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뛰어넘는 공감과 연결의 힘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작가: 마르크 로제>

by Sunny Day

긴 휴가라고 맘 놓고 어딜 가지도 못하는데 '책이나 읽어야지'는 아니었다. 안식월을 앞두고 업무 마무리 이틀 전에 다 계획했던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밤을 꼴딱 세고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여는 스타벅스를 찾아 비몽사몽한 상태로 진한 카페인의 힘을 빌리며 바닷가 앞 어느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상상하며 스물 네 권의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정했었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나온 책 소개가 그럴싸했던 것 같다. 바로 읽어야겠다 정도는 아니었어도 언젠가 여유있는 시간이 되면 읽어보고 싶다고 했던 정도는 되었다. 어쨌거나 이 책은 휴가 중 읽고 싶은 책 목록에서 가장 처음으로 지운 책이 되었다.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 읽고나니 따뜻함이 가슴에 스며든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다. 왕년에 책방을 운영하던 할아버지 피키에 씨가 요양원에서 지내면서 요양원 계약직 직원인 그레구아르와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인데, 책을 읽어주면서 서로간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소소한 일상과 같은 이야기 책이다.


책을 읽으며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으련만)


바칼로레아에 통과하지 못한 주인공 그레구아르가 목숨처럼 여기는 수천 권의 책과 이별하고 파킨슨을 친구삼아 꼼짝없이 요양원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하는 피키에 할아버지와 조우하는 부분은 왠지 모르게 드라마틱하다. 책이 매개가 되고 징검다리 되어 세대를 넘어서고 지식과 경험, 추억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데 무척 흥미로웠다.


한 때는 잘 나갔던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 요양원으로 밀려나 생사의 갈림길까지 그저 쭈욱~ 직진만 해야 하는 노인 고독사 문제도 보이고, 별 다른 자격증이나 기술이 없다 해도 최저임금보다 적게 급여를 지급하면서 늘 당당하고 날카로운 예민한 원장은 고용문제도 다룰 수 있어 보인다. 원장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개(!)무시하면서 고객인 요양원 입주자 어르신들의 한 마디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뼛속까지 상업적이어서 조직 문화 따위는 애초부터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직원들이 어르신들의 식사 수발을 들거나, 빨랫감을 세탁하거나, 건강상태를 체크하거나, 건물 곳곳을 손보고 수리하거나 하는 묘사는 우리 나라의 노인요양시설과도 오버랩됐다. 십여 년 전, 이십대 청년들과 봉사활동을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책 속의 요양원보다는 더 깨끗하고 정돈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더 좋아졌겠지 싶다. 다만, 식사 수발을 함께 도왔던 그 장면 속에 나는 책 속의 그레구아르와 비슷하게도 그 일이 무척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멀리서는 깔끔한 병실같아 보였는데 가까이 갈수록 어르신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거동이 어려우시니 당연히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서였는지 중증인 어르신들의 방에서 그 분들에게 식사 수발을 하는 것은 처음엔 그 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이 1도 없는 그레구아르가 책 벌레, 책 전문가인 책방 할아버지에게 책을 읽어주겠다는 당찬 포부는 또 어떤지, 6월 첫째주 월요일에 요양원에 열게 되었던 첫 낭독회의 서막은 근사했다. 누군가를 위해 책을 낭독했을 뿐인데, 낭독하는 동안 타인의 삶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주인공의 몰입은 나도 빠져들게 했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책을 읽을 때는 소리를 내면서 읽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아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책 제목부터 작가 소개, 목차, 머릿글은 물론 본문과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후기도 또박또박 소리를 내서 읽으라고 하셨다. 책도 많이 사다 주셨다. 내가 집에 있는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나면 새로운 다른 책으로 바꿔 주시기도 했다. 당시 방문 판매가 유행했었고 우리 집에서는 소위 방판으로 구입하는 주 품목이 어린이 도서였다. 새로운 전집으로 책이 교체되고 나면 책상 아래 의자 넣는 그 좁은 곳에 쏙 들어가 며칠이면 3, 40권의 책을 뚝딱 읽곤 했었다. 게다가 엄마는 성우들이 책을 읽어주는 테이프 전집도 사주셨었다. 훌륭한 원작 동화에 성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까지 더해지면 그냥 듣는 게 아니라, 책 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했었다. 성우의 숨 소리나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백, 말 줄임의 여운도 느낄 수 있었다. 성우들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들었던 동화 테이프 중 '심청전'의 뺑덕엄마와 백설공주에서 나오는 마녀는 전원주씨였는데 작품에 따라 어떻게 목소리를 그렇게 달리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라디오와 테이프 재생이 함께되는 플레이어에 동화 테이프를 넣고 A면, B면 앞뒤 자동 재생을 눌러놓으면 한 시간 정도는 시간여행을 하고 올 수 있었다. 그 동화테이프를 하도 많이 들어서 나중에는 테이프의 소리가 늘어질 정도였다. 그레구아르의 낭독은 어릴 때 수도 없이 들었던 테이프 동화를 생각나게 했다.


운동삼아 오른 남한산성에서 반환점을 돌며 잠시 쉬어가야지 하며 이 책을 꺼내들었는데, 한 시간만에 남은 3분의 2를 다 읽고 가뿐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게 하고 감정을 이입하고 훈련하고 중요한 구절을 외우고, 그리고 반복하고...

어느 유명 강사들보다 효과적인 학습법 아닌가?

그 사이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위해 300킬로미터를 걸어 가장 사랑하는 여인 조각상 앞에서 낭독을 해달라는 다소 황당한 요청이 실현이 되는 순간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정말 먼 길을 걸어왔구나. 하지만 멈춰서는 안돼. 문학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언젠가는 바로 그 문학의 모험에 뛰어들어야 한다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을 반복해서 외우고 하는 일련의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오늘 내일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과 젊은이라고 말 붙이기도 어리숙한 한 청년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묻고 상대는 대답했지만, 책에서 그 해답을 찾고 이해가 커지기도 했다. 책의 등장인물이 되면서 상대의 호흡을 내 것처럼 따라가기도 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공감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낭독하며 나이들고 원숙한 세대는 젊고 혈기충만한 세대와 연결되고 나이와 세대차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책 읽기가 가능하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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