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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리봉 Oct 31. 2023

시를 처방해 드립니다.

- 내 고민을 들어줘~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2학기 등교한 고3 학생들과 ‘시 처방전’이라는 시 감상 활동을 했다. 같이 근무하시는 선생님의 활동을 참고하여 계획한 수업인데, 친구의 고민 쪽지를 읽은 다음 그 해답으로 ‘시’를 처방하는 활동이다. 


  <10대의 마지막_ 내 고민을 들어줘>라는 제목의 수업 게시판에 올라온 고민은 정말 다양했지만 ‘노력과 선택, 그에 따른 책임과 후회’라는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 쪽지를 보고 있노라니 치열한 속내와 달리 겉으로는 묵묵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익명의 고민을 대면한 아이들이 내린 ‘시 처방’을 읽다 보면 이들은 고민 속에 이미 해답을 찾을 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친구야,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 반복되어 상처 받고 있구나. 노력에 대한 결과는 계단처럼 나타난다고 생각해! 김경미 시인의 <식사법>이라는 시의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이라는 구절을 너에게 처방해. 묵묵히, 차분하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쌀 한 톨도 흘리지 않게 잘 넘기다 보면 언젠가 훌쩍 높은 곳에 올라가 있을 거야.’ 


  ‘친구야 안녕! 후회하는 선택을 두려워하는 너에게 나태주 시인의 ’가난한 소망-원이를 위하여‘를 처방해. 특히 3연의 내용을 주의 깊게 봐줄래?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후회도 더 큰 것이라고 생각해. 만약 네가 삶에 대해 큰 열망이나 의지가 없었더라면 후회도 없지 않았을까?’


  고3 친구들은 ’후회‘는 열심히 살고 싶은 ’열정‘의 또 다른 말이라는 것, 어떤 일에는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고 계단형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온전히 자신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9월 11일부터 대학 수시 입학 전형 지원이 시작되었다. 뚜렷한 목표를 지니고 차근차근 준비해 온 친구부터,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친구들도 있다. 


  비단 열아홉 살 청소년만 선택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아직 매 순간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이 떨리고 두렵다. 심지어 ’교사‘라는 진로도 정말 나에게 맞는 직업인지,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종종 고민한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고민과 선택을 대면할 열아홉 살의 친구들을 위해 함민복 시인의 ’나를 위로하며‘를 처방해 본다. 


나를 위로하며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를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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