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도 떨어진 온도 사세요!

에어컨 로드_3

by Sunny Day

#부담감 내지는 신념

환경을 지키는 일에 대한 부담감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비영리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크리스찬이라는 것도 그렇고, 인간의 욕심으로 훼손되는 환경의 영향은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해오기도 했으니까.

그런 부담감은 개인적인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시즌마다 자연보호나 불조심에 대한 포스터를 그리거나 글쓰기를 해왔던 탓일 수도 있다. 도덕교과서나 슬기로운생활에 환경과 관련된 이슈가 나올 때면 학교에서는 환경을 지키기 위한 바른 생활습관에 대해서 기본기를 강조해왔고, 꽤나 바른생활(?)을 유지해왔던 나로써는 ‘무릇 지킬 만한 것’이 되었다.


#쓰레기 버리지 않기

당연한 소리를 왜 하나싶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에게 밖에 나가서 쓰레기가 생겼는데 버릴 곳이 없으면 반드시 가방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가지고 와야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당부하셨다. 하도 곧이곧대로 듣고 지키는 바람에(?) 머리가 굵어진 후에야 엄마가 우리 애들은 참 고지식해서 가방에 항상 쓰레기를 가지고 다녔어 하시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물론, 싫다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었다. 버스정류장에 먹다버린 플라스틱 일회용 음료컵이 즐비하게 있는 것은 여전히 이해가지 않는 장면 중 하나이다.


#분리수거하기

분리수거는 우리 집에서 몇 안되지만 옥신각신하는 일 중 하나이다. 동생과 엄마의 견해 차이가 있는 품목이 있고, 나는 잠잠코 있다가 이 둘의 의견조정과 결정사항을 따르곤 한다. 분리수거와 재활용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듯 하다.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 국민을 대상으로 공중파에서 재활용이나 분리수거 교육을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고 한다. 넘쳐나는 요리 프로그램과 먹방으로 모두 쉐프로 전향시킬 것이 아니라면, 그 중 하나 정도는 바꿔도 되지 않을까 하는 되지도 않은 소리를 해본다.


#에어컨 사지 않기

이건 교과서에는 없었던 이야기이나, 어렸을 때부터 좋은 습관들이기가 가능했던 우리는 여동생과 내가 비영리에서 일하면서 가능하면 에어컨은 사지 않아야겠다고 암묵적으로 다짐했던 것 같다. 선풍기 30대를 돌릴만큼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에너지킬러를 집안으로 들일 수 없었고, 게다가 그 대단하다는 여름 전기세를 감수하기에는 간이 너무 콩알만했다.

더우면 더운대로 땀도 흘리고 적당히 참아가며 지내는 것이 여름나기의 묘미라고 여기며 그렇게 숱한 여름을 지나왔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그런데,올 여름 대단하다. 대단하다 못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했다. 백수딸은 뜨거운 정오의 태양을 머리꼭지위에 두고도 전자건반을 두들겨대며 인고의 뮤지션 흉내를 내며 나는 괜찮다고 반은 거짓말로 참아낼 수 있었다. 폭염주의보와 경보메시지가 연일 울려대며 한참 더울 때 여름휴가를 방콕하며 집에서만 보냈던 여동생도 자원순환과 환경을 지키는 한 사람으로써 시민의식과 신념이 투철한지라 밤 중 더위에 들을 사람도 없는데 누구에게인지 모르는 짜증을 내며 일어나 앉았다, 물샤워를 하고 다시 누웠다를 반복해도 에어컨을 사는 것은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올 해 육십줄에 들어서는 엄마에게는 그냥 버티기에 너무 힘든 날씨였다. 우리 집 여자들 중 가장 땀도 많아서 옷을 갈아입다가도 화장을 하다가도 밥을 드시다가도 머리 꼭지부터 타고 내려오는 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매일같이 반복되어도 에어컨 사자는 말씀을 못하시고 아프셔서 집에만 계실 때도 하루에 몇 개씩 목에 두른 손수건을 갈아치우면서 그냥 버티고 계셨다. 나도 더위 먹은 증상이 몇 차례 계속되었지만, 이제 곧 누그러진다는 일기예보를 믿어보며 참고 견디다 정 안되면 노트북과 책을 싸가지고 동네 카페로 반나절 정도 피신가곤했다. 우리 집에 에어컨 들여놓기는 안되도, 너무 더울 때는 에어컨 바람이 있는 조금 더 시원한 곳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에어컨 들여놓기로

졌다. 더위에. 재난 수준이라는 이 더위를 그냥 몸으로 견디고 버티다가는 건강의 위협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자리 숫자가 달라졌다는 엄마때문이라고, 착한 딸들이 엄마를 위해서 신념을 버리고 큰 마음 먹었다고 거들먹거리며 이야기하면 있어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도 아니다.

엄마와 동생과 나, 모두를 위해서다. 참아야 하는 것과 참을 수 있는 수준은 분명 늘 상식수준에서 존재하는 것인데, 올 여름 더위는 예상밖의 불볕인데다 꺽일 기미는 보이지도 않고 두달 째 한창이어서 결심하게 됐다.

인대가 늘어나 바깥과 거의 차이없는 불가마 집에서 2주를 꼼짝않고 계시면서 몸살감기까지 걸리셨고 쉰 목소리로 말씀도 힘드실 때 감기에 좋다는 배숙을 해드리면서도 땀을 뻘뻘 내시는 엄마를 보며 좋은 것 드시며 흘리는 땀이라 괜찮겠지하며 이참에 자식노릇한다고 위안삼았는데, 자식노릇은 개뿔, 삼복더위에 열에 열을 더하기만 하고 식힐 때는 없었으니 그 열을 몸에 안고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싶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온도에 돈을 지불하기

에어컨을 주문했다. 좀 더 싸게 사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결국 가장 빨리 해준다는 전에 살던 동네의 소매대리점에서 모델을 찜하고 다음 날 아침에 전화로 주문하고 그 날 오후에 설치했다.

에어컨 세우고 베란다에 실외기 설치하고 선 연결하면 끝이겠지 말처럼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두 시간 남짓 꼬박 땀흘려야 되는 일이었다.(설치비가 꽤 비싸다고 생각해서 한철 장사라고 바가지 씌우나보다 싶었는데, 시원한 바람 나오게 해주느라 자기 몸에서는 육수를 바가지로 흘리는 두 분을 보며, 역시 쉬운 일은 없고 땀 흘린 일에 대한 댓가는 값싸게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 생각은 금새 버렸다.)

설치가 끝나고 테스트까지 마친 후에야 작동해보는데 엄마랑 내 입에서 시원하다는 소리가 자동이다.더워도 좀 참자고, 덥다 덥다 하면 더 못 견딘다고 나무라셨던 엄마도 실내온도가 28도 정도인데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해도 진데다가 1시간정도 내린 소나기로 바깥온도가 꽤 떨어진 후에도 집안은 여전히 30도였는데, 겨우 2도를 떨어뜨린 것 뿐인데, 공기가 상쾌한 것이 숨 쉴만하고, 나른했던 몸의 기운도 살아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에어컨이 설치된 거실 한가운데 이부자리를 펴고 나란히 누웠다. 열대야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쉽게 잠못든 밤이 몇 날이었는지 세 사람 손가락을 보태도 모자를 판인데, 어젯밤은 금새 잠들었다. 집안 열기가 식고 시원해진 공기 탓인지, 30도로 1시간 설정해놓고도 감기 걸리는 거 아니냐며 서로 너스레떨며 웃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그렇게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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