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모습은 만남의 결과
학교라는 사회에서 2월은 교직원의 인사이동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새로운 학급 편성이 발표되는 만남과 이별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이다. 이별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아쉬운 이별이 있는가 하면 후련한 이별도 있다. 헤어짐을 가리키는 우리말 중 관계나 교제를 영원히 끊는 ‘절교(絶交)’, 애틋하게 이별하는 것을 뜻하는 ‘석별(惜別)’, 소매를 잡고 헤어진다는 뜻으로 섭섭히 헤어짐을 이르는 ‘몌별(袂別)’, 존경하는 사람과의 작별을 높여 이르는 ‘배별(拜別)’ 등 이별에 관한 어휘가 세분화된 것을 보면 이별의 종류도 그만큼 다양한 것이다.
이별은 만남의 결과로도 볼 수 있으므로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는 만남을 시작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만남은 인연, 관계는 노력’이라는 말이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지만 그렇다고 모두 좋은 관계로 남을 수는 없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노력하는 관계는 어떤 것일까? 필자는 말귀와 글귀가 밝은 관계를 추천해 본다. 상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관계의 선을 그어 소통의 단절이 생기기 전에 눈과 귀의 감각을 일깨워 상대를 대면하는 것이다. 쉽게는 상대를 향한 인사를 인색하지 않게 건네는 것부터 시작해서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가 나를 오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말과 글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관계’라는 어휘의 근간인 상호작용성을 잊지 않는 것이다. 혼자서만 쏟아내는 독백이 아닌 상대의 말과 글을 왜곡 없이 이해하려는 ‘수용’의 말귀와 글귀가 밝아져야 한다. 상대의 말과 글을 자신의 경험치에 비추어 쉽게 평가하거나 조언하지 말고, 상대가 표현하는 어휘들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마음속에 담아 둔 채, 이해의 말귀와 글귀만 밝아지는 일방적인 수용자가 되어서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우리말 감정단어는 400여 개쯤 된다고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은 내 마음속에서 맴돌다가 사라지기 일쑤다. 노력하는 관계를 위해서 내가 발화하는 감정 단어 뭉치들을 조금씩 늘여야 상대방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동료 교사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선생님들 사이뿐만 아니라 학생들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음을 토로한다. 세대 간의 차이라든지, MZ세대라든지 등의 명분으로 소통 단절을 합리화하기보다 만남이라는 인연을 좋은 관계로 성장시켜 ‘절교’의 이별보다는 ‘석별’, ‘몌별’, ‘배별’과 같은 이별을 층층이 쌓아보는 것은 어떨까?
새 학년에 만나게 될 인연들이 나태주 시인이 ‘들길을 걸으며’라는 시에서 말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의 관계로 남길 기대해 본다.
- 경상일보 2023년 1월 교단일기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