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우 특별기획전(2022.06.30 - 09.12)
이번 여름휴가에서는 여수를 시작으로 해남, 보길도를 잇는 미니전남기행을 계획했다. 전남기행의 첫 시작은 광양 전남도립미술관. 서울에서 여수까지는 357km로, 쉬지 않고 5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한다. 꽤 먼 거리기에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코스를 찾다 우연히 가고 싶은 전시를 발견했다. 윤재우 특별기획전인 색채의 미. 사실 이 전시를 가기 전까지 윤재우 화백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전시 포스터를 보고 홀린듯이 여긴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가서 여유있게 전시를 보고 싶었는데, 휴가 직전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술관 폐관 2시간 전쯤 도착했다. 미술관 외관이 참 멋졌다. 드넓은 잔디밭에 하늘이 반사되는 미술관 건물이 나는 미술관이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미술관에서는 <2021 특별작품 기증전>, <윤재우 특별기획전, 색채의 미>, <애도: 상실의 끝에서>, <박치호, Big-Man: 다시 일어서는 몸> 총 네 개의 전시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입장료 천 원으로 모든 전시를 볼 수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최근 서울의 웬만한 전시장은 주말이든 평일이든 관람객이 너무 많아 사실 작품을 감상하는 건지 사람을 감상하는 건지 모를 정도인데.. 오랜만에 여유있게 전시관람을 하고 나왔다. 폐관을 2시간 앞두고 도착해 모든 전시를 다 관람하진 못했지만, 윤재우 특별전을 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매표소 옆에서는 <2021 특별 작품 기증전>이 전시 중이다. 전시실 하나에 10여 점이 좀 넘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전시장 한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김정한 작가의 <정치, 종교, 경제>란 작품이 눈에 띄었다. 평양 출신의 김정헌 화백은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화가로, 1980년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담은 다수의 작품 활동을 하였다. 현재 전시 중인 이 작품에는 몽타주, 콜라주, 글의 혼합과 같은 표현기법 등을 통해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당시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세 가지 축인 정치, 종교, 경제의 문제적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일상이 된 요즘 정치, 종교, 경제에 대한 비판이 어찌 보면 좀 상투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이 1995년에 제작된 걸 감안하면 그 당시에는 상당히 센세이셔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이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예술이 꼭 아름다움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으니까.
작품 속 경제란의 글 발췌
“경제 재벌의 역원근법구도. 어떤 자가 이 땅에 나타나 금한 잎을 금방 수 백금을 만드는지라. 그는 또 수백 금을 투자하야 수억 금을 얻는지라. 이에 땅의 나라가 기특히 여겨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간단한 일이라. 그것은 너희 땅의 나라에 말뚝을 받고, 그 위에서 땅집고 헤엄을 짚고 있으면 어리석은 자들이 모두 자기도 돈을 내고 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신기술을 배우고자 한다. 또한 똥꿈을 매일 꾸어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파니 돈이 자연히 내게 모이는지라. 이제 이 땅도 내가 돈을 주사니 나의 왕국이로다. 구왕 정헌.”
<윤재우 특별기획전, 색채의 미>
인터넷에서 윤재우 특별전 포스터를 보자마자 야수파가 떠올랐다.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그려낸 풍경화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고 신비로웠다. 전남 강진 출신의 서양화가인 귤원 윤재우(1917-2005)는 한국 서양 화단의 선구자이다. 윤재우 화백은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셨다. 1944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였다. 40년간 교직에 머무르면서도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국전에서 17번의 입선과 4번의 특선, 13회의 개인전을 할 정도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윤재우 화백은 야수파의 마티스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영향으로 단순한 윤곽선과 밝고 따뜻한 원색 등의 야수파 특징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윤재우 선생님의 작가노트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이 잘 나타난다.
“좋은 작품이란 단순 명쾌하며 품위가 있어야 한다. 말초적인 아름다움보다도 작품 자체로서의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명쾌하면서도 힘을 느낀다거나, 장중, 엄숙하다던가 신비하더던가 하는 기운생동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 윤재우 작가노트 중
이번 윤재우 특별전은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오사카 미술학교 졸업 후의 작품들로 구성된 [한국적 색채의 표현], 교사 재직 시절의 정물 작품들로 구성된 [어둠 속에서 찾은 색채], 퇴직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현장의 생동감을 담은 색채], 마지막으로 y-화실에서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해방된 색채]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초기인 [한국적 색채의 표현]은 작가가 오사카 미술학교 졸업 후 작업한 작품들로 당시 유행했던 고전주의 양식과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고전주의는 균형과 질서, 안정감을 추구하는 사조로 당시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고전주의가 감각의 표현을 중시하는 인상주의와 결합하여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낸다. 윤재우는 당시 향토적인 소재와 자연적 색채를 살려 한국적 인상주의를 구축하였다. 윤재우의 작품들을 보면 한국적인데,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딘가 서양화가의 얼굴들이 보인다. <해바라기가 있는 사택>은 고흐가 한국에 온 듯한 느낌을, 아래 <정물>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정물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들이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둠 속에서 찾은 색채]는 윤재우 화백이 교직 생활을 하면서 그린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1960년대 밤의 정물화에서 1970년대로 가면서 원색이 도드라지는 변화가 두드러진다. 윤재우는 왕성한 작품 활동만큼 교직생활도 성실히 하였다. 미술교사로 시작해서 교감, 교장, 장학사를 역임할 정도로 교직생활도 성실히 하였는데, 후학 양성에 뜻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이 당시 윤재우는 스스로를 ‘밤의 화가’라고 칭하였는데, 퇴근 후 주로 밤 시간대를 이용하여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작품들에는 어두운 분위기의 정물들이 많다. 작품이 좋아서 감탄하기도 했지만, 직업활동과 동시에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한 작가의 이력에 더 많이 감동을 받았다. 주에 한 번 가는 수채화 수업도 빠지기 일수인 나를 되돌아보며..
아래의 <창변정물>은 전시를 통틀어 가장 맘에 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밤의 화가로서의 작업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밤의 특성상 명도와 채도가 굉장히 낮고, 형광등 불빛에 따라 빛이 형성되어 있다. 빛을 받은 붉은 소반을 중심으로 빛과 어둠이 잘 표현되었다. 나의 수채화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게 명도이다. 빛과 어둠만 잘 포착하면 어떤 색을 써도 괜찮다고 하시는데, 그만큼 빛과 어둠을 표현하는 게 정말 어렵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의 빛과 어둠을 저렇게 멋스럽게 묘사하다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전체적인 톤이 어두워 카메라가 원작을 잘 담지를 못해 아쉬웠다. 실물이 정말 멋진 작품이다. <테라스>는 1967년 제16회 국전에서 특선받은 윤재우의 초기 작품이다. 초기 작품임에도 1998년 수정 작업을 통해, 굵은 윤곽선과 원색과 같은 윤재우 후기 작품의 특징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현장의 생동감을 담은 색채]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섹션이었다. 이 섹션은 교직에서 퇴직 후, 가장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로 작가로서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윤재우는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작품활동하였는데, 풍경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단순화와 원색 사용이 두드러진다. 사실 이 시기의 작품들이 어찌 보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서양화가로서 윤재우의 독창성을 살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토속적인 풍경들을 서양화에 대한 윤재우의 해석을 통해 표현함으로서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그림은 느낌으로 그린다. 감동과 매력이 없으면 붓을 들지 말라. 감격으로써 붓을 들고 충격과 긴장의 연속으로써 작품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윤재우 작가노트 중
윤재우는 특히 전남 신안 홍도 풍경을 좋아하여, 홍도를 작품으로 한 작품이 많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집과 푸른 바다, 초록의 숲이 짙은 섬과 대비되어 토속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한 번은 홍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섹션은 [해방된 색채]이다. 이 섹션은 들어서는 순간 마티스인가? 할 정도로 마티스의 그림들을 닮아 있다. 굵은 선, 화려한 색채, 유미적 요소들이 마티스의 특징과 닮아 있다. 이러한 화풍의 변화는 개인 화실을 역삼동 Y-화실로 이전하면서부터 더욱 뚜렷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의 그림들은 마티스의 그림들과의 차별성이 없고, 작가의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어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나 눈에 띈 건 화실이 참 멋지다는 것..ㅎㅎ 정물화와 인물화 특성상 그림에 화실 내부가 자주 등장하는데, 역삼동의 한강이 보이는 작업실이라니. 그림이 절로 그려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애도: 상실의 끝에서>는 다양한 상실에 대한 애도와 승화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코로나19로 가족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전쟁으로 피난가는 사람들, 기후 위기로 인한 상실 등의 환경 속에서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다양한 상실의 상황에서 작가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상실을 애도하고 승화한다. 윤재우 특별전을 보고 나니 폐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여유 있게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지는 못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작품은 아니다. 곤충 작가로 유명한 유벅이란 작가의 작품이다. 서양화와 조형예술을 공부한 유벅 작가는 인간 외의 생명체를 가지고 주로 작업을 한다. <FISH>는 이번 전시에 전시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의료기기 링거 안에 금붕어가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위해 작가는 전시 개관 전에 광양에 내려와 수족관에서 금붕어를 사 링거 봉지 안에 넣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봉지 속 금붕어는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죽게 되는데, 작가는 링거 속 금붕어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인간의 폭력성과 이중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내가 관람할 때는 링거 속에 금붕어가 없었다. 전시 개관 직후 관람객들과 동물보호단체들이 작품에 문제제기를 하여 금붕어를 모두 회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유 작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금붕어가 죽는 것을 보는 것이 작품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는데, 금붕어가 빠져 작품으로서는 의미가 없어졌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예술가는 일반인의 사고와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한다.”라고 인터뷰했다고 한다. 확실히 이 예술가는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일반인과는 다른 것 같긴 하다.
전시 이후 논란이 된 건 <FISH>였지만, 나는 그의 다른 작품들도 상당히 불편했다. 그의 작품들 중 대부분이 벌레를 이용한 사진 작업이었는데, 아크릴 겉면에 유인액을 발라 벌레들이 들러붙게 하여 작품을 만든다. 아래 <소년>이란 작품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소년 사진 위의 검은색 무늬들이 유인액에 끌려 온 곤충 사체들이다. 작가는 곤충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생태계 보전의 핵심인 곤충들이 최근 대량 농업생산과 화학물질, 지구 온난화, 서식지 파괴 등으로 위협받고 있고, 이는 인류의 위험이라고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는 좋았지만, 작품 활동의 과정은 많은 회의감을 들게 한다. 생명경시를 이야기하면서 왜 그의 작품은 금붕어와 곤충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건지. 링거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던 금붕어와 유인액에 들어와 액체에 엉켜 발버둥 치다 죽은 수많은 곤충들을 생각하자면 작가의 의도에 깊은 공감을 보내기는 어렵다. 오히려 본인의 주장을 위해 생명체를 함부로 대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 자체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과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