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할수록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살아야 했다.
어머님은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부터 당신의 거처와 살아갈 앞날에 대해 걱정하시고 숙고해 오신 듯했다.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정서적인 문제로 아버님이 입원해 계시는 동안에도 퇴원을 하시든 못하시든 그 집에서는 더 이상 못 산다며 이사는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십일월 이십삼일 토요일 아침부터 아이를 단속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이고 지어 비장한 듯이. 넘어져 부상당한 아이 치아를 보러 치과에 들렀다가 아이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폐병 환자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 같다던 어머님의 말씀처럼. 무심결에 불어오는 바람으로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의 위태로움. 촛불의 생명을, 생명의 촛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 갈 곳이 없었고, 못 할 것이 없었다.
결국, 십일월 이십사일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십오일에 입관, 이십육일에 발인을 하였고, 일반적인 삼일장 개신교 장례를 치르며 은혜를 입었다. 교인들이 새벽바람에 낮이고 밤이고 발 벗고 내 일처럼 나서 기도와 예배를 들려주셨다. 마음 깊숙이 느낀 은혜와 감사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님,
... 저는 아직 49제도 지나지 않은 아버님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어 쓰는 것이 맞는 일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대답을 알지 못합니다.
고인을 너무 그리워하면 돌아가던 고인이 뒤를 돌아보고 그 길을 가지 못한다는 말은 들어서 그리운 마음을 하늘에 대고 그려보진 않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워낙 예뻐하시던 하나뿐인 손주, 손녀딸 하늬는 먹골할아버지를 그리워해서인지 꿈에서도 할아버지와 구름 솜사탕을 먹으며 할아버지를 그렸다고 하고.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다고 원망 섞인 책망을 당하실까 어머님께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아버님 운명하신 때에 먼걸음 해 발을 동동 거리며 오열하셨던 시누이, 우리 형님한테는 '다 괜찮다'시며 따스히 안아주는 포옹을. 먹골역 근처에서 이웃으로 같이 산 당신 밑 여동생, 시고모님에게는 뱃삯을 지불하고 배편을 예약해서 맑디 맑은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시며.
아버님,
... 육신은 뼈만 남아 재가 되어 버리셨으나 영과 혼은 있다는 줄은 알게 되었고 천국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좋은 곳으로 돌아가실 거라는 믿음 하나로.
유품마저 속전속결로 정리하고 아쉬움, 안타까움, 아픔, 슬픔... 일말의 감정들 마저 함께 태워내 재가 되어야 했던. 죽으면 끝. 이면서도 끝이 아님. 을
십이월 초에 십오 년을 살아왔던 전셋집을 내놓았다. 남편이 스무 살 때부터 네 가족이 추억을 나누며 산 정이 든 거처이자, 아버님 투병시절부터 돌아가시기까지의 기억도 누렇게 얼룩덜룩한 벽지 속에 잠겨 정 떼고 싶은 거처. 어머님은 과거보다 현재에 살아 계시는 분이다.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
이사가 결정되었기에 토요일 오후부터 집과 짐을 정리하고 있었고, 저녁에 병원에서 긴급 연락이 왔다. 아버님께서 많이 위독하시니 마지막 문안인사가 될 수 있는 면회를 내일 아침 여덟 시쯤 빨리 오시라는 연락. 바람앞의 등불.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었으나 아버님 마지막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당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속마음과 속사정을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긴 침묵 끝에 어머님의 거친 손이 내 손을 꼭 붙잡고 우시며 부탁하신다.
"나... 나 좀 살려다오."
'어머니를 부탁해.'
사랑하면 할수록 (클래식 ost) from 한성민
https://youtu.be/ySJbEqPXYOs?si=3Q-3k9ka-LQoX-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