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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Nov 29. 2022

22'08 전주에서 먹은 것들

전주 맛집은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이 아니다


올여름 전주에 다녀왔다. 전주는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다.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전주에서  먹어봐야 하는 대표음식으로 꼽힌다. 평소 비빔밥을 좋아해서 기대가 한층 더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주에서 먹은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그저 그랬다. 전주에 있는 3 4일간 비빔밥 2, 콩나물 국밥 2끼를 먹었다. 소문난 곳들을 찾아 방문했으나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맛이 없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주에 와서  챙겨 먹을만한 그런 맛도 아니었다. 음식점을 잘못 픽한 결과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인터넷에서 소문난 맛집들이고, 전주 토박이가 추천해  곳들이니까.  


비빔밥은 너무 투박하고 거칠었다. 특제 고추장을 쓴들.. 나는 자잘 자잘 부드럽게 무쳐진 나물을 선호하는데 전주비빔밥의 나물들은 너무 두껍고 커서 억세다고 느껴졌다. 콩나물 국밥은 평범했다. 그냥 우리가 아는  맛이다. 전주 토박이 친구에게 전주에 간다고 비빔밥과 콩나물 국밥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친구가 웃으면서 외식할  누가 비빔밥이랑 콩나물 국밥을 먹냐며 웃었다(추천은 해줬지만)..


맞는 말이다. 한계가 있는 메뉴다. 콩나물 국밥과 비빔밥이(육회 비빔밥 제외) 맛있을 수 있지만, 맛있어봐야 국밥이고 비빔밥이다.. 어쩌면 최고의 콩나물 국과 비빔밥은 내 입맛에 맞춰 집에서 조리한 국밥과 비빔밥이 아닐까. 이런 이유에서 이번 글에서 전주 여행에서 먹은 비빔밥집과 콩나물 국밥집의 상호는 밝히지 않으려 한다. 전주 여행을 갈 때 비빔밥과 콩나물 국밥에 집착하지 말자!

전주 돌솥비빔밥(왼)과 육회비빔밥(오)
모주는 정말 어딜가나 맛있었다..
전주 콩나물 국밥


연이은 국밥과 비빔밥의 충격에서 벗어나게 해 준 소중한 메뉴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피순대 전문점 <조점례 남문 피순대>


나를 위로해준 첫 번째 메뉴는 전주 남부시장의 피순대였다! 동료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한 곳인데, 예상외로 정말 맛있었다. 순대 전문점으로 순대 메뉴뿐이다. 메뉴는 순대국밥, 암뽕순대국밥, 순대, 모둠 고기가 전부이고, 기본적으로 피순대 베이스다. 일단 국밥이 정말 맛있다. 빨간 국밥은 걸쭉하고 느끼해서 안 좋아하는데, 국물이 시원했다. 양념이 되어 있지만 맑은 맛. 피순대는 말 그대로 돼지 피인 선지로 만든 순대다. 선지 해장국이나 피순대는 돼지피로 만든다는 선입견 때문에 사람들이 잘 도전을 안 한다. 또 실제로 조리를 잘 못하면 비린내가 심해서 비위가 어지간하게 좋지 않은 이상 실제로 먹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집은 찐이었다.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선지, 두부, 고기, 달걀, 채소 등으로 만들어진 피순대는 당면 순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소하고, 녹진녹진 한 맛이 일품이다. 전라도에서는 순대를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하는데, 사실 초장이나 새우젓 없이도 충분히 간이 맞았다. 싱거운 걸 좋아하는 나한테는 좀 세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순댓국과 함께 모둠 고기를 시켰는데, 피순대와 암뽕을 포함한 각종 부속들이 나왔다. 암뽕이라는 단어를 처음 봐서 종업원 분께 암뽕이 뭐냐고 여쭤봤다. 종업원분 말이 잘 안 들려서 네? 네? 하고 있는데, 하도 못 알아들으니 종업원 분께서 답답하셨는지 “돼지 자궁이라고!!!” 어찌나 크게 소리를 치시던지..ㅋㅋㅋ 세상에나.. 암뽕은 사실 이름만 몰랐지 먹어본 내장이었다. 오돌오돌 씹히는 식감이 씹는 재미가 있다.

모듬고기 소(13,000원), 순대국밥(8,000원)



2. 수제 맥주 전문점 <노매딕 비어가든>


밤에 가볍게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숙소 근처 호프집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다. 늦은 밤 조용한 한옥마을 끝자락에 홀로 붐비고 있었다. 이곳은 미국 미시간 출신의 헤드 브루어가 운영하는 소규모 브루 펍이다. 오너 브루어인 좌니님은 미국 시카고, 독일 뮌헨의 브루잉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셨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많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관광객도 많았지만 동네 주민 분도 많이 보였다.

일단 맥주를 마시기 전부터 인테리어가 정말 멋지다. 정원이 딸린 한옥이라니.. 실내, 실외 자리가 모두 있었는데, 에어컨 혐오자들인 우리는 망설임 없이 실외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 인테리어도 유니크하지만, 더위에 강하다면 여름밤 한옥 테라스를 즐겨보길 강추한다.

노매딕 비어가든 전경
노매딕 비어가든 실내(왼), 비어가든 야외테이블(중간), 비어가든에 핀 흰독말풀(오)

우선 시그니처로 시작했다. 품절된 나잇 워크(스타우트)를 빼고 시그니처 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사진 속 차례로 글램핑(크림 에일), 한옥 스테이(코리안 세션 에일) 카우보이(오트 에일), 노매디카(아메리칸 아이피에이). 시그니처는 뭐 하나 고르기가 어렵게 다 맛있었는데, 그래도 굳이 원픽을 고르라면 글램핑이 제일 맛있었다. 난 맥주를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어서 맥주 맛을 잘 알지 못하기에, 내 입맛에 맞으면 누구나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일 거라고 생각된다. 맥주는 먹다 보면 배부르고 맥주 찌린내가 올라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노매딕 맥주는 꽃향이 정말 싱그럽고, 목 넘김이 부드러워 꿀떡꿀떡 넘어갔다.

노매딕 시그니처 네잔. 차례로 글램핑, 한옥스테이, 카우보이, 노매디카

순식간에 시그니처 4잔을 끝내고 시즈널에 도전했다. 도전하지 말았어야 했다. 맥알못이기에 메뉴판의 설명에 의존하여 의식의 흐름대로 맥주 3잔을 추가했다. 디스코(드라이홉 사워 에일), 페도라(드라이홉 프루트 에일), 데이드림(드라이홉 프루트 에일). 음.. 시즈널 매우는 어려웠다. 일단 신맛이 특징인 디스코는 충격적인 맛이었다. 표현해보자면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에 맥주를 섞은 그런 맛인데.. 내 취향은 아니었고, 페도라와 데이드림은 굉장히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결국 우린 완벽한 막잔을 위해 다시 글램핑 한잔을 시켜 먹었다는.. 맥주가 맛없다고 하기엔 이 집 시그니처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훌륭한 맥주에 비해 안주는 좀 많이 아쉬웠다. 올해 늦봄 호프집에서 난생처음 먹태를 맛보고, 야식으로 맥주에 먹태만 먹던 시절이었는데, 먹태에 대한 환상을 깨는 그런 맛이었다. 감자튀김과 소시지도 많은 아쉬움이 남았던 맛..

시즈널 맥주. 차례로 디스코, 페도라, 데이드림(왼), 노매딕의 안주들(중간, 왼)


3. 가맥집의 원조 <전일갑오>


전주에서의 마지막 날, 가맥집의 원조인 전일갑오에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웨이팅이 엄청났다. 현장에서 먹고 싶었는데, 긴 웨이팅에 놀라 포장을 했다. 전입갑오에서 황태포를 주문하면, 주인아주머니가 연탄불에 즉석에서 바로 구워주신다. 포장을 하면 이미 구워져 있는 황태포를 주시는데, 뜨끈뜨끈 하게 먹고 싶어 한 번 더 구워달라고 요청드렸다. 황태포 테이크 아웃을 기다리며 사장님 옆에서 굽 멍~을 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최애 맥주인 카스 라이트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카스 라이트는 정말 잘 만든 맥주다. 맥주 특유의 비린내가 안 나고, 무겁지 않은 시원함이 킬포다. 여기에 전입갑오 황태포가 안주라니.. 전일갑오의 분위기는 절대 못 따라가지만, 너무 완벽한 야식이었다. 청양 마요네즈 소스를 찍은 바삭 짭조름한 황태포는 맥주 안주로 최고다. 다음 전주여행 때는 매장에서 꼭 먹어보는 걸로..!


전일갑오 매장입구(왼), 황태포 굽는 중이신 사장님(오)
전일갑오 황태포와 특제 마약소스, 그리고 카스라이트.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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