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성일기

씨를 뿌리는 자와 열매 거두는 자

[영성일기] 기쁨으로, 감사로, 은혜로

by Sunny Day
"바로 이곳이 내가 여호와의 성전을 짓고 이스라엘의 번제단을 쌓을 곳이구나!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자 하는

다윗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다윗의 간절함과 소망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성전을 지을 수 없게 된다.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다.


"너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고 큰 전쟁을 많이 치렀다.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너는 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다"


수백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있었을 다윗이

강압적으로 인구조사를 지시할 만큼 권력욕이 크고,

수 많은 전투와 전쟁에서 싸워 이길만큼

성취의 기쁨을 오래 누렸던 다윗이었건만,

본인이 오랜 시간동안 준비하고 고대해온

성전건축의 꿈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내가 준비한 일,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계획했던 일, 내가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일,

그것의 결과물을 언젠가

내 손으로 거두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인간적 욕심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아야 할 때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잡초를 뽑아가며

힘들게 뿌리를 내리게 한 사람과,

그것의 열매를 보고 수확을 하고

결실을 보는 사람이 다르다면,

나는 그 중 누구이고 싶은가?


십중팔구, 열매맺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씨 뿌리는 자의 수고는 타는 듯한

태양의 작열함이나 휘몰아치는 비바람,

손을 놓을 짬을 주지않는 때늦은 태풍을 만나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수고와 어려움을 알고 있다.

열매맺는 사람의 보람과 곶간을 채울 수 있는

풍성함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열매를 거두길 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당사자인 아들에게 자신이 품었던

기대와 소망을 넘겨주는 장면은

결국,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윗의 겸허한 신앙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내 아들아, 이제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너와 함께하셔서 네가 여호와의 성전을
성공적으로 건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 언약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나의 것임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받아들였다.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자로써의 역할"


다시 생각해보지만,

누가 성전 건축을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맺고 싶어하지,

준비만 하고 다른 사람이 완성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믿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로 자유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 절제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누리는 삶


다윗은 그런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이것이

얼마나 하찮고 귀찮은 일인지,

얼마나 보잘것 없고 작은 일인지

좀 더 중요하고 임팩트있는 일,

사람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티가 나게

눈에 띌 수 있는 일,

나는 그런 일을 찾아 헤맸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함께 이루는 좋은 사회,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보다는

사실 나로 인하여 무엇이 이루어졌다는

기념비를 세우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누구보다 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나의 역할과 존재자체로 사람들이

좌지우지되는 꼴(!)을 보고싶었던 것은 아닐까?


응당 그래야하는 것처럼 아무 저항없이,

아무 대꾸없이 처분(!)을 잘 받아들이고

아들에게 그 과업을 잘 넘겨주는 다윗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라하실 때 가고, 멈추라하실 때 멈춰야겠다.

씨를 뿌리라 하실 때,

기쁨으로 씨 뿌리는 자가 되어야겠다.

땀흘림없이 거둘 때에라도 내가 다 한것으로

여기며 으쓱거리지 말아야겠다.


성경에서 배우고, 현실에서 써먹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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