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 스타즈, 도시가 파묻은 것들

게임 <베리드 스타즈> 플레이 후기

by 햇님

게임 스포일러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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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의식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증대된다. 행복의 양이 문명의 발전에 반비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 세계와 최근의 문화는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곧 행복의 비결이라는 메시지를 주입한다. 도시는 ‘금기’로 불려온 것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자유야말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이며, 나의 욕망에 충실하는 것이 행복이고 자유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그렇게 욕망을 억누르던 도덕적인 잣대와 전근대가 사랑하던 윤리는 인권, 욕망, 자유에 의해 차츰 사라지게 된다. 예전의 신화는 인간의 규율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신화는 금기의 파기가 만드는 욕망의 충족, 그에 따른 행복을 숭배하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복에는 비용이 따른다.


도시의 욕망은 끝나지 않는다. 죄의식도 마찬가지다. 그저 욕망을 따르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신앙 안에서 나의 자아는 끊임없이 불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작물 속에서 자꾸만 욕망을 따르다 무너지고 마는 가상의 개인이 파멸하는 모습, 자본주의의 미래가 나아갈 길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망상을 지속한다. 인간은 절대로 무의식 속 초자아를 완전히 분리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 ‘베리드 스타즈(Buried Stars)의 주요 출연진(TOP 5)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각자 깊은 죄의식과 욕망을 함께 안고 살아간다. 먼저 ‘베리드 스타즈’는 실제 쇼 프로그램이 아니며, 동명의 게임 ‘베리드 스타즈’의 가상 쇼 제목이다. 프로그램의 기본 틀은 현실의 우리가 흔하게 접해 왔던 ‘프로듀스101 시리즈’, ‘슈퍼스타K’ 등의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실력과 스타성을 저울질하며 경연하고, 대중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다가, 능력이 부족하면 ‘집에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현실성 넘치는 가상 쇼 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실제 사실들을 대입하게 되기도 한다. 이는 디렉터인 진승호의 서사가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언제나 ‘군상극’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텍스트가 단순히 환상이길 바라지 않는다. 전작인 ‘검은방’, ‘회색도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살인, 폭력, 복수와 같은 어두침침하고 현실성 떨어지는 키워드 사이에 그는 누구나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집어넣는다. 가장 최근 작품인 ‘베리드 스타즈’의 경우, 특히 그의 경험이 상당수 들어간 편이다. ‘SNS’의 활용에서 두드러지는 그것은 실제로 모티브가 된SNS인 트위터(현X)에서 ‘리얼한 사이버불링 체험 게임’이라는 별명으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베리드 스타즈(Buried Stars)’라는 이름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프로그램이 표방하기로는 ‘묻힌 스타를 발굴하겠다’는 의미이고, 게임 서사적으로는 ‘무너진 무대 아래 묻혀버린 스타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스타로 만들어진 인물들이 도시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각자의 죄의식이나 본래의 자아 따위가 파묻힌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을 함축해 나타내는 제목이기도 하다. 이 게임 속 인물들의 문제 및 죄의식은 매우 뚜렷하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한도윤의 목소리(cv. 박성태)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에 이미 나타나 있을 정도다. ‘어떤 인간도 진실된 모습을 들키지 않고 두 개의 가면을 쓸 수는 없다.’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 글씨>를 인용한 영화 <프라이멀 피어>에서 재인용해온 문구이다. 이 주제에 따라 ‘두 개의 가면’, 즉 페르소나에 대한 죄의식과 문제는 게임 속 인물들을 다음과 같이 모두 관통하고 있다.



2

‘베스타(가상 프로그램명의 공식 줄임말)’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한도윤, 이규혁, 민주영, 오인하, 서혜성, 장세일로 총 6명이다. 말하였듯 그들은 각자 페르소나에 대한 깊은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진짜 나’로 생각되는 것과 ‘만들어진 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부캐며 일상 관찰 예능이며 하는 것들이 대세인 요즘이다. 스타의 인기를 위해선 진솔함, 능력, 캐릭터성 삼박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캐릭터성’은 독보적인 인기 요인으로 작용한다. ‘베스타’는 그런 캐릭터성이 전부인 세상에서 출연자들에게 ‘뜨기’ 위해 필요한 캐릭터, 즉 가면과 같은 페르소나를 거의 강제한다. 물론 그것이 본래의 본인과 전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모습인 것도 아니다. 내면의 갈등과 죄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것이 정말 나인가?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의 고민은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한다. 이 게임의 주요 사건(이벤트)은 무려 살인이다.

등장인물이 부여받은 캐릭터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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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윤은 주인공이자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배신자’라는 롤에 의해 많은 대중들에게 질타를 받는다. 동고동락한 밴드를 저버리고 홀로 본선에 올랐다는 이유로 오랜 팬들에게까지 외면받던 그에게는 역할에 대한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의연하고 덤덤한 모습으로 뒤집힌 평판을 감수해내는 듯 보이던 그는 사실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결핍에 시달리고 있음이다. 그런 그에게 무대의 무너짐은 절망이기도 했으나 기회이기도 했다. 게임의 초반부, 그는 무대에 깔려 죽을 뻔한 규혁을 구해내고 대신 위험에 처한다. 그리고 늘 그랬듯 덤덤한 척하면서도 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규혁이 살아 나가, ‘나를 구한 건 도윤’이었다고 알려 자신의 오명을 벗겨내 주기를. (그러나 ‘1회차’의 엔딩은 반드시 그의 기대를 배신한다. 가장 충격적인 엔딩을 통한 재플레이 유도가 삽입되어 있기 때문.)


규혁의 경우 현재는 고인이나 전설적 싱어송라이터였던 이병희의 아들로, ‘베스타’에서 압도적 표 차이로 1등을 차지하고 있다는 설정의 캐릭터이다.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만 평가받기를 원하나 프로그램 측에서 동의 없이 까발린 사실에 의해 ‘이병희의 아들’로 불리며 금수저라는 조롱을 받는다. 그러나 그를 스타로 만든 아버지라는 후광은 사실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죄의식의 원천일 뿐이었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규혁의 아버지는 그에게 어떤 지원도, 사랑도 건네지 않았던 이기주의적 인물이었다. 책임감 없는 태도와 가부장적 행위에 유일하게 의지하며 살았던 어머니마저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게 되자 규혁은 크게 방황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싹 틔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가 허무하게 자기 과실 교통사고로 사망해 버리자 규혁의 분노는 갈 길을 잃은 채 고이게 된다. 그리고 도윤을 만나 도무지 의지할 수 없던 가족 대신 그를 형제처럼 여기며 애정한다.


주영은 과거 ‘비러브드’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으며 적당히 괜찮은 인기를 자랑했지만 스폰서 논란으로 도마에 오르게 되자 공황장애를 얻게 되고, 이후 돌연 그룹을 탈퇴한 뒤 잠적한다. 주영은 이 사건으로 팬과 멤버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고, 베스타에서 ‘탈주자’라는 역할을 받는다. 쇼는 이 이야기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재확산하기 위해 멤버들의 실망과 날 선 태도가 담긴 인터뷰 영상까지 방송하고, 주영은 상황을 이겨내 보려 하지만 여론은 오히려 그녀의 공황장애가 거짓말이라 단정하며 공격적 태도를 가진다. 그럼에도 그녀의 쇼 내 인기 순위는 무려2위다. 노이즈 마케팅의 성공인 셈. 주영은 이 성공과 자신이 안고 있는 진실, 대중이 비하하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방황한다.


인하는 유일하게 쇼에서 과거를 이용하지 않은 캐릭터다. 그만큼 인하의 혼란은 가중된다. 인하는 자신의 과거를 절실히 지우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절대 지울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인하는 범죄자 아버지 탓에 범죄자처럼 살아야 했던 인생을 뒤집고자 불편한 렌즈 착용, 염색, 커트로 변신을 감행하곤 이름과 성격까지 바꿨다. 아버지 대신 자신을 위해주는 댄스 크루도 만났다. 그러나 쇼도 까발리지 않은 그녀의 과거는SNS에서 대중에 의해 드러난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안경 낀 긴 머리의 소극적인 소녀는 짧게 자른 염색머리에 푸른 눈을 한 ‘싸가지’의 약한 틈을 비집고 기어나와 악을 지른다.


혜성은 게임 내 첫 희생자이자 쇼가 버린 인물이다. 당돌하고 귀여운 매력,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답지 않은 끼와 스타성을 뽐내던 그는 별안간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후 PD의 ‘푸쉬’ 대상에서 밀려난다. 사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으나 뒤바뀐 증언과 ‘빽 없는’ 현실 탓에 절망적 현실을 만나게 된 그는 무작정 빛과 힘을 동경하게 된다. 쇼의 메인PD와 연애를 하고, 순위가 낮은 사람이나 스태프를 무시하고, 무대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쇼의 재개를 꿈꾸며 타인의 사퇴를 요구하는 그는 전형적인 ‘트롤’형 인물이다. 그 역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고 주춤거리면서도 결국 잘못된 행동들을 하고 만다. 혜성에게 필요한 것은 양심이 아니라 타자가 선사하는 인정과 사랑이다. 이러니 자연히 플레이어의 반응은 게임 내 가상의SNS가 보여주는 부정적 반응과 동일해지는데, 그것이 극에 달할 시점에 그는 의문의 살해를 당하게 되어 캐릭터들과 플레이어 모두에게 충격을 안긴다.


이 살해의 용의자로 몰리게 되는 것이 바로 쇼의 스태프이자 이전 시즌의 참가자였던 장세일이다. 그는 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메인PD, 신승연과 가까운 사이다. 세일이 늘 들고 다니는 수첩을 보면 신승연의 명령에 따라 쇼의 참가자를 전원 뒷조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는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 일의 필요성을 함께 주장하고 있다. 수첩 내용 역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발언과 자기혐오가 뒤섞여 있는 채다. 뿐만 아니라 늘 신승연의 타인을 조종하려 드는 모습을 혐오했으면서, 자신 역시 쇼 출연진의 걸음걸이, 말투, 행동을 교정하려 드는 등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 출연진 캐릭터들은 그런 그의 행동을 지적하며 ‘설마 쇼를 위해 사람을 죽인 거냐’는 압박을 가하고, 이에 세일은 도주 후 농성하다 결국 목을 매단 채 발견되고 만다.


이들은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어떤 이상을 그리며 허덕이고 있다. 인하나 규혁의 경우 자신을 괴롭혀 온 가족을 대신할 이상적인 가정을 갈망해 찾아내는 가족로망스적 모습도 나타난다. 이외에도 이들은 욕망의 대상을 향해 나아가려 하지만 계속해서 방해를 받고,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 할수록 왜곡된 거울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며 초자아와 자아 사이의 갈등을 만들고 있다. 대타자의 시선 아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려 하나 굴복하고 도구로서 기능하다 자기 파괴적 결과에 이르게 되는 이들도 있다.


이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도윤과 규혁의 이야기다. 모두가 유기적으로 서로의 죄의식을 건드리고 있지만, 가장 닮았으면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주인공인 한도윤과 범인인 이규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캐릭터는 굉장히 잘 통하는 사이이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정도가 높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길에서 규혁이 범인임을 알게 된 플레이어들은 대체로 경악하게 된다.



3

초기 원시사회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가 가졌던 여자와 권력을 쟁취하여 새로운 지도자가 되곤 했다. 신화에서는 어머니를 사랑하여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가 있었다. 어머니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구, 아버지의 자리를 향한 욕망은 프로이트에게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서 피어나는 욕망에 대한 죄의식 역시 그렇다. 인간은 그런 양가감정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금기를 만들었고, 강박증적 죄의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이 강박증적 죄의식이 실제 행위를 기반하지 않아도 부정적 의도만으로 죄의식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초자아가 의도를 인식하고 있는 한 멈출 수 없는 생각이다. 자아와 초자아 사이 긴장감은 죄의식이 되고, 그러한 무의식은 반복되는 자기 징벌 욕구를 만든다.


현대의 문명은 금기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금기를 만든다. 선악과와 에덴에서의 추방으로 비유되듯 인간은 결핍의 존재이며 당연한 욕망을 바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것이 많아지면 잉여가 생기고, 그것은 다시 금기를 만든다. 심지어 그 욕망은 절대 채워질 일이 없다. 남는 것이 많다고 해서 필요와 공급이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향락에 빠져 있지도 않은 삶의 의미를 갈구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지연될 뿐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정답도, 욕망과의 화해도 없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아를 굴복시키는 수밖에 없고, 그러지 못한 채 깊어지는 죄의식과 억압 속에 빠져버린 사람에게 남은 것은 결국 신경증이다.


‘베리드 스타즈’의 경우, 이규혁이 억압과 죄의식에 짓눌려 강박, 공포, 히스테리를 극단적 표출하게 된 예를 보여준다. 규혁의 인생은 죄의식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금수저라는 별명은 규혁 입장에서야 명백히 오해이지만, 도움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일절 차단당한 ‘흙수저’들에게는 그저 기만일 뿐이다.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으나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를 더 신경증 환자의 길로 이끈다.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도 같은 기능을 한다, 아버지에게 매인 어머니를 구출하고 아버지 없이도 잘 살아보고 싶었던 대학생 이규혁은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했고 자신 역시 허무하게 사망하고 말았다. 규혁에게는 아무것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였으나, 결코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금수저’라는 칭호와 온갖 부러움의 시선, 천부적인 재능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아들에게 ‘절대 빌어먹지 말라’고 가르쳤던 이병희는 죽어서야 바라지도 않았던 최고의 후광을 선사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규혁에게는 계승이 일어난 셈이다. 다만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의한 자리의 계승에 성공했을 뿐이며, 그것이 제대로 된 부친살해의 서사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죄의식에 시달린다. 오히려 불완전한 상황은 그를 더 패닉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그 신경증의 끝은 ‘살인’이 된다.


자연히 이 살인은 또다른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 규혁이 끝내 드러내고 만 실체화된 공포가 고립된 공간의 모두를 불안에 떨게 한다. 공황장애를 앓는 주영은 상황을 못 견뎌 불신으로 만든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죽게 되기도 하고, 스토커에 시달리던 인하는 스태프 세일을 스토커이자 범인으로 오인해 몰아붙이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되며, 도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구조 직전 목을 매다는 배드엔드를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문제편’이라고 부르는 선형적 구조의 게임 첫 회차 서사는 반드시 이런 파국을 맞이하도록 되어 있다.


이 게임의 독특한 점은 ‘멘탈 점수’가 있다는 것인데, 이 멘탈 점수는 대화를 통해 깎이거나 쌓일 수 있다. 만일 멘탈 점수가 0이 되면 진행 중인 논의나 대화에 전혀 의욕을 보이지 않다가 무너져 버린다. 문제편 엔딩의 경우 이 멘탈 점수를 강제로 0으로 하락시켜 결말을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다. ‘정신력’이 없으면 지는 게임이다. 정신력이 없다면 남은 건 싸움과 절망 뿐이다.


이렇듯 등장인물 모두를 괴롭히는 것은 신경증이다. 주영의 공황장애, 인하의 범죄자에 대한 극심한 혐오, 세일의 자기혐오 등. 이를테면 이렇다. 규혁의 온 신경은 평생 어머니를 향해 있었다. 어머니가 그의 리비도 집중 대상, 즉 애인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규혁이 직접 관계도 이벤트에서 고백하는 바, 어머니이든 규혁 자신이든 서로 외에는 인생에 의지할 데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의 사망으로 규혁은 자신의 에너지가 집중될 대상을 잃는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표출해보려 한다. 쇼에 나가서 노래를 하고, 팬들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해소를 꿈꾼다. 그러나 모든 것은 무대가 무너진 뒤 박살이 난다. 나는 예술가라도 되는 줄 알았지만 사실 모든 건 아버지 덕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옭아매고, ‘베스타’ 쇼의 메인PD가 어머니 일의 관련자임을 알게 되면서 극심한 자기혐오와 분노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의 살인 충동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자기혐오를 해결하기 위해 자살을 택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목숨이 ‘한도윤이 구해준 목숨’이라는 자각이 있었고, 이것은 또다른 죄의식이기도 했으므로. 그래서 그는 자신의 리비도 집중 대상을 잃게 만든 데 일조한 메인PD(신승연)의 처형에 나선다.


이러한 신경증에 관한 표출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엔딩은 두 개가 있다. 반드시 파국으로 치닫는 ‘문제편’과 캐릭터의 내면을 공포적으로 연출한 ‘C루트(공포루트, 나락)’가 그것이다.


C루트는 문제편과 달리 플레이어가 반드시 보게 되는 엔딩은 아니다. 게임 플레이 중SNS에서 ‘연구소’에 대한 키워드를 발견하여 해당 키워드로 전원과 대화를 진행하면 진입할 수 있다. 해당 루트의 대화창이나SNS는 일부분이 제대로 코딩되지 않은 것처럼 나타나고 갑자기 실종되는 사람이 생기며, 인물들이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무언가’를 보는 등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규혁은 이 결말의 연출 속에서 주인공 도윤이 바라는 모습, 즉 도윤의 죄의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형태의 인간으로서 공포의 존재가 선택한 현신의 형태가 된다. 도윤은 그의 앞에서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두서없이 진심을 쏟아낸다. ‘경멸당하는 건 슬프다’,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덤덤한 도윤이 이런 이야기를 내뱉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전개다. 이런 도윤의 진심 외에도 전화를 걸면 각 인물들의 극대화된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주영은 늘 침착하고 다정했던 모습과 달리 ‘또 내 탓이냐’, ‘살갑게 얘기 안 해주니 꺼림칙하냐’, ‘자신을 괴롭힌 것들을 모두 터뜨리겠다’고 울분을 터뜨리고, 인하는 ‘인하’를 찾는 전화에 담담히 ‘그런 사람은 없’다며 대신 여기엔 추하고 나약한 덩어리만이 있다는 대답을 한다. 혜성은 ‘여기는 웃어야만 사는 곳’이라며 실소를 터뜨리고, 규혁은 자신이 ‘살인자’이며 ‘태어나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는 고백을 한다.


이 엔딩의 끝은 전원 사망이다. 도윤은 잠시 이것이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것이 죽음 이전의 주마등과 같은 것임을 깨닫고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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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루트에서 키워드로 제시된 ‘연구소’는 비리의 의혹이 있는 공간이다. 사실 꼭 연구소라는 키워드를 발견하지 않아도 우리는 인게임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사실에 의해 무대의 수상함을 엿볼 수 있다. 무대는 결코 우연히 무너진 것이 아니다. 무대가 있는 건물은 본래 공지한 장소에서 급히 변경해 새로 지은 건물으로, 도면대로 공사하지 않고 날림으로 부실공사를 감행한 곳이다. 온갖 비리와 이해관계에 의해 싸고 빠르게 해치운 무대 건설. 결국 무대는 생방송 쇼 중간에 붕괴되고, SNS 유저들은 이것을 두고 저마다 루머인지 진실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낸다.


자본주의는 잔혹하다. 비용 절감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안전과 윤리의 무시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공간이다. 쇼가 대중의 관심을 위해 존재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무대의 무너짐이라는 극단적 형태가 없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논의되지 않은 채 쉬쉬하며 넘어갔을 비리, 윤리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흔치 않은 이야기가 아니다. 경찰 조사와 재판까지 갔던 ‘프로듀스101 투표 조작 사건’, 여전히 충격적 사건으로 거론되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최근 광주에서 있었던 ‘화정 아이파크’ 사건까지. 자본주의 시스템, 즉 도시는 우리에게 향락 추구를 권장하고 금기의 파괴를 유도하는 동시에 스스로도 안전과 법이라는 금기를 파괴한다. 이때 사람들은 자연히 외치게 된다. “빨리 우리를 다시 안전하게 해달라! 법을 강화하고 우리를 지켜달라!”


이때 문제는 이제 개인의 죄의식에서 사회로 확장된다. 게임 내 SNS에서 사람들이 상당히 부르짖는 단어들 중 하나는 ‘공식’이다. 공식은 대체 뭘 하냐, 공식이 책임져라, 보상해라. 사람들은 ‘공식’의 통제를 바라며 웅성거린다. 공식이란 ‘베리드 스타즈’라는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방송국 측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작진이라고 해서 신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오히려 일반 대중만큼이나 쇼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식’을 맹목적으로 따르고자 하는 태도를 가진다. 끊임없이 확산되는 루머가 가진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공식이 말하는 ‘모두의 안전’을 의심하면서도 행동하지는 않는다. SNS는 논란과 혼란만이 가득한 무법지가 된다. 공식은 사상자가 나온 시점에서도 ‘확인 중이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회피하다 ‘S승연’이라는 트롤러가 나타난 후에야 극히 제한된 정보만을 밝힌다. ‘알 권리’를 부르짖는 요즘 사회에서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그것은 편집되고 생략된 정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와중 우리는 얼마나 또 실제와는 관계없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상부에 의지하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다.



5

쇼 프로그램 속의 스타 양산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상업적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 수익의 창출을 위해서는 자극과 상품화, 대중성이 필요하다. 뜨기 위한 공식을 따라 많은 스타들이 ‘비슷한 개성’을 가지고 무대에 서고 있다.


이러한 상업적 필요는 연예계 구조적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들어진 스타들은 사실상 경제적인 토대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경제적인 이익이 최우선인 시스템 속, 스타들의 상품화는 개인의 개성을 희생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연예계라는 상부구조를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토대는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경제적 토대에 빚을 진 연예계의 구조는 돈을 아끼고 비리를 저지르려 하는 윗선의 탓에 늘 짓눌려 있고, 그 무게에 의해 무대는 무너졌다. 그 무너진 곳에 갇힌 것은 구조에 이용되던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이다. 그들은 윗선이라 할 수 없다. 메인PD조차 구조의 꼭대기에는 없다. 갇힌 사람들이 노동자이듯, 그들을 비난하는 SNS 유저들도 그저 청중이고 노동자에 불과하다. 빛나는 도시, 가장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 불빛 아래 파묻힌 문제들이 있다. 도시는 규율 권력의 상징이다. 고독하고 화려한 세계에 사는 시간과 돈의 노예들은 찾아 헤매던 진실을 놓치고 타인의 나만으로 나를 구성하며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익명성과 소외가 가득한 도시 안에서 ‘베스타’ 출연진과 스태프 역시 그러한 현상을 마주한다. 출연진들은 자신의 재능과 이미지를 상품화하고, 자아마저 시장의 요구에 맞춰 변형시킨다. 대중들은 허구나 다름없는 연예인의 이미지를 사랑하거나 비난하며 소비한다. SNS는 주인공 도윤의 속사정을 멋대로 유추하기도 하고 ‘한완용’이라는 말로 조롱하기도 하며 각기 반응을 달리 나타내지만 결국 근본은 비슷하다. 이는 스태프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예시로 세일의 경우와 게임 내 트롤링 담당인 ‘S승연’의 예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세일은 스태프로 일하면서 자신이 도무지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캐릭터이다. 끼와 재능을 표출하고 나를 드러내기 위해 ‘베스타’에 참가했던 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뒤 방향을 틀어 스타를 메이킹하는 역할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방향을 변경하고 노력까지 했는데도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찾은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는 영원히 의미 있는 일과 보람 있는 결과값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S승연’ 역시 그렇게 절망했다.


S승연이라는 이름은 쇼의 메인PD인 신승연의 이름을 따서 만든SNS상의 닉네임으로, 정체는 구 막내 스태프였다. 그는 각종 문제가 연속해서 발생하던 때 프로필까지 잘못 업로드되어 시청자들의 분노가 커지자 프로필 담당자라는 이유로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 퇴출당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출연진에게 호소해 보았지만 출연진들은 그와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당혹스러움을 표하거나 오히려 프로필 건에 대한 항의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런 현실에 억울함과 분노를 느낀 그가 무대 사고가 터진 시점에 계정을 개설해 ‘출연진을 살해하겠다’, ‘그들의 비밀을 폭로하겠다’ 등의 협박을 늘어놓는 것이 게임 초반부의 주요 서사이다.


사실 ‘베스타’의 스태프는 거의 절반 이상이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늘 단순한 업무가 고정적이지 않은 형태로 주어지곤 했으며, 업무의 이해도나 숙련도는 당연히 낮았다. 쇼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고, 스태프들에게는 대체로 당연히 책임감이나 사명감 따위가 없었다. 무언가를 찾으려 하면 다른 곳으로 떠밀려가고, 애초에 확실한 의미라는 것도 없는 생활 속에서 쇼의 모두는 지쳐갔다.


이렇게 쇼 참여자들의 노동은 자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한 것으로 취급되어 소외감으로 이어진다. 연예인은 자신의 얼굴을 내걸고 창작해온 콘텐츠에 대해 어떠한 통제권도 갖지 못해서, 스태프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 따위는 느낄 수 없는 환경에 처박혀 있어서, 그들은 전체 생산 과정의 일부로 분리된 자신의 노동을 보며 허탈함을 느낀다. 그들은 도무지 ‘나’를 찾을 수 없는 환경에 있는 것이다. 결국 자아의 분열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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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드 스타즈’는 다양한 인물과 그들이 처한 상황,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심리적 소외, 분열, 그에 따른 신경증적 증상을 보여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가 갖는 의미가 지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현대인은 누구나 정체성의 위기와 심리적 갈등 앞에서 절망할 수 있다. 도시는 늘 우리를 화려함에 감사하게 하면서도 외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의 소외 문제가 단순히 게임 안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디렉터가 늘 서사를 발표하며 ‘군상극’을 말하듯이, 이 서사는 삶과 가까이 존재한다. 게임이라는 문화 요소가 가진 특성은 이를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게임에는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고 결정하며 선택의 결과를 목격하고, 가상이라 여겼던 것들을 현실화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학이라 부르는 텍스트 서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보통 하나의 결말로만 만들어지는 소설, 영화 등과 달리 비주얼 노벨 등의 게임은 선택지가 존재하고 그에 따라 엔딩이 나뉘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보통 서사를 쓸 때 거의 모든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반드시 여러 회 감상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의 경우, 제작자에게는 아무리 거의 모든 플레이어가 여러 번 엔딩을 볼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게임은 나아가 헤비한 유저들이 ‘N회차’를 거듭하며 여러 엔딩을 수집하고 숨겨진 요소까지 전부 찾아낼 수 있도록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베리드 스타즈’도 반드시 2회차 이상을 권장하는 게임이다. 충격적이었던 ‘문제편’을 지나 경각심을 갖고 진상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인데, 디렉터 진승호는 이 유도의 지점에 게임만이 가능한 장치 하나를 더 삽입하여 흥미를 높였다. 이는 그의 과거작인 ‘검은방’ 시리즈부터 이어져 오던 독특한 구성 방식으로, 재시작 시 플레이어에게 비슷하지만 무언가 조금 다른 환경(인물이나 대사 등)을 제공하여 흥미를 돋우는 특징이 있다.


그것이 ‘베리드 스타즈’에서는 ‘Plughole’의 등장이다. 2회차 플레이를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Plughole은 쇼와 거의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출연진도, 스태프도 아닌 ‘SNS 속 외부인’인 그는 게임의 서사를 충실히 따라가며 진상을 파악하고 ‘트루 엔드’에 도달하게 만드는 수동성을 지닌 동시에 트릭스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플레이어에게 큰 흥미와 자율성을 제공한다. 플레이어가 1회차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Plughole이 제공하는 조언 및 이어지는 상호작용으로 해소해 나가며 자율성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느끼는 호감만큼 그가 유도하는 서사의 매커니즘을 충실히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얼핏 보면 모순되는 듯 느껴지는 자율성과 수동성의 병행은 오히려 플레이어의 몰입을 높여준다. 이 게임은 결코 1회차만을 상정하고 만든 게임이 아니기에, 플레이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Plughole의 존재)이 게임 내부적으로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터랙티브 서사의 특징과 관련한다. 서사는 반드시 엔딩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하고 만들어진다. 그런데 게임은 조작을 통해 엔딩에 도달하는 것이고, 플레이어의 조작 및 개입이라는 주체적인 역할이 없으면 서사의 상영 자체가 중단되고 만다. 사실 게임의 조작 방식은 매우 이입하기 어려운 형태다. 특히 ‘베리드 스타즈’는 조사를 위한 적극적인 미니게임의 활용이 매우 적은 편이고, 몇몇 버튼을 제대로 누르고 선택지를 알맞게 고르기만 한다면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이 단순한 상호작용을 통해 서사의 이입에 성공한다. 심지어 내가 무언가를 조작한다는 사실만으로 이것을 ‘리얼한 체험’으로 여긴다. 현실성 있는 가상의 SNS 글들을 보며 댓글을 달고, 키워드를 수집하고, 조사 결과를 정리하고, 대화 주제를 고르는 모든 것이 프로그램된 범위 안에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여기에 내가 지나쳐온 가능한 행동들, 선택하지 않았던 경로 등은 더욱 의미를 더해준다. 실제로는 선형적 구조의 바람직한 엔딩이 형성되어 있는데도 다중선형의 구조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랙티브 서사는 플레이어에게 단순한 관객 이상의 경험을 제공함이 특징이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매체다. ‘베리드 스타즈’는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에게 몰입감을 극대화시키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체험으로서의 서사를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을 넘어, 게임 속 인물들과 상호작용하고, 그들의 운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나아가 자기 삶의 모습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단순히 게임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본주의 문제, 개인의 죄의식, 사회적 책임 등의 주제는 언제나 현실 속에서 이야기되어 오던 문제다.


‘베리드 스타즈’는 개인 내면의 갈등과 그 갈등을 만든 사회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도시는 욕망을 부추겨 인간 소외를 만들고, 노동을 착취하는 체계로서 기능한다. 그 구조 속에서 개인은 억압과 혼란을 겪으며 ‘나’라는 존재가 파묻혀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베리드 스타즈’가 표방하였던 주제는 묻힌 것들의 발굴이었으나, 그것은 허울 좋은 말에 불과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엔딩에 도달하며 그것을 체험하는 데 성공한다.

‘베리드 스타즈’는 그리하여 플레이어에게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기쁨을 통해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점에서 ‘베리드 스타즈’는 인터랙티브 서사의 매력을 준수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며,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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