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살고 있는 거죠?
브런치에서 거의 매일 메시지가 왔다. 내가 올린 글에 대한 반응(좋아요나 댓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글을 소개하거나 공모전 이벤트 공지와 같은 홍보성 알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달 전, 브런치에 알람이 뜨길래, 들어와봤더니 내 글을 본지 210일이 지났다는 알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 거의 240일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몇 개월이면 1년을 채우는데, 우연히 글 하나를 찾다가 다시 들어오게 된 브런치에 많지는 않으나 내 글을 구독하고 계셨던 구독자들께 근황이나 안부글이라도 남기는 것이 좋겠다 싶어 몇 글자 또닥거려본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작년 한참 더위와 코로나가 기승이던 여름에 엄마는 간암 수술을 하셨다. 내 글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엄마의 암 진단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그저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가족들 마음속에 가득차 올랐다.
'왜 엄마에게 이런 일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웠다. 그저 엄마 몸에 있다는 그 암 조각을 말끔하게 떼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늘에 대고 빌고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안전하게 암을 제거하는 방법을 상의해야했다. 왼쪽 간과 오른쪽 간 사이 중요한 혈관을 지나는 그 쯤에 암이 있었던지라 조금 더 간단한 방법을 택하지 못하고 절제수술을 해야 했지만, 결국 6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끝에 엄마는 성공적으로 암수술을 마치고 잘 회복하셨다. 코로나로 인한 여러 제한이 다른 곳보다 더 대단한 병원안에서의 갑갑한 3주간의 입원기간을 마치고 엄마와 나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는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며 예전과는 달리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며 매일매일 더 회복하며 지내고 계신다.
엄마의 암 진단을 받기 두달 전, 우리 가족은 막내 동생이 있는 은평구로 이사를 왔다. 혼자 지내는 막내가 항상 마음에 걸렸던 엄마는 이사갈 계획을 세우는 두 딸들에게 은평구로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압력을 넣으셨다. 혼자 있는 동생이 마음 쓰이지도 않느냐면서, 일주일에 한 두번이라도 따뜻한 밥 한끼 해 먹일 수 있고 얼굴도 자주 보고, 가까이 가면 얼마나 좋으냐면서 은평구 이사를 가자고 보채셨다.
원하는 집을 물 좋은 생선 고르듯 편하고 쉽게 고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지만, 동생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상황과 형편에 맞는 집을 찾아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은평구민이 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아파트도 아니고 오래된 동네에 있는 빌라지만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리고 아주 가까이에 무장애숲길과 둘레길, 조선왕릉 서오릉이 있다. 시장도 멀지 않고 시장까지 안가도 집 가까이 그만큼 저렴한 큰 마트도 있어 물가도 괜찮은 편이다. 으레 살면서 겪게되는 불편함도 있지만, 어느 곳은 안 그러겠나 싶은 생각을 하며 그럭저럭 괜찮게 지내는 편이다.
지난 5월 말,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 동안 엄마와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모녀의 자전적 이야기, '엄마, 우리 살길 잘했다'를 썼다. 책을 출간해야지 하는 기대나 작정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받은 출간 제의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1도 고민하지 않고 글을 쓰겠다고 하며 출간에 동의했다.
엄마가 회복하는 시기가 가을을 지나 겨울로 옮겨가면서 내 글쓰기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호기로운 시작과는 달리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출판사 편집장님께 "저,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넋두리를 던져놓기도 했다. "오픈하지 않기 때문일 거에요'라고 던지지도 않은 질문에 답하는 편집장님의 정곡을 찌른 한 마디에 나의 과거와 아픔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좀 더 내볼 수 있었다. 그냥 엄마와 딸의 동행록을 쓰자고 했던 것이, 그냥 평범하지많은 않았던 우리 모녀의 살아온 험한 길을 다시 뒤돌아 보게 되었다. 표류했던 동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왜 써야 하는지를 한참을 생각했다. 어떤 길을 지나 여기에 왔는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 가족의 아픔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또 한참을 망설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이들을 만나는 글을 써야겠다. 직접 다 만나볼 수 없지만, 내 글들이 그들을 찾아가게 했으면 했다. 암환자 가족을 돌보는 이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아버지의 알콜 중독, 폭력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가족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추고 싶었던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 삶이 무너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는 글을 쓰고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내가 쓴 작은 에세이, '엄마, 우리 살길 잘했다'를 쓴 이유이자 목적이 되었다.
게으른 작가를 채근하는 브런치의 알람덕에 지난 1년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냈나 돌아보게 되었다.
4년동안 일한 회사를 떠나왔고, 몇 달은 미련하게 일한 탓을 몸과 마음으로 겪으며 대차게 아팠고, 뒤이어 엄마가 암 수술을 하시고, 나는 엄마의 회복을 위해 영양사이면서 체력관리사이면서 요양보호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집안 살림과 청소도 반은 내 몫이 되었다. 겨우내 에세이를 써 꽃 피는 3월에 초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넘겼고, 난생처음 해보는 출판과정에 참여하며 수 차례의 교정과 편집을 거쳐 5월 말에 책을 내게 되었다. 유명인의 출간이 아닌 탓에 반응이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을 거쳐 알음알음 책이 소개되며 전해지고 있다. 또 고마운 일은 책을 빌미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못 만나던 지인들도 만나고, 초등학교 10대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와 십 수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가 책으로 안부를 나누며 오랜만에 만나자 약속을 잡게 되었다. 제자들, 동기들이 만들어준 작은 사인회도 있지 못한다. 1:1 대면 사인 미팅도 벌써 여러 건이다. 소소하지만 그렇게 책으로 그 동안 못했던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책을 읽고 나 힘이 되었다는 기분좋은 메시지도 받았다.
여전히 먹고 자고 싸는 평범한 일상에, 쓰고 그리는 일이 더 보태어졌고, 여름에 문턱에 들어서면서는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들이 보태어졌을 뿐이다.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