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또 새로운 이별을 만나기 위해

by 햇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Maquia: When the Promised Flower Blooms, 2018)

애니메이션, 드라마 / 2018.07.19. / 115분 / 12세 관람가 / 감독 오카다 마리


주관적 느낌 위주 서술. 스포일러 유의.
2019년 작성한 글의 백업본입니다.


일본이 지겹게도 사랑하는 (또) 모성애 얘기. 모성애로 창작물을 만들지 말라고 하면 아마 일본 애니메이션의 3분의 2가 뚝 잘려나갈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 있다. 주인공은 외형만으로는 나이를 판단할 수 없는 요르프 족 소녀 마키아. 이미 무슨 전개일지 감이 온다. 캐릭터 디자인과 설정도 판에 박혔다. 금발의 긴 머리 미소녀, 울음이 많고 대범하지 못하다. 영화 초반부 마키아와 대비되는 말괄량이 레일리아를 등장시켜 둘이 앞으로 다른 행보를 걸을 것을 암시하는데, 모두가 예상하는 그 흐름이다. 소심하던 외톨이 마키아는 세상을 늘 바쁘게 뛰어다니고 밝고 쾌활하던 레일리아는 성에 갇혀 날카로워진다. 이 대비는 사실 충분히 더 써먹을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둘 사이의 커다란 갈등은 없었다. 난 둘이 칼이라도 맞댈 줄 알았는데 최고의 친구로 끝나버렸다. 솔직히 고맙다. 둘이서 싸우고 있었다면 난 당장 넷플릭스를 끄고 하던 필사나 마저 하러 갔을 테니까. 안 그래도 고구마인데 여기서 계란까지 밀어넣고 싶진 않다. 이 영화에는 사이다가 없단 말이다. 이러단 죽는다.


모든 것은 또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판타지 세계관 안에서 사건의 발단은 대개 인간이다. 왕국의 번영 등의 이익만을 위해 요르프 족 소녀를 납치하고 고귀한 피를 위해 아이를 낳도록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보다가 열 받아서 머리 위에 물 올려놓으면 라면이 익을 것 같더라. 어째서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작화의 애니메이션에서조차 거지같은 현실 반영을 봐야 하는가? 그때 납치된 것이 마키아의 친구, 쾌활했던 레일리아다. 물론 구출 작전도 한다. 다만 레일리아가 이미 아이를 밴 상태인지라 스스로 탈출을 거부하고 만다. 이야기는 레일리아보다 마키아 가족 쪽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하지만 레일리아 네도 정말 미친 동네다. 그렇게 강제로 낳은 아이지만 레일리아는 그 아이를 안고 싶어한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어머니가 애 좀 만나고 싶다는데 탑에 가두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더라. 심지어 애가 엄마를 못 알아보던데.


마키아가 아이를 만난 건 레일리아가 납치되던 그때 즈음이다. 불의의 사고로 다른 요르프 족들과 헤어져 굉장히 먼 곳에 혼자 뚝 떨어지고 만 마키아는 어떤 곳에서 아이를 꼭 끌어안고 죽은 어미를 보게 된다. 어머니란 대단하구나~ 이런 대사가 빠지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어김없이 날려준 대사와 함께 아직 살아있는 아이를 품에 안은 마키아는 이 아일 자신이 키워내기로 결심한다. 초보 엄마인 마키아는 아이 키우기 가장 힘들다는 0세~6세의 현대 미취학 아동 시절을 친절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잘 이겨냈지만 그 후가 더 문제였다. 이 영화는 중반이 넘어서야 좀 볼만해진다. 극초반의 액션 잠깐, 후반부의 진한 감동은 좋은데 중반에 머리가 아프다. 고구마 구간은 늘 아들내미 사춘기 때문에 일어난다. 레일리아 구출작전 2탄 겸 전쟁 때문에 더 머리 아프다. 물론 중간중간 넘치는 감동에 마음에도 쓰나미가 일지만 다 보고 나면 기억나는 중반 장면은 비 오는 날의 약속 뿐이다. 이런 연출 참 좋아하더라.


영화는 마키아의 아들 아리엘의 생을 전체적으로 훑어준다. 이게 러닝타임 세네시간이었고 다른 이야기가 딱히 없었다면 굉장히 대단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다들 미쳐버리고 만다. 사건이 줄어드니 내용은 다큐 급이 되었을 테고 미친 작화를 유지하려면 작화진의 뼈가 밀가루보다 고와져야 한다. 이런 짓을 계속하다 누구 하나 실려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이미 지루한 걸 더 지루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어떻게 해도 지루한 내용이다. 영화는 말했다시피 정말 클리셰 투성이라 일본 애니메이션이든 한국 드라마든 작품 좀 봤다는 사람이라면 다음 내용과 결말까지 눈에 뻔히 보인다. 결국엔 구성과 요소, 디테일이 해냈어야 하는 작품인데 소재를 못 쓴다. 영 못 쓴다고 말하기는 어렵긴 하다. 나름 다 써먹으려고 애썼다. 더 했으면 과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만 역시 다 제쳐두고 너무 지루했다. 문제는 그거다. 이 영화는 시몬스 침대가 아니잖아. 보다가 잠 온다. 한 인간의 생을 다 훑기엔 영화가 부족했다. 러닝타임 내내 불타는 피자 짤 체험이 가능하다.


마지막에 자 여기가 감동할 타이밍입니다! 하고 떠먹여주는 건 괜찮았다. 더 막장이 안 된 것만 해도 어디냐 싶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도 대개 그런 식인데 그쪽은 막판에 정신없이 휘몰아쳐서 자! 터지세요! 울 시간입니다! 하는 것이고 이쪽은 바람 부는 들판에 다들 모여 있다가 하나씩 흩어져 둘이 남으면 그제서야 울음이 터지는 느낌이다. 잔잔하게 와주는 감동이 화려한 조명보다 더 우릴 뜨겁게 감싸준다. 뜬금없긴 하다. 중반부가 지루해서 이입을 못하다가 후반부에 감동을 주니 잘 안 올 수밖에. 다만 영화 보면서 잘 우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맨 첫 넘버에서 이미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 적당히 감동 받았다. 어햎도 클리셰 투성이 잔잔한 극인데 내가 진하게 감동 받잖아. 너희도 좀 더 해보지 그랬어! 강제로 주입당한 감동으로 어떻게 잘 보긴 봤으니 됐다.


담을 수 있는 이야기만 담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상당히 길었다. 그러나 늙지 않는 영원한 소녀이자 어머니인 마키아가 이미 다 늙어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아들을 다시 마주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손을 잡고, 그때 아이에게 덮어주었던 히비오르 천을 떠날 때 다시 덮어주는 장면 등은 클리셰라도 뭉클해진다. 열심히 살아왔구나, 마키아의 그 대사와 다녀왔어-어서 와, 로 이어지는 세월이 무색한 짧은 대화가 눈물을 더한다. 아들이 아직 어릴 적, 나는 엄마니까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비 오는 날의 외침은 떠나는 아들 앞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지만 아무도 마키아를 나무랄 수 없다. 또 새로운 이별을 향해 가는 여정의 시작으로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결말만 보면 정말 완벽한 영화 같다.


이 영화는 키워드를 생각하며 보면 더 재미있다. 제목에 적혀있듯 '이별'을 생각하며 보면 참 재밌는 작품이다. 작품을 뜯어보며 감상하는 건 지루함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결말이나 진행이 너무 예상 범위라 좀 웃기긴 하다.


크게 또 보면 좋은 키워드는 사랑이다. 사실 모성애라고 일축해도 무관할 것 같다. 일전 요르프 족의 장로는 마키아에게 사랑하면 외로워질 거라는 경고를 건넨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말부 마키아가 뱉은 "저는 아리엘을 사랑해서 좋았어요"라는 말로 부정당한다. 바람직한 부정이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그것이 연인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크게 보면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 위한다는 생각 등이 사람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낳거나 거둔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어머니 아버지의 역할이다. 책임이란 대개 애정을 동반한다. 모성애를 창작물에서 자주 다루는 이유 중 하나는 가장 보편적인 사랑과 관계의 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으로 포커스를 돌려보자. 장로가 한 말은 냉정히 보면 사실이다. 모두가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요르프 족인 주인공은 생체 특징 상 보편적인 이별의 형태와는 다른 이별을 맞이하게 되고, 아들을 보내며 울음을 터뜨린다. 외롭지 않을 수는 없다. 가까운 이를 보낸다는 건 아무리 좋은 이별이라도 쓸쓸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사랑 안에 있을 때 제 3자인 우리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영화 내의 다른 이별들 역시 각각의 의미를 가진다.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레일리아의 이별, 크림의 이별, 레나토의 이별이 있겠다. 크림은 요르프 족의 남자로 레일리아와 각별한 사이였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레일리아 구출 작전의 최전선에는 항상 크림이 있다. 레일리아의 납치로 첫 이별을 맞이한 후 그를 되찾기 위해 힘쓰지만 결국 꿈 같은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지용도 그토록 원하던 고향에 다시 찾아갔음에도 막상 가니 꿈에 그리던 고향이 아니라며 시까지 남겼을 정도인데. 원래 강력하게 원할수록 생각하던 것이 아닐 때에 절망이 큰 법이다. 레일리아는 그때 이미 너무 지쳐 있었고 크림이 이해하지 못하는 갈망의 종류를 갖고 있었다. 크림이 나쁜 이가 아니었기에 그 후의 이별이 더 마음 아프더라. 한 순간에 너무 많은 이와 이별한 탓인지 망가진 상태였을 뿐이었다. 보고 있으면 크림의 이야기도 궁금한데 러닝타임이 한정적이라 비중이 정말 적다. 레일리아 얘기도 충분히 담지 못한 영화인데 뭘 바랄까. 좋은 해결법은 아예 1쿨 분량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TV로 선보이는 것이겠지만 그랬다간 중간의 고구마가 날 죽이겠지.


레나토의 이별은 레일리아의 이별과 닮았다. 두 고대 종족은 욕심 많은 인간 탓에 갇힌 신세인 참이다. 레나토는 인간형이 아닌 날개를 단 용 같은 생김새를 한 종족으로 현재는 인간들에게 사육당하는 처지이며, 설상가상 붉은 눈 병에 의해 날뛰다 차례차례 죽어가 결국 단 한 마리만이 세상에 남아 있다. 레일리아는 레나토에게 날개가 있는데 왜 달아나지 않냐며 우린 닮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어릴 적 레일리아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맑은 하늘 아래 강으로 다이빙하는 천진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나는 날 수 있어, 그건 그의 주문이 된다. 이야기의 끝에서 욕심 가득한 인간들의 성은 이런 작품이 대개 그렇듯 역시나 의미를 잃는다. 그는 패전국의 왕비에서 다시 요르프 족의 레일리아로 돌아가며 성벽 아래로 뛰어내릴 수 있게 되고, 같은 주문이 마침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때에 마지막 남은 레나토 역시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속박을 벗어던지고 마키아 역시 그들과 동행한다. 역시 감동 주입 장면. 여기서 레일리아와 그 딸은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된다. 잊으라 하며 레일리아가 날아오른 탓에 홀로 남겨진 딸은 어머니가 참 아름다운 분이라 얘기해주지만 솔직히 이 집안은 정말 미치겠다. 어디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여기까지 오면 세계관과 다루는 얘기가 너무 방대해서 설명 스킵이 너무 심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참트루다. 차라리 레일리아 얘기만 따로 빼서 만들어도 영화 한 편 충분히 나오는 양이다. 어찌됐든 이렇게 만남과 동시에 이루어진 이별, 이 지긋지긋한 성과의 이별 역시 이 영화를 보며 생각해볼 수 있는 포인트다.


이별의 혈족이 가진 수많은 이별은 매우 다양하면서 사연이 기구하지만 아무리 판타지 세계라도 결국엔 다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 삶의 양상을 담고 있다는 걸 생각했을 때 우린 쉽게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 이별을 필연으로 갖는 건 그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나면 헤어진다. 참 당연한 얘기지만 그걸 작품으로 마주할 땐 굉장히 느낌이 다르다. 좀 더 잘 만든 작품으로 만났다면 더 즐겁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이게 이 감독의 초기작이라는 얘길 들어서 대강 납득했다. 언급한 다양한 얘기들 외에도 헬리오르나 디타와 아리엘의 사랑, 랭과의 얘기 등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솔직히 뭐가 너무 많아서 얘기하기도 벅차다.


어쩌고저쩌고 많이 써놨는데 사실 일본식 신파극 애니다. 주말 점심에 밥 먹다가 심심해서 한 번 틀어보는 영화 정도로는 볼만한 영화. 이유는 단 하나, 작화가 죽여주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가 움직인다는 느낌. 쿄애니 볼 때처럼 캡처하면 바로 일러스트가 된다. 배경 맛집이니 그림 공부는 그냥 이거 한 편 모작하면 끝날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럼 뭐해. 두 번은 못 보겠는데. 사실 제목이 너무 라노벨 같아서 진입장벽도 좀 있다. 전혀 기대가 없어서 좋은 작화와 OST 정도에만 감탄하며 봤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망작이라도 진지하게 볼 수 있는 분석러버기 때문에 그냥저냥 열심히 봤다. 작품을 분석하며 보지 않는 사람이고 대강 자기 전에 뭐 좀 볼까 먹으면서 볼 거 없나 싶은 사람이라면 그냥 넷플릭스에서 이거 하나 틀어도 될 것 같다. 다른 볼 게 있다면 그냥 그걸 보자. 이거 볼 바에야 사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마지막화 보겠다고 적으려고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보자. 파티셰를 잡아라도 재밌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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