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넓은 세상,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자기의 짝으로 생각하고 결혼하는 것, 그리고 한평생을 같이 사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요,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이다. 부부로 엮어지지 않았다면 한 번도 만나지 않을 수 있는데 일생을 함께 하는 반려자요 동반자가 되는 것은 어떤 인연일까. 우연일까. 운명일까.
일선씨와 평춘씨의 만남은 더더욱 신기하다. 일선씨는 중국 하얼빈에 살던 조선족 아가씨였고 평춘씨는 대한민국 남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일선씨의 조부모님은 지리산이 시작되는 산골에서 사셨다. 일제 치하에서 결혼하여 2남 1녀의 자식을 낳고 사는데 강제 징용을 당할 형편에 처하였다. 조부모님은 징용을 피하기 위해 잠깐 만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2남 1녀 중에 두 아들은 고향에 있는 친척들에게 맡기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딸을 데리고 기차를 타고 말로만 들었던 곳, 알지 못하는 곳, 만주로 떠났다. 캄캄해지는 저녁에 사방이 허허벌판인 곳에 내린 조부모님은 멀리 보이는 불빛만을 방향 삼아 하염없이 걷고 걸어서 먼저 가 있던 여동생의 집을 찾아갔다. 방 두 개인 여동생의 작은 집에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시작한 임시 피난 생활은 조부모님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때 부모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함께 만주로 건너갔던 딸이 일선씨의 어머니가 되었다. 일선씨 부모님은 가난했지만 6남매의 자식을 낳고 다복하게 살았다. 부족했지만 자식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지극하여 일선씨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이 행복하였다. 비록 중국땅에서 살았지만 그곳 조선족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조선이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 모든 생활의 관습과 예의범절, 의식주의 습관을 해방 전 고향에서 익힌 그대로를 고수하였다. 중국 속의 한국이었던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는 날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중국에 사는 교포들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일선씨 부모님도 한국에 있는 친척들을 찾아 왕래하게 되었다. 모든 생활의 근거가 중국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 생활을 쉽사리 청산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친척들을 통해 듣는 한국의 소식은 낯설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일선씨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결국 모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똑똑하고 야무졌던 일선씨는 중국에서도 큰 전기회사에 다니면서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던 처녀였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는 가장 쉽게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식당일이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작은 회사로 옮겨 직장생활을 하였다. 낯선 한국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신중하였던 일선씨는 회사와 집만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4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함께 근무하던 3명의 친구들이 나이트클럽에서 4명의 남자들과 미팅을 하기로 했다고 하면서 일선씨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다. 지방의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인데 본사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저녁에 나이트클럽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의 신원이 확실하다는 이야기에 남자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분명했던 일선씨는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기로 하였다. 그때 만난 사람이 평춘씨였다.
평춘씨는 나이가 30이 넘어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고 일선씨도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일선씨는 결혼 상대에 대한 자기만의 잣대를 갖고 있었다. 첫째는 한국 사람일 것, 둘째는 자기가 키가 작으니까 키가 큰 사람일 것, 셋째는 일선씨가 한국에 와서 보았던 남자들 대부분이 여자를 무시하고 하대하는 것을 보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탓에 여자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사람일 것 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녁에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파트너가 되었던 평춘씨는 일선씨의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이었다. 평춘씨도 일선씨가 예쁘게 보였고 예의 바르면서 밝고 명랑한 일선씨가 마음에 들었다. 그날 저녁 나이트클럽에서 한 번 만나고 평춘씨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평춘씨가 일선씨에게 사귀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일선씨가 대답을 하지 않자 평춘씨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진지하게 만나보자고 이야기했다. 일선씨도 진심으로 만나기를 원하는 평춘씨를 보자 마음이 끌려 허락하였다.
그렇게 만나기를 4개월여, 둘은 결혼을 하였다. 중국과 가까운 곳인 경기도에 모여 살던 가족을 떠나 일선씨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남쪽 지방으로 평춘씨 하나만을 믿고 내려와서 결혼을 하였다. 그때까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일선씨는 국제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러 중국으로 떠나야 했다. 결혼을 하고 일주일 뒤 일선씨는 중국으로 떠났다. 아직 수교 초기였던 그때는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이 엉성하고 복잡하였다. 일선씨가 혼인신고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 7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일선씨와 평춘씨는 결혼식만 올리고 7개월을 떨어져 지내다 다시 합치게 된 것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중국으로 간 일선씨는 한 달 후 아기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없는 곳에서 일선씨는 입덧을 하고 임신 기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들어와 아기를 낳았다. 딸이었다. 바로 또 아기가 생겨 일선씨는 연년생으로 딸 둘을 낳아 길렀다. 딸들이 네 살, 세 살이 되자 일선씨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침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왕래가 잦아지면서 중국어 교육 열풍이 불던 때였다. 일선씨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회사 등등 자기를 부르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일선씨에게 일자리는 끝이 없이 밀려들었다. 평춘씨도 작지만 성실하고 건실하게 자기의 사업을 일구어 나갔고 아이들도 순탄하게 잘 자라 주었다.
딸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평춘씨의 건강에 이상이 왔다. 평소 술을 좋아하던 평춘씨는 혈압에 문제가 있었다. 자기의 건강을 믿고 조심하지 않던 평춘씨는 혈관 수술을 해야 했고 당뇨병에 신장 투석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일을 그만두고 일주일에 세 번 병원을 찾아가 투석을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일선씨는 그동안 가정을 위해 고생했던 남편을 위로하면서 자신이 모든 생활을 책임지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춘씨는 여전히 투석을 하면서 신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일선씨는 모든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힘들지만 타고난 명랑함과 씩씩함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 또, 젊었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주던 자상했던 남편을 기억하면서 병든 남편의 뒷바라지를 끝까지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두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인연이었고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춘씨는 두 사람이 만나던 첫날, 일선씨의 말투나 모습에서 전혀 낯설거나 이국적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예쁘고 야무져서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눈에 콩깍지가 쓰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일선씨도 말한다. 자기가 만났던 한국 남자들 중에서 평춘씨가 가장 멋있고 믿음직했다고.
결혼은 이런 순간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만남의 순간과 추억들이 기나긴 일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결혼의 신비, 결혼의 불가사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