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도 냠냠
삼년 반 쯤 사고를 당해서 다친 이후로
몸이 급격히 상했고
지난 몇 년 간 음식 섭취에도 제한이 많았다.
일단 소화가 안됐고
입맛도 없었다.
그렇게 먹는 걸 좋아했던 내가
음식 앞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기는
나 스스로에게도 참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뚝 떨어진 입맛이었지만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먹었던 게
점차 내 몸에 맞는 음식,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노력까지 이어졌다.
(먹고 살겠다고;;;)
그래도 문제는 점심이었다.
그 전에는 다같이 평범한 도시락 열고 같이 먹거나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누군가 땡기는 식당으로
이끌면 그냥 자석처럼 따라가곤 했었는데,
먹거리가 신경쓰이고
양과 질에 조심하다 보니
그냥 전처럼 편하게 동료들과 섞여
점심먹기가 불편했다.
까탈스러워진(?) 내 식성때문에
나를 지나치게(?) 배려할 수 밖에 없는 동료들에게
나는 너무 미안해지고,
정작 동료들은 원하는 식단대로
점심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난 도시락 먹을게요.
좀 더 믿을 수 있는 정갈하고 소박한 식단으로
식사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직장인의 최대 기쁨인 점심식사를 각자의 희망대로 선택하고 먹을 수 있게 하자는 선언이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어언 8개월인데,
난 혼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할 때가
훨씬 많다.
그렇지만 먹기 편하고 속이 편하다.
마음 편하고 주머니사정도 편하다.
두루두루 편하고 좋다.
엄마가 아침부터 서둘러 챙겨주시는
도시락이 있는 날에는
왠지 모를 든든함에 출근할 맛이 난다.
#매실 장아찌
소화에 좋다는 매실을 지난 여름 최상급으로 사서 며 지난 몇 달간 제대로 숙성시킨 매실 장아찌를
고추장에 무치지 않은 채로 몇 알 꼭 챙겨 넣으신다.
난 김치처럼 챙겨먹는데 아삭거리는 그 맛이 좋다.
#삶은 양배추
양배추 역시 소화에 탁월하다는 소문에 언젠가부터 주식처럼 먹고 있다. 너무 무르지도 너무 날 것 같지도 않게 적당히 아삭거리는 식감의 삶은 양배추는 한 조각 크게 우물거리면 뭔가 먹는 느낌이 들고 포만감까지 있어 좋다.
처음부터 양배추를 잘 먹었던 건 아니다. 무(無) 맛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밋밋한 맛에 잘못 삶아내면 삶의 채소의 비릿한 맛까지 있어 여간해선 먹기 좋은 음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먹다보니 먹을 만 하고 입맛에 들기 시작하고 이제는 장이나 다른 피처링 없이도 잘 먹을 수 있게 됐다.
#전설의 단호박 카레
가히 전설의 맛이라고 할 만하다. 일전에 여동생이 대학교 광고 관련 수업에서 광고 카피에 대한 열강을 하시던 교수님 앞에 엄마의 명언을 이야기했다가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다 했다.
"이건 카레가 아니야"
엄마의 카레는 그냥 카레가 아니다. 전설의 맛이다. 사골국처럼 진하고, 부드럽지만 깊은 맛이다.
작년 여름, 그 푹푹 찌는 더위를 엎고
엄마는 단호박을 쪄서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고
씨를 발라내서 부드러운 속살로만
반은 주걱으로 으깨고 반은 식감이 살도록
통째로 넣어 그 흔한 오뚜기 카레 파우더와 섞어
카레 베이스를 만드신다.
고기는 반드시 기름기 없고 담백한 닭가슴살이다.
곡물이 소화가 안되서 밥을 잘 안 먹게 되니
밥을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듬뿍 넣으신 걸 잘 알고 있다.
양파, 감자, 당근은 보기 좋고 먹음직스럽게
큼직큼직하게 썰어넣으신다.
엄마의 카레는 밥공기로 반만 카레 그것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 여러가지 영양소가 고루 있어 좋고 맛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엄마, 오늘 점심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