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토면을 만나다
방학이 끝날 무렵 도전적인 여행을 다녀왔다. 방학 중 강릉에서 연구자 캠프가 있어서 참가 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선생님들과 속초여행을 계획했다. 속으로 낯을 가리는 데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업은 나를 철저히 집에 고립시켰고, 입학한 지 3년 차가 돼서야 말문을 트기 시작한 선생님들이 생겼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어색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기우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적 모임에서 직장에서의 고충이나 고민을 깨알같이 털어놓기는 참 어렵다. 주로 나의 대학원 생활에 대한 친구들은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도대체 언제 졸업해?’(너무 큰 스트레스)와 ‘공부가 그렇게 재밌니?’(할말하않) ㅎㅎㅎ 저 간단한 두 질문에 하고 싶은 말이 한 트럭이지만, 보통 상대가 재미없을까 봐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너무 즐거웠던 건 어찌 보면 이제는 나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대학원 생활에 대해 눈치 안 보고 얘기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은 아닐까.
다시 한번 지난여름의 추억을 꺼내다 보니 제목에 안 어울리게 상당히 감상적인 여행 글이 되어 버렸다. 본론으로 들어가 대학원 선생님들과 맛있게 먹었던 식사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ㅋㅋ
1. 김영애할머니순두부 본점
설악산 근처 속초 두부촌인 학사평콩꽃마을순두부촌에 위치한 순두부집이다. 강원도 순두부 하면 강릉을 보통 떠올리지만, 속초 순두부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속초 순두부촌은 몇 번 들려 식사를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김영애 할머니 순두부집이 가장 맛있었다. 기본에 아주 충실한 맛이다. 근처에 두부 식당이 천지인데, 유독 이 식당만 손님이 바글바글거렸다. 메뉴판만 봐도 포스가 느껴졌다. 국산콩 순두부 단일 메뉴. 밑반찬은 김치와 나물이 깔리는데, 오이무침이 정말 맛있었다. 무심하게 썰어낸 싱싱한 오이가 새콤달콤 양념장에 버물어져 시원 개운 했다. 두 접시나 먹었다..ㅎㅎ 두부와도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순두부는 정말 맑은 맛이다. 은은한 고소함이 계속 올라오는데, 양념장을 곁들이는 것보다는 그냥 먹어보길 추천한다. 두부 본연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아침식사 메뉴로도 아주 제격이다.
2. 청대리 막국수
맛있는 막국수 집을 찾다가 아시는 분의 소개로 가게 되었다. 평소 잘 안 가던 곳에 위치한 막국수 집인데, 가게 입구 조경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으셨다. 식당에 들어가는 길 사진을 열심히 찍으니 남자 사장님께서 인터넷에 올리려고 찍는거냐며, 다들 그렇게 찍어가고 안 올려준다는 귀여운 투정을 하셨다. 저는 그렇지 않다며, 무조건 올린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는데, 8월의 식사를 10월에 올리고 있다니..
먹고 싶은 메뉴가 한가득이었는데 여러 명이 가 여러 음식을 다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시킨 메뉴는 도토리묵, 감자전, 메밀전병, 감자옹심이, 메밀막국수, 토면(100% 메밀면)을 시켰다.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맛있었던 저녁식사였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운전 때문에 막걸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여전하다. 다 맛있었지만, 나의 원픽은 100% 메밀로 만든 토면이다. 일단 코끝에 닿는 메밀향이 정말 진하고 구수하다. 토면을 먹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맛 간장에 비벼먹는 방법과 육수에 양념장을 넣어 먹는 비빔막국수 스타일이다. 개인적으로 맛간장 스타일로 먹는 걸 추천한다.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와 비슷한 맛인데, 메밀향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100% 토면은 향이 정말 진하고, 면발이 툭툭 끊긴다. 메밀과 밀가루가 섞인 메밀막국수도 맛있었지만, 이건 평소 접하던 막국수와 비슷한 맛이었다. 감자전과 도토리묵도 맛있었다. 사진 찍기가 무섭게 순삭 됐다.. 감자옹심이도 맛은 있었는데, 옹심이에 수제비나 밀가루를 넣는 걸 좋아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강원도 향토 음식을 맛있게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앞으로 속초 갈 때마다 들릴 것 같다!
3. 곤드레밥집
허영만의 식객 여행에서 소개된 곤드레 밥집이다. 마지막 속초에서의 메뉴를 고심 끝에 고른 식당. 속초 시내 골목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다. 맛도 맛이지만, 사장님께서 친절하시고 설명을 잘해주셔서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나왔다.
메뉴는 솥밥과 도토리묵이다. 곤드레 돌솥밥, 톳 돌솥밥, 도토리묵을 시켰다. 기본 찬으로 나물 5종이 나오는데, 정갈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도토리묵 정말 취저!! 새콤달콤한 소스에 상추와 도토리 묵향이 조화로웠다.
곤드레 향이 모락모락 피어 나오는데 군침이 돌았다. 옆에 친구는 톳 솥밥을 시켰다. 톳 사이사이로 귀여운 완두콩들이 송송 박혀 있었다. 고맙게도 맛을 보라며 톳 솥밥을 나눠주어 둘 다 먹어봤다. 곤드레 솥밥은 산의 맛이라면 톳 솥밥은 바다향이 가득한 맛이다. 좀 더 구수한 곤드레향을 느끼고 싶다면 곤드레 솥밥을 추천한다. 곤드레 위해 올라가는 감자와 단호박 맛도 정말 일품이었다. 곤드레 밥에 각종 나물반찬을 먹다 보니 돌솥 하나를 순식간에 비웠다.. 식후 돌솥에 물을 부어 만들어놓은 누룽지까지 먹으면 완벽한 한 끼 식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