은이라 사람들이 쳐다보며 지나가는데 '젊은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실제로 나도 노려보면서 지나가기 때문이다.
듀이는 어떤 불안도 결핍도 비판도 없는 매끈한 세계인 제프의 작품 스무드를 사랑한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어떤 관심도 없고 시선을 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자신들만의 극우적 세계관에 매몰되어 귀를 막은 채 어떤 외부의 소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극우 집회 노인들과 쌍둥이처럼 닮았고 이 연결이 매우 절묘하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만 보고 외부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앞 소설 길티 클럽 속 김곤의 팬클럽과 비슷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맥락을 읽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 노 프라블럼을 연발하며 듀이를 도와주는 노인이 너무 친근하고 호감형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극우 노인들도 그냥 이웃이다, 그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는 분까지 있었다. 작가가 메시지를 너무 세련되게 숨겨놓은 것인가. 하지만 옳고 그르다를 떠나서 그냥 펼쳐 놓은 느낌이라 더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판적 시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뚜렷하면 약간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것이다.
책 속 한 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듀이. 나보다도 더 미국인 같네요.
대단히 차별적이군. 한국은 이런 나라인가.
제프의 작품에는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었다. 바버라 크루거나 뱅크시의 작품처럼 무엇을 비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전지식 없이도 감상할 수 있고 뭘 안다고 감상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그런 매끈한 세계를 추앙했다.
농담은요. 미국인들은 다 나 같을 거예요.
그들의 애국심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과하다고 생각했다.
듀이, 우린 미국인이야.
볕이 잘 드는 테라스는 환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지내는 나흘간은 불안도 결핍도 매끈하게 깎여나갈 것 같았다. 내게 이곳은 잠시 거쳐가는 경유지로 훌륭했다.
3. 혼모노
이 소설을 읽으며 오래 다닌 직장에서 실직한 지인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라도 좋으니 하려고 다른 분야의 일이나 힘든 일까지도 다 알아보는데 나이 때문에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일은 어떠냐 저 일은 어떠냐 물어봐도 물어보는 족족 나이 때문에 안 뽑아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사회는 나이에 정말 가혹한 나라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 속에서도 귀신조차도 젊은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처하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몸도 예전같지 않고 외부에서도 찾지 않거나 피하게 된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아니고 그저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인데 그 일을 하며 나이를 먹어버려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는데 하던 일조차 더 이상 못하게 되는 때가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 피투성이가 되면서까지 진짜(혼모노)가 되려는 마지막 장면의 노력이 숭고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포기하지 않고 체념하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끝까지 간다. 신과 인간의 기싸움이 정말 장관이다. 결국 그런 무서운 의지력으로 인간이 신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신애기가 넘어지는 장면)
주인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서 웃음을 자아냈다. 직업을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순간이 오는데 못 받아들이면 추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마지막 장면은 신이 들어온 건지 아닌 건지 중의적으로 읽혀 열린 결말이다. 마지막 말은 신의 말인지 인간의 말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매서운 일침을 가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나는 관성적으로 미지근하게 일하면서 욕심만 내지 않았나. 남들의 평가나 시선과 관계없이 신명나게 몰입한 순간이 언제였나.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책 속 한 줄
이게 보기에는 비슷해도 우렸을 때 차이가 나거든요. 가짜는요, 마실 때 몸이 거부합니다. 역겨운 향도 나고요. 빛 좋은 개살구죠.
그럴 때 찍지 말라며 윽박지르는 것은 '가짜'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어리면 환대받고 늙으면 외면당해. 이 바닥이 그래.
어디 정계뿐이겠는가, 내가 몸담은 바닥에서도 나이 든 사람은 내쳐지는데, 생각하며 잘 숙성된 와인을 들이켠다.
편의점 가판대 앞에서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는 뭐가 다른지 한참 고민하는데, 옆에서 누가 하나 남은 바나나 우유를 쏙 채간다. 보라색 트레이닝복이 눈에 익더라니 앞집 신애기다. 별수없이 바나나맛 우유를 집어들고 그애와 앞뒤로 서서 계산을 한다.
바나나맛이 나지만 바나나는 아닌 우유를 마시며 나는 장수할멈을 떠올린다.
나이 들어 야심까지 크면 사람들도 그걸 알아채고 달아나. 좋은 운도 다 황이 되는 법이다. 늙어갈수록 본심을 숨겨야 약이 된다, 그래야 추하지 않다, 조언하며 할멈은 나지막이 덧붙였다.
할멈이 생화만 좋아하는걸. 혼모노라면 환장하는걸.
저...혹시 모형은 없습니까.
우리가 받은 생은 여느 평범한 이들의 삶과는 다르니까. 저 나이에 나는 평범한 삶을 살고 범상한 몸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했는데, 한번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저주처럼 여겼는데.
그놈이 그러더라. 넌 이제 감이 다 죽은 것 같다고. 자기가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게 몇년인데 니세모노 하나 구별 못하겠냐고.
할멈이 넌 너무 늙었다네. 늙은 게 야심만 가득해 흉하다네.
모르겠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름도 다 사라진 땡볕 아래, 판수도 악사들도 점점 지쳐가는 와중에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 이는 오직 나뿐이다. 피범벅에 몰골도 흉하겠으나 시야가 환하고 입가엔 미소까지 드리워진다. 신령 근처에라도 가닿은 것처럼 몸이 가뿐하고 신명이 난다. 장단이 빨라질수록 나는 고조된다...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4. 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
이 소설집에서 구의 집이 제일 좋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나도 그랬고 그래서 시간이 되는 모임 분들과 남영동 대공분실(현재 민주화운동기념관)까지 다녀왔다. 그곳을 다녀오니 그야말로 소설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다녀온 분이 밝고 따뜻하고 모든 것이 즐거운 토요일 오후에 어둡고 무서운 공간에서 몇 시간 동안 있으면서 바깥과 매우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또 앞 소설 스무드와 연결되며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의 삶에 집착하고 이런 역사적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 것에 매몰되어 살았는데 진실이 뭔지 알아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악마도 울고갈 공간의 설계자인 건축가 김수근에 대하여 찾아보았다. 유튜브 영상들을 쭉 보았는데 의외로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문 것이 놀라웠다. 일반인 유튜버들은 비판했지만 조회수가 적었고 조회수가 많은 영상들인 건축학도들이나 건축의 관점에서 만든 영상에서는 그를 극찬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대공분실을 빼고 그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영상도 있었다. 건축학도들이 만든 영상에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이런 관점도 있다 이런 식으로 비판 의견을 내서 너무 답답해서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거냐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구보승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한 것은 이런 건축학계의 시선을 피해가려는 작가의 전략인 건지도 모른다.
인간이 살아야 할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가 인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고통스럽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더 절망스럽게 하여 그 근본부터 무너뜨릴 것인지를 고심하는 장면은 정말 소름끼쳤다.
대공분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나치의 '악의 평범성'과 비교하는 글이 많았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노력했을 뿐인데 사람을 괴롭히고 고문하고 죽이는 악에 복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고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치 수용소와 가스실을 고안한 사람도 유명한 학자라고 했다.
스무드를 읽고 이 소설을 읽으니 애국이라는 이유로 다른 모든 것에 귀를 막고 사람을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고 했던 당시의 고문 경찰들과 아몰랑 너네는 무조건 부정선거 윤어게인 이러며 태극기를 흔드는 극우 노인들과 극우 청년들이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매끈한 스무드의 세계를 추구하는 듀이처럼. 이것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책 속 한 줄
민가와 떨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열차가 다녀 비명이 새어나갈 염려가 적으며, 국가 소유지라 분쟁에서도 자유로울 만한 곳에, 국제해양연구소가 지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고문받을 이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증설한 시설이자 취조를 해도 실토하지 않는 이들이 최후로 방문하는 밀실. 그것이 내무부 장관이 여재화에게 발주한 증축 공간의 실체였다.
아닙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련원이든 고문실이든...인간을 위한 공간이긴 하니까요.
급수에 철저히 신경쓸 것, 방음에 유용한 자재를 사용할 것, 창과 문은 되도록 적게 설계할 것......
한데 이 취조실은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만 커졌다. 건축의 본질이나 사명, 순수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라앉고 이제는 세속이나 명욕 같은 불순물만 남았다고 여겼던 여재화였지만, 이 공간과 이곳에서 머무를 이들을 상상할 때면 잊었던 초심이 저변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한 시기가 서서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제 생각에 이 공간엔 창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조사자가 유리를 깨고 밖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고 자칫 비명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희망이 생기잖습니까.
희망?
죽고자 하는 사람도 빛 속에선 의지와 열망을 키웁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도 있고 흔들렸던 신념이 굳건해질 수도 있죠.
여재화 역시 빛이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숙고 끝에 창을 넣은 것이었다. 한줌도 안 될 인간다움이나마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 했기에. 그것은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는 이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공간을 설계하는 여재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보승은 달랐다.
취조실에 희망은 불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그것이 구보승의 특기였다. 합리성.
복도 천장을 좀더 높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천장이 높아져 잔향이 생기면 취조실에서 새어나온 비명이 복도를 울리게 될 것이고, 그 소리에 다른 이들의 공포가 극대화될 테니까요.
구보승이 저렇게 거침없는 이유는 그저 뭘 몰라서라고. 건축 위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라서라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 저놈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것이 부처라고, 나와 달리 저놈은 일말의 연민이나 부채 없이 이 공간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피조사자들이 서로 내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취조실마다 출입문을 엇갈리게 설계했고, 욕조와 샤워기가 들어갈 취조실 바닥은 방수 무르타르로, 벽면은 차음을 고려해 유공흡음판으로 마감하라는 메모를 설계도에 일일이 덧붙이기도 했다. 피조사자가 전등을 깨 암전이 되거나 인질극을 도모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전등갓에 철제 덮개를 씌우라는 메모를 읽으며 여재화는 혀를 내둘렀다. 이상을 뺀 지독한 합리주의군.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지만......
선생님의 설계에서는...공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선생님, 피조사자들은 아마도 눈을 가린 채 계단을 옹를 겁니다. 선생님이 설계한 대로라면 여기가 몇층인지 감으로나마 알 수 있겠죠. 안심할 겁니다. 계단 수를 세며 탈출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선형 계단에는 층의 구분이 없습니다. 내가 몇층에 있는지 알 수 없죠. 방향감각이 무뎌진데다가 계단 폭이 좁고 경사가 가팔라 안정성마저 상실된다면, 그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극대화될 겁니다. 그게 제가 설계도를 수정한 이유입니다.
선생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네, 제가 선생님의 뜻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창이 필요했던 건데......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으니까요.
구보승은 화색을 띈 채 말을 이었다. 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나길 거라고.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선생님이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라고요. 저는 그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저히 인간을 위해 이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다 선생님께 배운 건데......
그럼에도 여재화는 대장에 구보승의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이 끔찍한 공간에 자신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고 여재화는 믿고 싶었다. 대장에 구보승의 이름을 새긴 건 그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야만이었다.
5. 우호적 감정
이 소설은 작가를 안 보고 읽으면 장류진 소설인 줄 알았을 것 같을 정도로 매우 비슷했다. 나는 회사를 안 다니지만 다니는 사람들에게 같은 일을 하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연봉이 더 낮은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났다. 수잔이 내 동년배라서 결국 회사에서 밀려난 그녀가 안쓰러웠다. 50대에 대기업 출신 남자인 진이 고생하며 회사를 키워온 창업 멤버인 수잔을 밀어내고 결국 회사에서 살아남는다. 이런 걸 보면 대한민국에서 50대 대기업 출신 남자는 40대 중소기업 다니는 여자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판 자체가 그들 위주로 짜여진 느낌이라 좀 씁쓸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진이 대기업 출신 남자라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기에, 회사의 니즈를 충족시켜줬기에 남은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회사는 이익 집단이기에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본다는 것이다. 역시 회사는 무서운 곳이다.
책 속 한 줄
소서리 사람들끼리 가족같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사이가 벌어져서...
수잔은 자료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차갑게 말했다.
그런 관계가 어디 있겠어요. 다 환상이죠.
알렉스, 너무 애쓰지 마요. 애쓰면 더 멀어져.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6. 잉태기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에는 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친일파 후손 가족과 유사한 부유한 친일파 후손 가족 집단이 나온다. 작가의 전작을 고려했을 때 굳이 '지지'라는 일본어를 거리낌없이 쓰는 이 가족이 친일파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친일파 후손 가족일 것임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있었다.
'내가 깔아둔 매끈하고 부드러운 판에 그애는 무사히 안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연스럽고 기껍게.' 라는 서술자(엄마)의 말을 보니 앞 소설 스무드가 생각났다. 대한민국에서는 민족, 역사, 사회, 정의 이런 것에 무관심하게 살아야 매끄럽고 부드럽고 부유하고 평온한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는 걸까.
딸은 자아나 생각 자체가 없어서 마치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를 보는 것 같았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하는 딸에게 걱정 말 엄마가 다 키워줄게 라고 하는 장면이 너무 기괴하고 소름끼쳤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다른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해석해보라고 펼쳐놓는 느낌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비판적 의도가 드러났다고 읽은 분도 있었다. 또 엄마가 딸을 사랑해서 집착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딸을 대하는 것 같다는 분도 있었다. 끝부분이 '지지'를 이용해서 일종의 라임을 시도하는 부분도 정말 재치있게 느껴졌고 재미있었다.
책 속 한 줄
내가 깔아둔 매끈하고 부드러운 판에 그애는 무사히 안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연스럽고 기껍게.
서진은 나 없이는 아무 것도 못했고 내가 연출한 독무대에서 더 힘차게 활보하는 아이였다.
엄마, 나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 마, 우리 아가. 엄마가 다 키워줄게.
아가, 난 말이다, 결핍이 집착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애정도 적절히 내어줄 줄 알아야 해.
핏줄에게 가장 좋은 것만 쥐어주고 싶다는 욕심. 아이 앞에서 한없이 연약해지는 마음. 그런 면에서 시부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닐까. 애정으로 집요하게 얽혀 한몸이 되어가는 관계. 그 사람을 향한 염오도 언젠가는 무뎌질까.
어떤 가족은 가까운 적 같기도 하다는 속엣말을 흘려보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 이 말이 비단 관용어가 아니라 들끓는 진심과 순애를 녹여낸 말이라는 것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절절한 애정 표현이라는 것을 너도 알게 될까.
너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응?
지지인가 뭔가 하지 말라고! 저 사람 좀 그렇게 부르지 마!
너를 지지해줄 사람은 난데, 왜 너는.......너는, 불똥이 왜 복이 쪽으로 튀냐며 시부가 윽박지른다. 지지 않고 소리친다.
7. 메탈
80년대생이지만 오아시스, 퀸 등 락을 좋아했다. 메탈 가수는 메탈리카밖에 모르지만 결국 메탈이 완화된 형태가 락이라고 생각한다. 특유의 듣거나 부르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락의 시대가 져버린 것이 못내 안타깝다. 다시 한 번 락의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 소설에서도 메탈의 시대를 꿈꾸는 남학생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미 메탈의 시대는 져버렸고 끝까지 메탈 가수의 꿈을 꾸던 우림도 결국은 꿈을 포기한다. 소설은 우림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부푼 가슴을 안고 서울에 놀러가서 홍대에서 메탈 공연을 보지만 관객은 단 6명 뿐이었고 공연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가수와 밖에서 마주쳤지만 눈을 피해버렸고 그 가수들은 곧 해체되었다. 그들은 메탈의 종말을 목격한 것이다.
한때 소설가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저그런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버렸지만. 만화 미생을 보며 직장인이 된 장그래가 바둑 영웅들을 한 명씩 떠올리는 장면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을 보니 그 장면이 생각난다. 꿈을 포기하고 그저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결말이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무겁지 않아서 더 좋았다.
책 속 한 줄
그들과 함께 달리면 우림은 더 나아질 것도 망할 것도 없는 현실에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만 같았다.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 꿈을 영원히 꿀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부도체 같은 그들에게 열정이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준 음악. 이 시절이 영원할 것처럼 그들은 짙푸른 밤을 내달렸다.
한 시절의 열정, 투지, 그리고 어렴풋한 희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지트에서 혼자 기타를 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데모 곡을 녹음하다보면 불현듯 근심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청춘의 가장 푸른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도 될까.
비좁은 아지트에 나란히 누워 서로 몸을 겹치고 온기를 나누다보면, 무위처럼 느껴지는 청춘이 더는 아깝지 않았다.
레미 킬미스터가 타계했다. 갑작스러운 부고가 믿기지 않아 우림은 멍하니 포털 창을 바라보았따.
우리의 한 시절이 저물었구나.
코발트빛 꿈을 꾸던 소년들도, 그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아지트도 전부 허구 같았다.
잊고 싶었지만 깊숙이 잔존해 있던 여러 겹의 기억. 귓가로 흘러들어와 온몸을 한바퀴 훑고서도 빠져나가지 않던 격렬한 열기.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두려워하지 않고 한길을 내달리고 같은 꿈을 꾸던 소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