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 Aug 28. 2021

그 시절,로맨스

남편만 모르면 되지 말입니다.

생일을 거하게 지났으니 이제 오십에 간당간당 닿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의 가을은 너무 성큼 와버렸고, 각본대로 가을을 좀 멋들어지게 타 줄 시간도 넉넉하니 나쁘지 않다. 아이들을 끼고 집인지, 학교인지 개념조차 흔들린 지 벌써 이년이 다 되어 가고, 나는 이 좁아터진 공간에서 자꾸 로맨스 추억을 소환하는 중이다. 추억 놀이인데, 그 정도는 뭐 어때. 나를 합리화하다 보니, 훗 웃음이 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까 늘 불안했다. 그래서 사랑을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고는 했다. 너무나 큰 상처를 받고서 그 상처를 다독일 방법도 찾지 못하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꼬리를 부여잡고 십 년을 보냈다. 그토록 긴 시간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이들이 서로 잡아먹을 듯 반찬 가지고 싸우기 시작한다. 그래, 난 두 아이의 엄마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다.


아이들이 줌을 하러 들어가니 집이 조용해졌다. 내가 기다렸던 시간이 드디어 온 것. 아침엔 믹스커피로 당을 채워줘야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나는 침대로 기어 들어간다. 모닝 루틴이고 뭐고 나는 언제나 잠이 부족하니까.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니 오늘은 패스한다. 늘 마시던 따뜻한 물 까짓 거 오늘 한 잔 안 마신다고 건강이 박살 날까 싶어 그것도 패스. 트렁크 바람으로 아침밥을 겨우 다 해 먹이고는 할 일 다 끝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살살 가벼워진다. 그전까지는 깨지 않는 잠과, 무거운 머리, 뻑적지근한 어깨로 힘들다가도. 침대에서 난 드라마를 켠다. 아, 너무 뒷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는 자칭 드라마 퀸이었다. 주변에서 드라마 어떻게 됐어?라고 하면 나는 입이 아프게 드라마를 내 스타일로 들려주곤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목숨을 걸고 본 기억이 또렷하다. 그 시절 본 드라마는 너무 많은데, 풀스토리는 모두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체로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올인, 첫사랑. 너무 많다.


드라마는 적잖이 내 인생을 쥐고 흔들었는데, 그중 드라마의 대사는 나를 주인공으로, 주변인으로도 만들어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괜한 희망과 내 삶의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예를 들어, 멋있는 실장님(아주 능력 뛰어나신 재벌 라인이어야 한다)을 만나는 건 현실에서도 가능한 줄 알았고, 위급한 순간에는 앞머리를 휘날리며 백마 탄 왕자님도 나타날 거라고 믿었었다. 가난한 주인공은 언젠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라 믿었고, 부자로 지내는 누군가는 비밀 자식이 있고. 갈수록 이해 안 되는 쓰레기 같은 장면의 불륜과 바람, 치정 같은 장면의 연속을 볼 때는, 욕을 하면서, 부글부글 속을 끓이면서도 나는 채널을 확 돌려버리지 못했다. 결국은 나쁜 놈이 거지꼴이 되어야 속이 시원해서였던 것 같다. 아 정말 무모하고 무식할 정도로, 난 드라마의 노예다. 시대극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숨 쉬는 것도 아까워서 최고의 몰입도를 보이며 시청자의 자세를 유지했다.


아무래도 이 분이 나오는 건 다 속속 찾아봐야겠다.

최근에 '알고 있지만'을 보면서 '나빌레라'에서 보았던 송강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송강이 안다면 얼마나 웃겨할까. 아니 아줌마가 그렇다한들. 내 생각이니까, 자유롭게 펼쳐보는 걸 송강도 이해해 주겠지. 알고 있지만의 여주인공은 영원한 사랑일 거라 믿었던 남자 친구에게 대찬 버림을, 남주인공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사랑을 믿지 않고, 두려움이 가득해서 나를 방어하며 사는 남자. 둘 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 그런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가 내 관심사였다. 둘이 사귀게 되긴 하지만 뭔가 불안한 여지는 남아있는 채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드라마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은, 상처가 있다면 아물 시간이 필요한가였다. 그러면서 오래전 그 시절의 통증이 다시 떠올랐다.  누군가였던, 한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이 나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그 상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던 10년을.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해서 어느 누구도 바늘 틈 하나 들어올 수 없던 그 시간들을. 어느덧 결혼하며 십수 년 차에 접어들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가볍고 의미 없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보니 너무 아픈 상처라고 오래 끌 필요는 없었다. 흘려보내버린 시간이 너무 아깝고, 그러면서 나는 잃은 것도 많았다. 세상이 다 끝난 듯, 몸도 돌보지 않았었으니까.  


요즘은 20대부터 부업과 부캐릭터로 글을 쓰거나, 재테크를 하거나, 집을 사두거나, 벌써부터 피부관리와 건강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을 본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젊은 세대들. 왜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첫사랑의 아픔으로 다 날려 버렸을까. 누구에게도 마음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가슴앓이로 몸과 마음을 다 축내던 그 시절의 찢어질 듯 아팠던 로맨스. 그 십 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지금까지도 너무 헛헛한 시간들이다. 그래서 앞으로 더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지만에서 아직 사랑에 서툰 젊은 주인공들이 세상을 뚫고 나갈 용기를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했었다. 사랑은 상처와 배신이 따르고, 거짓말 투성이 일거라 알기 때문에, 끝이 보이기 때문에 아예 시작도 안 하려는 생각은 너무 안타깝다. 결혼도, 아니 다른 무엇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삶은 너무 단조롭다. 깨지고 겪어보고 그 안에서 해답을 찾고, 다시 헤매더라도. 그런 시간이 더 많았다면 나도 더 나를 돌아보고 사랑해 주었을 것 같다.

보는 내내 삐걱대는 그 이야기의 끝에서야 나는 답답하게 눌려있던 묵은 마음을 벗었다. 알고 있지만, 가 보겠다는 그 말을. 재언의 떨리는 눈을 보면서도 꼭 잡아주던 나비의 손을. 그 조심스럽지만 부드럽게 감싸듯 잡아주던 그 손을. 사랑도 그런데 하물며 어떤 것들이야 안 그럴까.

 

오십을 바라보면서 이미 나는 많은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 모두 다 나만큼 알고 있기 힘들다고. 그러니 내 생각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나의 생각은 맞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기에 너그러이 누구의 생각이든 존중하고, 고칠 것을 고치고, 경험하면서, 또 부딪혀 가면서, 펑펑 눈물도 쏟아가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해 나가야 한다. 바로 나 자신, 내가 해 나가야 한다. 내가 움직이고, 내가 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으며, 또 시간이 지났을 어느 무렵에 또 다른 후회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나에게 힘을 주어야겠지. 지난날의 아쉬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후회하기보다. 지금의 현실에서 나를 찾고, 나를 사랑하며 살기도 짧은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야겠지.  

서로에게 진심이 닿는 길은 생각보다 멀 수 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릴 때도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