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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Jan 17. 2021

아이와 낑낑대고 일기를 씁니다.

01 쓰려고만 하면 울기부터 하는 너는

   

난 어른이 다 됐어! 라며 둘째 아이가 호기롭게 학교 처음 가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브이를 그리고, 힘차게 학교로 들어갔던 날을 말이다. 새로운 친구들과 교실이라는 공간, 선생님의 목소리와 눈을 놓칠세라 뚫어져라 집중하던 아이는 그런대로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는 듯이 보였다. 친구들과 실컷 뛰어놀기도 하고, 틈틈이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아이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잘 흐르고 있었다.



 

 단 하루, 조금 평소와 다르게 많이 예민해지는 날이 있었다. 바로 미루고 미루던 일기를 써야 하는 일요일, 그것도 저녁. 주말의 마지막 날, 가족들과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고 넉넉한 여유를 느껴도 모자랄 판에. 뭔가가 찝찝하고 평일에 못 해 준, 쓸 거리를 위해 퍼펙트한 하루를 만들어줘야 멋진 부모가 되는 것 같은 스스로를 닦달하는 날. 시간이 갈수록 짜증 섞인 목소리는 기본, 상전이 따로 없는 형세로 뭐 쓰지? 뭐 쓰지만 하루 종일 하다가 뭐라고 한 마디 나올 때까지 눈을 보고 어떤 말이 나오기를 갈구하는 아이의 간절한 눈빛. 바로 일기를 쓰는 날. 이게 정말 이럴 일인가 싶을 정도로. 이건 아니지. 진짜 이게 뭐라고. 그런데 너무 자주 돌아오는 이상한 느낌적인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이었나.




 그나마 독서록은 조금 나았다. 책에 관련된 표지나 그림을 그리면 암튼 미션은 컴플릿이니. 그런데 글이 아니고서는 답이 아닌 게 하나 남아있으니 그건 바로 일기 쓰기였다. 1학년 때는 대부분이 그림 일기일텐데 알고 있는 상식이 있으니 글에 대한 고민을 더 안 했고, 그동안 책을 안 읽은 아이도 아니니까 큰 걱정이 앞서지 않았었다. 나는 아이한테 자유로움을 펼치라고 명언을 날리며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보고 있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나하나 봐줄 여력도 되지 않았기도 했고.

 이상하게 오후만 되면 쳐지고 졸리고 반찬은 하기 힘들어지고 간단히 때우고 싶은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큰 아이도 챙겨야 했으니.

 그런데, 내 계산처럼 일 년 그림일기를 해결하기엔 커다란 복병이 있었다. 물 흐르듯 넘어가기엔 선생님이 일기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뜨아! 이런 시련이 나를 찾아오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징징대고 낑낑대던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지만 말이다.



 아이 반 선생님은 그림일기를 잘 쓰면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 주시는 분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줄이 몇 개인지 세어보기도 하고, 서로 자랑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내 딸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릴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아니었다. 그 날부터 일기장의 줄은 8살 인생의 목표로 변신해 버렸다. 일기장에 그어주시는 줄은 긋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호명을 받고 앞에 나와서 읽기까지 한다는 거였다.

 아이가 굳이 공부나 크게 욕심이 없는 스타일이라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뭐 별 거 아니게 넘어갔을 일. 하지만 내 아이는 공부 욕심이 있는 누구보다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러워하고 질투도 하고 자기 일기장에도 선생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줄이 잔뜩 들어있기를 바랐다. 감정 표현에 줄을 좍좍 그어서 다시 돌려주시는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일기장을 읽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빨간 줄이 가득한 일기장. 그게 아이의 일 학년 목표가 되면서 우리는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은 뭐가 날아오고 날아들고, 다치고 깨지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와 아이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조용하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적들은 머리와, 다리, 심장에 스멀스멀 달라붙어 나와 아이를 갉아먹고 있었다. 상처 가득한 시간들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았다면 좋았겠지만 자신은 없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와 아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다른 집들도 다 물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인데, 왜 일기의 옵션은 항상 엄마일까? 아니면 우리 집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엄마가 뭐라고 말을 하든지 안 하는지 간에 꼭 옆에 있기를 바랐다. 그건 무슨 논리냐 따지고 싶었다. 엄마도 엄마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누가 들으면 엄마 인생만 찾자는 이기적인 엄마로 보일 게 뻔할 수위의 감정일 수도 있고, 그보다 아이가 원하니까 들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있어야 마음이 편해서 일기를 쓸 수 있다는 자기만의 논리. 그래, 난 그 논리에 설득당하기로 했다.


 1학년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은 꿈 소개를 할 때 한결같이 아이돌이라고 해서 엄마들끼리 우스갯소리로 걸그룹이라고 하자며 친해진 아이들이었다. 외모도 곱고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올 귀염둥이들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 일기를 잘 써서 앞에서 일기를 읽는다고 했다. 같이 매일같이 뛰어놀 때는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나니, 어쩜 일기도 척척 쓰는 아이들이었구나 싶었다. 내 딸만 빼고. 1학년은 친구들이 하면 다 해야 하는 때. 말해 뭐 할까. 화장실도 같이 가야 하는 때. 내가 모르지 않았기에 아이의 바람을 들어주긴 해야겠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무슨 수로 그 대열에 제대로 낄 수 있을까.



 목표만 큰 아이 앞에서 나는 참 어려워졌다. 한 줄이라도 빨간 줄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자, 사람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면 안 돼 등 일장연설을 하는 엄마 앞에서 아이는 듣던 중 또르르르 눈물을 굴렸다. 아니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황당했지만 아이는 뭔가 크게 나무라는 듯이 느끼는 것 같았다. 일기를 쓰기 전에 아이가 눈물을 쏟는 건, 적어도 육아라는 터널 동안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였다. 아직 마음이 순두부처럼 보들보들해서 그런 걸까? 더욱 단단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딸한테 실망도 들었지만 단단해져야 하는 거야라고 잘 알아듣게 설명을 했다. 그런데 나의 장황한 설득은 딸의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게 이럴 일이니? 울 일이야?" 답답하다는 듯이 따져 묻기 시작했다.

" 쓰기도 전에 울기부터 하면 선생님한테 줄은커녕 일기도 한 편 못 써."

나는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더욱 날이 서고, 아이에게 가슴을 때리는 말을 쏟아냈다. 그게 답이 아닌 건 이성적으로 알겠어도 한 번 올라오는 화는 이미 칼날이 되어 여기저기 쑤시고 날아다녔다. 그렁그렁 세상 커다란 잘못이라도 한 마냥 울먹거리다 쭈뼛쭈뼛 몇 자 적고 딸은 잠이 들었다. 주위가 고요해지자 조금 전 나와 딸아이가 나눈 시간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허공에 아직 남아있던 내가 쏟아낸 말들도 날카롭게 내 귀를 쳤다. 다 쓸어 모아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버리고 싶었다.

 겨우 몇 줄을 끄적거리고, 받침과 띄어쓰기를 다 틀려가면서 쓰는 동안 아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까르르 웃으며 봤던 그린치를 주제로 쓰기로 한 일기는 결국 눈물의 그린치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누구보다 내가 다 망쳐 놓은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함께 보며 웃고 즐겼던 시간들도 다 사라지게 만든 못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후회스러웠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이건 진짜 더 이상 이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왜 하필 일기를 쓰면서 울고 불고를 해야 하는 건지, 마음을 다쳐가면서까지 일기를 써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이게 정말 이렇게까지 할 일인지. 나를 위해서도, 아이 딸을 위해서도 이런 방식은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시간들 같았고, 바꿔야 하고, 바꿀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의 첫 일기

그린치 그림이 슬퍼 보인다. 딸은 행복해진 그린치를 그리고 싶어 했었는데, 울면서 마음이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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