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용숙이

by 선희 마리아

용숙이의 신혼 생활은 시끄러웠다. 시어머니와의 불화가 주변 사람들에게 다 알려져서 용숙이는 고개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어디를 가도 자기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아 용숙이는 죄인처럼 집안에서 숨죽이고 지내야 했다.


용숙이가 이처럼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된 것은 시어머니가 원하지 않은 며느리였기 때문이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많았던 시어머니는 며느리도 자신이 골라야 직성이 풀렸겠지만 난데없이 아들이 결혼할 여자라고 데리고 온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성에 차지 않은 아들에 대한 분노를 며느리에게 고스란히 쏟아부었다.


용숙이의 시어머니는 영리하고 대가 찼다. 친정이 시골에서 부유했던 까닭에 재물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남편을 잘 만난 것이 시어머니가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남편은 이북에서 혈혈단신 내려온 피난민이었다. 전기 기술이 좋아 커다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사람이 넉넉하고 후덕하여 상사의 눈에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아무도 없는 남쪽에서 가풍 있는 부잣집 딸이라는 소개로 결혼을 하였다. 기술이 좋아 돈을 휩쓴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60년대에 그 집에는 모든 전자제품이 구비되어 있었고 넓고 번듯한 정원이 있는 이층 집이었다. 시어머니는 그 집의 안주인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일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식들까지 어머니의 마음대로 자라 주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겠지만 3녀 2남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욕심과 고집에 내몰려 하나같이 피어나지 못하였다. 당시에는 입시가 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명문 학교를 들어가야 했다. 회사의 다른 집 자식들이 들어가는 명문 학교에 어머니의 자식들도 당연히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큰 딸이 입학시험에 떨어지자 재수를 시켜 기어이 명문 중학교에 입학시켰다. 큰 아들도 명문 중학교 입시에서 좌절하였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큰 아들을 다른 동네에 있는 국민학교 6학년에 다시 다니게 하여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렇지만 큰 아들은 두 번이나 실패하여 이류 중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시어머니의 자랑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들은 어머니의 욕심과 압박 때문에 사춘기가 되자 크게 빗나가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일으키고 술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가고 싸움질로 학교에 불려 가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공부는 작파한 지 오래였다. 결국 중고등학교 시절을 방황하다 지방에 있는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아버지를 돕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다가 아들은 용숙이를 만나게 되었다. 용숙이는 미모가 뛰어나서 당시 호황을 맞은 백화점 화장품 코너의 판매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용숙이의 미모에 반한 아들이은 밤낮없이 쫓아다녀 결국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항상 속을 썩이기만 하던 아들이 데려온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 집안의 며느리라면 자랑할 수 있는 번듯한 집안의 대학 나온 며느리여야 했는데 며느리의 집안은 별로 내세울 것 없었고 부유하지도 않았고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들은 아버지가 되어버려 반대도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결혼 승낙을 하면서 뒤돌아 앉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부잣집 맏아들이 방 두 칸을 전세 얻어 겨우 신혼살림을 차렸다. 시어머니는 시시때때로 며느리를 불러 일을 시켰다. 손자도 예뻐하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며느리의 험담을 하였다. 마음이 후덕하여 며느리를 감싸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시어머니는 딸들의 애기를 봐준다고 딸네 집으로 나가버렸다.


십여 년을 돌아가며 세 딸의 아기를 봐주고 살림을 해주던 시어머니는 늙고 몸이 아프자 아들네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네 집에 와서도 시어머니의 성정은 죽지 않았다. 옛날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며느리와 아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남아 있었다. 치매까지 온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며느리를 곤란하게 하였다. 넘어지는 바람에 구급차를 부르면 며느리가 밀어서 넘어졌다고 하였다. 운전을 하여 집에 모셔다 드리고 차문을 열고 나오시는 어머니를 부축하다 몸을 휘청하게 되면 며느리가 차에서 내려오는 자기를 잡아당겨 넘어지게 했다고 친구들에게 전화로 고자질을 하였다. 어느 날은 가만히 있는 며느리에게 아직도 예쁜 척을 하냐고 소리 질렀다.


성격이 무던한 용숙이는 모든 것을 참아냈다. 젊었을 때 괄괄하고 호기롭던 남편이 순한 양이 되어 자기 곁을 맴도는 것을 보면서 수도 없이 이혼을 생각했던 옛날을 생각한다. 엄마 없이 자라날 두 아들을 생각하며 모진 세월을 참아냈던 것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았더라면 어쨌을까 싶은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지금의 남편을 하늘에서 짝지어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치매가 점점 심해지는 시어머니를 집에 두고 나오면 수시로 CC TV를 돌려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결혼이란 질긴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 왜 그 사람을 만났을까. 왜 그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을까. 그 순간의 인연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을 생각이나 했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남녀의 만남이요 남녀의 끌림이요 남녀의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목요일 연재
이전 15화14화: 일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