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림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바라는 이상의 그 사이에서
by
Sunny Day
Aug 10. 2019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머뭇거림이 줄어든다.
생각나는 것, 하고 싶은 말은
일단 해버리고 마는 것 같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나 해도 괜찮을까와 같은
수줍은 걱정은 좀 접어드는 편인 것 같다.
나이만이 아니라 성향적인 차이도 있겠다 싶지만 주변의 사람들 중 다양한 성향과 연령대를
고려했을 때 주로 연령대가 높을 수록
그들의 대화법은 직설적이거나
대개 가감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러나 사람이나 경우에 따라서라는
예외사항이 있을 수 있다는 건 간과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해주시는 디자이너와 스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러 번 입속에 굴렸다 뱉지 않았다.
위 아래 까만옷을 입은 스텝(인턴인듯) 오빠(?실제로는 오빠가 아닐 가능성이 구십구퍼센트이지만;;)가 머리 시술 중 뜨거운 열처리를 하다가 온도조절을 못해서 뜨겁다 말하니 너무 죄송하다,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하겠습니다! 하신다.
친절을 넘어서 서비스직무의 직업인들이 갖는 부담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시종일관 친절한(!) 모습에 몸둘바를 몰랐다.
다음 단계 준비가 다 되니 원장님이 시술(종사하시는 분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하러 다시 오셨고
저 분 참 친절해요. 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싱겁게시리 괜한 소리를 하나 싶기도 해서 그냥 말아버렸다.
만약 우리 엄마였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마도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하셨으리라...
원장님, 저 선생님 참 친절하네요. 월급 좀 많이 주세요. 라고.. ㅎㅎㅎ
아마 내가 같이 있었더라면 괜히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아이, 엄마는;;; 하며 엄마에게 눈짓으로 더 안하심 좋겠다 했을 수 있다.
아니면 그 친절한 삼촌이 어색해할까봐 더 말을 이어붙였을까나? 아마 전자는 내 십년 전이었을것 같고, 후자는 지금 정도일 것 같다.
결국 나도 나이가 들었고 갈수록 필요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나 싶어서 좀 염려된다.
위의 글을 쓴지 1년 반이 지났다.
별거 아닌 내용인 것 같지만, 그 날의 생각과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였는데 오늘 다시 서랍장에 넣어둔 일기처럼
완성하지 못한 그림처럼 스케치만 해놓은 이 글이 다시 눈에 띄었다.
'나이가 들수록..'하는 것과
'머뭇거림이 줄어든다'는 것이 정말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그저 내 경험, 그리고 내 주변인들을 통한 간접경험이고 그마저도 관찰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나에게도 빗대어 적용할만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어제, 8월의 뜨거운 더위속에서 나를 찾아 지방에서부터 찾아온 스물둘의 꽃다운 청년 하나
몇 년전부터 나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오겠다 하여 일정을 묻곤 했던 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번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약속을 잡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제 드디어 그 약속이 잡혔고, 점심시간 1시간도 괜찮다 하여 그럼 식사라도 함께 하자하여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 청년이 속한 그룹에서만 보다가 개인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어서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있을까 싶었다.
만나기로 한 지하철 입구에서 나는 그를 친히 맞이하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고,
반대편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덩치의 두배되는 건장한 청년 하나가 나를 보고 옅은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하는 듯 살짝 나를 보며 응시하길래
에스컬레이터 속도에 맞춰 내려가면서 '누구지?'하면서도 그저 이 동네 어디에선가 내가 본 사람인가 싶어서 자연스럽게 살짝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마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날 또 외국인으로 착각한 또 다른 외국인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내려갔다.
끝까지 다 내려가고 나서야 만날 사람이 떠오르고 '아차' 싶었다.
'너 어디야? 전번이 뭐야?'
주로 페메로 이야기를 나눴던지라 번호도 모르고 있었던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급하게 페메를 보냈다. 바로 확인하고 답장이 왔다.
'010******* 방금 쌤한테 인사드렸었는데'
아, 이 동네 그 누구도 아니고 그저 날 친숙하게 여기며 인사를 건내오는 외국인도 아니었다.
'너였구나'
반가운 인사를 건내며 합정역 크고 작은 빌딩들을 헤치고 작지만 실속있는 퓨전식당에 들어가 앉아 점심을 주문했다.
작은 테이블 사이로 마주 앉아 수저를 놓고 물 한잔씩 따라 받아들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왜 나를 만나러 오고 싶었는지, 몇 살인지(중요하진 않았지만, 나이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공익근무가 끝난 후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부모님을 일을 돕는다면 무슨 일을 돕고 있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연애를 하면 좋겠다든지, 운동은 하고 있는지, 다니는 교회에서 학생들은 많은지, 취미활동은 뭘 하는지,
진로나 진학을 위해 주변에서 좋은 멘토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든지, 밥은 입맛에 맞는지 등등
쉴새없이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말이 없고 수줍어하기까지 하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고,
만나고 싶었다고 하지만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는 그 청년에게 한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무슨 이야기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얘기, 저 얘기 했지만 지나고보니 그냥 나의 강박이 작용한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냥 상대방이 편한대로
그대로 맞춰주어도 되는 것인데,
상대방의 속도와 성향에 맞춰주어도 될 것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사실, 이것도 내 중심의 내 판단이긴 하지만)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조바심으로
나이 먹은 것 티내며 머뭇거리지도 않고 주저리 주저리 면접하듯 쉴새 없이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나 싶었다.
밥 먹느라 이야기 하느라 금새 30분이 흘렀고,
식당에서 나와 다시 뜨거운 햇볕아래 서 있자니
시멘트 바닥에서 나오는 복사열까지 느껴져
하늘과 땅, 위 아래 열기에서 몇 걸음 더 걷기도 어려워 더위도 피할 겸 카페에 가서 커피라도 마시자고 하니 괜찮다 한다.
엥? 그럴거면 왜 온거야? 차도 안마시고? 이야기도 다 못하지 않았어? 아쉽잖아. 그럼 이렇게 그냥 헤어져?
나도 모르게 속사포로 왜 카페에 가지 않는지 의아한 듯 질문을 했지만 수줍어하면서도 카페는 괜찮다 한다.
그럼 뭘 할까? 다른 약속 있니? 어디로 갈거니? 이후 일정은 어떻게 돼? 그래, 그럼 홍대역까지 바래다 줄게!로 끝이 났다.
그렇게 홍대역을 향해 손바닥으로 눈살이 찌뿌려지는 뜨거운 태양열기를 가리며 걷고있는데 편의점이 보여 아이스크림을 먹겠냐고 권해보는데 아까 시원한 걸 먹어서(점심메뉴로 내가 함께 시켰던 냉모밀인가보다. 돈까스 덮밥의 양이 만만치 않은데
내 냉모밀이 나오기도 전에 80프로는 다 먹었길래 덜어먹는 앞접시에 덜어서 맛보라고 주었는데 아무래도 먹는 속도가 맞지 않아서
내 냉모밀 그릇을 들이밀고 맛보기로 덜어준 작은 접시를 내가 가져와서 먹었다) 괜찮다 한다.
홍대역 사거리까지 도착하니, 길 건너 라인 프레즈가 있어 잘됐다 싶어 재미있는 구경하고 가자며 손을 잡아 끌고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시그니처 빅 사이즈 인형앞에서 기념 사진 찍는 관광객들 보며 우리도 찍자하니 손사래를 치길래 결국 민망하여 나혼자 찍고 말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재밌어하지 않을까 싶어 이거 어때, 저거 어때 하며 말을 붙여보았지만
잘 모르겠다는 표정에 내 꽁무늬만 졸졸 쫓아다닌다.
이층까지 기어이 데리고 돌았지만 그냥 재미없는 박물관 둘러보듯 하여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다가 나와버렸다.
재밌어 하는 게 뭐야? 뭐 할 때가 제일 재밌고 신나? 여가시간에 하는 거 없어? 재밌는게 있어야지
이어지는 질문세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나 역시 답답함에 그저 빠른 대답만 재촉하고 말았다.
헤어지고 나서도 약간의 답답함이 남았다. 왜 찾아왔을까?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기는 했을까?
만났던 순간부터 나눴던 대화를 되짚어보니
나 또한 너무 급하고 내 속도에만 맞췄던 것 같기도 했다.
대답을 강요하고 듣고 싶고 나누고 싶었던 어떤 경향의 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불편했고, 절대 닮고 싶지 않았던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의 그런 모습들이
나도 모르게 습득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보다 나이어린 사람들과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장착되는
나이먹은 이의 '세상 더 살아서 너보다 더 안다'는 거들먹거림 또는 여유로움인지
상대를 향해 이랬으면 좋겠다는 나의 일방적인 기대와 바람에서 오는 조바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잠시 머뭇거렸다.
결국 이 모든 게 나이 들어서야 라고 하기에는
결론이 이상하리만치 비약인것 같지만,
어쨌거나 나 역시 나이 들고 있고,
어떤 부분은 나이와 세대의 차이라고 경험되어졌던 불편한 지점들이
나와 띠동갑 그 이상 차이나는 이 청년과의 짧은 한 시간의 점심식사에서도 이만큼 젊었던 그 때와 다르게 역설적으로 느껴졌다는 건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나이 든다는 것과, 윗 세대에게서 불편했던 모습들 중 어떤 것은 벌써 내 것이 되었다는 슬픈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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