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숙이는 활달하고 거침이 없었다. 어디서든지 좌중을 휘어잡았고 입담이 좋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였다.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계셔서 집안도 탄탄하였다. 부러울 것이 없는 환경에서 큰 딸로 자라난 인숙이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도 컸다. 대학을 보내 좋은 사위를 얻으려는 욕심을 부모님도 갖고 계셨다.
대학에 가서 인숙이는 같은 과 복학생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평상시에는 얌전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였지만 노는 곳이나 무대에 올라가면 감추고 있던 끼를 발휘하여 주변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진중하면서도 상황이 되면 자신이 가진 장기를 마음껏 내비치는 남자가 인숙이는 좋았다. 인숙이는 명랑하고 활발한 자신과 조용하고 성실한 남자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돌아 볼 겨를도 없이 인숙이는 사랑의 파도에 휩쓸려 갔다.
열정적인 성격답게 인숙이는 뜨겁게 다가갔다. 남자의 미지근한 태도에 개의치 않고 인숙이는 남자에게 직진하였다. 남자도 활발하고 밝은 인숙이에게 호감을 보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랑이 계속될수록 모호한 점이 남자에게서 보였다. 만남을 회피할 때도 있었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인숙이가 남자의 집을 찾아가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참지 못하는 인숙이는 남자의 친구들을 통해 남자의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인숙이를 만나기 전부터 남자에게는 사귀던 여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숙이가 나타나서 일방적인 구애를 남자에게 하였고 남자도 그것이 싫지 않아 양쪽을 다 만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인숙이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물러서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인숙이는 남자에게 여자와 헤어지라고 요구했고 남자는 인숙이의 말에 따라 그동안 사귀었던 여자와 헤어졌다. 인숙이의 뜻대로 된 것이다. 남자의 갈등이나 여자에 대한 미안함 따위는 인숙이가 남자에게 퍼붓는 사랑에 비하면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 인숙이의 부모님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혼자 어렵사리 세 아들을 키운 집안인 것이 아버지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남자의 학벌이나 직업 또한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였다. 딸이 밀어붙여서 하는 결혼이니까 할 수 없이 시킨다는 입장의 부모님은 남자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사려 깊었던 남자는 그러한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사랑만 확실하다면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조로웠다. 아들을 둘 낳고 둘 다 교직에 있어 큰 부자는 못되어도 근면하고 성실하게 재산을 불려 나갔다.
결혼을 하여 잘 살아가던 어느 날, 인숙이의 친한 친구가 늦은 결혼을 하는 날이었다. 인숙이의 남편이 사진기사를 자처하여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미용실에서 신부화장을 하는 것부터 찍기로 하여 사진기를 들고 두 사람은 한껏 성장을 하고 미용실에 갔다. 두 사람 다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었다. 인숙이와 남편이 미용실에 도착하여 신부 화장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의 옆자리에서 신부 화장을 받고 있던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인숙이 때문에 헤어졌던 예전의 여자친구였다. 여자는 남자와 헤어지고 난 후 마음을 잡지 못하다가 늦게야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결혼식 날 인숙이와 남자를 미용실에서 만난 것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로 한 남자가 사라지자 친구의 동생이 급작스럽게 사진기사가 되어 가까스로 결혼식 사진을 찍어야 했다.
밤늦게 남자는 만취하여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잠이 들었다. 인숙이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그날 밤을 보낼 뿐이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그날의 일에 대해서 서로 묻지 않았다. 활달했던 인숙이의 마음에 남자에 대한 의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그렇게 크게 남자의 마음에 머물러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인숙이는 남자의 모든 것을 알아야 했고 시시콜콜 캐물었다. 남자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인숙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였다.
두 아들은 잘 성장하여 큰 도시로 나가고 집에는 둘만 남았다. 인숙이는 큰 병에 걸렸다. 둘만 있는 집에서 남자는 인숙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인숙이와 남자를 보며 남자와 여자의 만남, 결혼은 사람의 뜻이 아닌 오묘한 신의 뜻에 의해서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보통 인연이라고 말하는 계기와 관계가 위에서 내려다 보고 계시는 그 분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