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에 묻힌 추억을 찾아 떠난 옛동네 여행
어렸을 적 사당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에도 엄마가 아르바이트 삼아 동네 대중 목욕탕에서 야간 청소를 하셨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가장 깨끗한 목욕탕 물에 물을 담글 수 있다는 게 왠지 뿌듯하고 성취감마저 느껴지는 일이라 새벽목욕에 가자는 엄마를 기분좋게 따라나서곤 했었다.
큰 탕과 그보다 작은 탕, 한증막 옆에 있던 작은 냉탕과 온탕, 그리고 작은 거울이 붙어있던 개인 샤워부스가 최소 이십 개는 되었을 작지 않았던 목욕탕을 청소하며 쓰다남은 목욕물을 뒤집어쓰며 땀인지 물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흠뻑 젖어계셨을 엄마의 고단함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벌써 작년이다. 늦은 여름, 백수의 한량질로 옛 동네 근처에서 지인을 만나 점심을 얻어먹고, 그냥 돌아오기가 아쉬워 남는 것이 시간이다 싶어 옛 기억을 더듬어가며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돌아보았다.
오거리에 가면 호남야채가게와 미용실, 겨울이면 불나던 호떡집, 돼지고기 한 근 사면 신문지 둘둘 말아 다시 까만 봉지에 싸주시던 빨간 조명의 정육점,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막내가 다녔던 교회 부설 선교원(유치원), 조금 나중에 생겼던 오거리슈퍼는 아무것도 그 모습 그대로 남겨져있지 않았다. 교회가 있었지만 외관을 바꾸고 새 옷을 입어서인지 매우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생일이어도 매번 먹기 힘들었던 케익은 큰 길가로 나가다 보면 있던 제과점에서 샀는데, 그것도 보이지 않았다.
길 따라 걷다보니 8살 국민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 그 시절 발걸음이 느껴졌다. 꿀호떡보다는 야채호떡을 좋아해서 마치 잡채같은 소가 가득 든 야채호떡 사먹겠다고 엄마한테 천원, 이천원 받아서 종이봉투에 한가득 사와 나눠먹으면 저녁들어갈 배가 부족했었다. 심한 감기가 들면 돋보기 안경위로 빼꼼히 내다보며 진맥도 짚어주던 백도약국 약사아저씨께서 사기로 만든 사발에 알약을 갈아서 조제해주시고 삼각형 고깔모양으로 가루약을 잘 접어주셨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살던 집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흰돌교회가 나왔다. 엄마는 그 교회를 지날 때면 겸손하고 청빈의 덕이 많으셨던 원로목사님에 대해 가끔 이야기하셨었다. 필리핀의 빈민지역을 위한 구제사역도 열심이시라는 말씀도 다시 귓가에 들렸다.
남지네 2층에 살았던 그 집 앞까지 왔는데, 예전에 살던 그 집 대신 4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들어서있었다. 대신 지금은 다 쓰러져갈 것만 같은 옆집만 남아있었다. 오래되고 허름한 집과 담벼락, 밤손님을 막아내느라 담장위로 뾰족뾰족하게 솟구쳐 세워놓은 삼지창 모양의 쇠창살(?)도 여전했다.
놀다가 동갑내기 그 집 애가 그 놈의 삼지창에 다쳤는데 누군가 나 때문이라고 뒤집어씌웠고 너무 순박(?)했던 나는 변명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당황하다가 범인이 되고 말았고 우리 부모님은 졸지에 큰 액수의 병원비를 물고 매일같이 과일과 고기를 사나르며 그 집에 죄인처럼 무릎 꿇고 죄송하다 하셨었다.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사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싶었지만 이웃끼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싶어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러셨다고 하셨다. 그 날의 당혹스러움과 부모님께 죄송했던 마음이 되살아났지만 다 지난 일이니 그냥 피식 웃으며 넘겨졌다.
다 지난 일인걸
그 집 앞 골목에는 그 일 말고도 여러가지 기억이 묻어있었다. 비록 지금껏 남아있는 흔적은 약간 씁쓸했던 추억일 뿐이었지만, 학교에 다녀온 후에 후다닥 숙제를 마친 후에 친구들과 함께 고무줄놀이하며 수없이 걸려넘어졌던 그 땅 바닥과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할 때 술래가 되어 눈을 가리고 기대서있었던 전신주는 그대로인 것 같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추억이 방울방울 꽃처럼 피어나는 옛 동네는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동네친구들 대 여섯명과 실컷 뛰어놀 수 있었던 집앞 골목은 생각보다 좁았고, 하늘같이 높았던 학교 담벼락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슈퍼집은 지금 보니 몇 평 안되는 동네 구멍가게였다.
너네 집 슈퍼라서 맛있는 거 많아서 좋겠다.
그렇지만,
넓게 확장된 큰 길가, 새롭게 바뀐 건물과 화려한 간판 사이로 보이는 옛 풍경이 정겨웠다. 나만 알아보는 오래된 계단과 내 손때도 남겨진 낡은 담벼락, 친구들과 떠들석하게 놀았던 골목안의 흥겨운 공기와 노랫소리는 여전히 내가 부르면 영화처럼 흐를 것들이다.
추억은 기억보다 새롭고
오래 지속되는 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