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가 사랑한 곳, 부용동 원림
윤선도 원림은 보길도의 꽃과 같은 곳이다. 이번 보길도 여행 중에 가장 기대했던 곳이기도 하고, 실제로 기대 이상이었던 곳이다. 보길도는 윤선도를 떼어놓고 설명하긴 어려운 섬이라고 할 만큼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윤선도의 손길이 섬 이곳저곳에 묻어있다. 고산 윤선도 원림은 보길도 면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근처에 들린다면 원림만 보러 섬에 들릴만도 하다. 여름휴가의 절정인 7월 말인데도 보길도에서는 인적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윤선도 원림에서는 몇 팀의 관광객을 만났다. 그만큼 보길도 최고의 핫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윤선도 원림 입구를 지나면 세연정으로 가는 길목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7월 말 해바라기가 만개하지 않아 아쉬웠다. 몇 주만 늦게 왔어도 만개한 해바라기와 함께 쨍한 여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나에게 윤선도란.. 고등학교 시절 <어부사시사>라는 고전시가를 지어 나를 괴롭혔던 사람 정도로 기억되는 분. 그 시가가 이 아름다운 보길도를 보며 만들어진 것이라니, 이제야 왜 그가 그런 시가를 지었는지 이해할 것 같다. 내가 블로그에 보길도에서 받은 감동을 기록하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다른 점이라면 그의 글은 뛰어나 현대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것? 그때 그 시절 보길도에 내려와 어부사시가를 배웠더라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딱딱한 책걸상에 앉아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보길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려 했으니 어려운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나 윤선도 덕질을 해 봤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시인이었던 윤선도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자식이 없었던 해남 윤시 종가에 입양되었다. 윤선도가 해남 일대에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18세기 과거에 합격할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당시 치열한 당쟁으로 인해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낸 인물이기도 하다. 인조 때는 총애를 받아 호조, 예조 등 관직을 두루 거친 후,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왔다. 해남에서 머물던 중 그는 병자호란 소식을 듣고 강화도로 올라갔지만, 이미 강화도는 청나라 군대에 함락되었고,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후였다. 이에 대한 죄책감(?) 분노(?)로 그는 세상을 등지고 탐라(제주도)로 떠나는데, 가는 도중 큰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잠시 표류하게 된다. 그때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말년의 그는 굉장히 의식의 흐름을 따라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ㅎㅎ
보길도의 메인이자 가장 높은 봉우리인 격자봉을 중심으로 하여 시냇물이 흐르는데,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이라 이름 지었다. 부용동은 보길도의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피어나는 것과 같다 하여 윤선도가 붙인 이름이다. 격자봉 아래 그는 세 채의 기와집으로 구성된 거처인 낙서재를 짓고, 그 근방에 수많은 정자와 연못을 축조하여 남은 일생을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였다고 한다. 부용동 원림은 물과 바위를 최대한으로 살리고 인간의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대자연을 활용하여 만들어낸 거대한 원림이다. 섬에 들어와 집도 짓고 정원도 만들고 경치를 보며 취미활동을 하다 간 그의 삶이 부럽다..
윤선도는 낙서재, 동천석실, 세연정, 곡수당 등 부용동 일대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만들었는데, 세연정은 윤선도가 가장 공들여 꾸민 곳이라고 한다. 세연정 일대는 해변에 인접한 마을로, 커다란 못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못에 지은 정자가 세연정이다. 세연지는 물의 흐름을 섬세하게 연출한 연못으로,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석들을 자연과 조화롭게 배치시켰다. 물가에는 커다란 돌단 두 개도 세워놨는데, 이곳은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곳이라고 한다. 말년에 플렉스 했던 그의 삶. 세연정 풍경들을 공유해본다.
여름 한복판 가장 더운 남쪽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날씨였지만, 푸릇푸릇한 자연과 어우러진 세연정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보길도의 여름을 그린 윤선도 <어부사시사>의 ‘하사’와 함께 이 글을 마쳐본다.
궂은비 멈춰가고 시냇물이 맑아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고 깊은 흥이 절로난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산수의 경개를 누가 그려낸고
연잎에 밥을 싸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삿갓은 썼다만은 도롱이는 갖고 오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무심한 갈매기는 나를 쫓는가 저를 쫓는가
마름잎에 바람 나니 봉창이 서늘하구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여름 바람 정할소냐 가는대로 배 맡겨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남쪽 개와 북쪽 강 어디 아니 좋겠는가
물결이 흐리거든 발 싯은들 어떠하리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오강에 가자 하니 자서원한 슬프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초강에 가자 하니 굴원층혼 낚을까 두렵다
버들숲이 우거진 곳에 여울돌이 갸륵하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다리에서 앞다투는 어부들을 책망 하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백발노인을 만나거든 순제(舜帝) 엣 일 본을 받자
긴 날이 저무는 줄 흥에 미쳐 모르도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돛대를 두드리며 수조가를 불러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뱃소리 가운데 만고의 수심을 그 뉘 알꼬
석약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까웠도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바위 위에 굽은 길이 솔 아래 비껴 있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푸른 나무숲 꾀고리 소리 곳곳에 들리는구나
모래 위에 그물 널고 배 지붕 밑에 누워 쉬자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모기를 밉다 하랴 쉬파리와 어떠하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다만 한 근심은 상대부 들을까 두렵다
밤 사이 바람 물결 미리 어이 짐작하리
닻 내려라 닻 내려라
사공은 간 데 없고 배만 가로놓였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물가의 파란 풀이 참으로 불쌍하다
물가의 파란 풀이 참으로 불쌍하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부들부채 가로 쥐고 돌길 올라가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어옹이 한가터냐 이것이 구실이다
자료 출처
고산 윤선도 영정: 나무위키(http://gyuljeong.com/files/attach/images/390/058/002/dc289690de4d14dd277d4af1564a26e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