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송정빈 버전의 돈키호테
발레 < 돈키호테>는 스페인 극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869년 마리우스 프티파가 초연한 작품인데, 제목과 다르게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작품으로 돈키호테의 비중은 매우 작다. 돈키호테 없는 돈키호테라고 불리기도 한다. 돈키호테 뮤지컬인 <맨 오브 라만차>를 생각하고 보면 크게 당황할 수 있다. 이와는 별개로 돈키호테는 발레 입문을 위한 고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백조의 호수나 지젤 등의 작품과는 다르게 무대 배경, 안무, 음악이 유쾌하고 화려해서 발레를 처음 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다.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는 화려한 무대, 스페인풍의 빠르고 화려한 음악, 플라멩코나 카덴차와 같은 스페인 민속춤이 접목된 안무를 많은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한다. (물론 예외는 항상 있다. 나의 베프는 첫 돈키호테 관람에서 깊은 곤잠에 빠졌었다..ㅋㅋ)
작년 봄 국립발레단은 송정빈 안무가 재해석한 돈키호테를 선보였다. 국립발레단에서 새롭게 선보인 <돈키호테>는 존재감이 거의 없던 돈키호테를 살려냈다. 송정빈 안무가는 원작에서 늙은 기사로만 등장하는 돈키호테를 늙은 돈키호테와 젊은 돈키호테로 등장시켜 캐릭터를 재해석했다. 송정빈 버전의 돈키호테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꽤 많은 부분이 원작과는 달랐다. 작년 작품 공개 이후 새로운 버전의 돈키호테에 대해 호불호가 많이 갈려왔다. 원작을 그리워하는 관객들도 상당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도 재밌게 봤다. 특히 젊은 돈키호테가 등장하면서 새로 재구성된 2막 1장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꿈속에서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돈키호테는 둘시네아와 멋진 파드되를 선보였다. 돈키호테와 둘시네아의 파드되도 멋있었지만, 더 기억에 남는 건 군무다. 푸른 배경 뒤로 에메랄드색 튜튜를 입은 발레리나들의 군무는 마치 드가의 작품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번에 관람한 공연 캐스팅은 조연재 발레리나와 이재우 발레리노였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날짜를 맞추다 보니 최근 이 두 무용수의 공연만 보게 됐다. 조연재 발레리나는 볼 때마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정말 연기 천재라고 할 만큼 연기가 뛰어난 무용수다. 지난 <인어공주>에서 인어의 시린 슬픔을 정말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감탄했는데, 이번 <돈키호테>에서 조연재의 키트리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이재우 발레리노의 재발견이었다. 평소 이재우 발레리노의 공연을 볼 때마다 피지컬이 참 주연답다고만 생각했지, 그에게 크게 주목하지 않아 왔다. 그런데 지난 인어공주 발레 후기를 보다 이재우 발레리노에 대한 논란을 접하게 되었다. 이재우 무용수는 신장이 192센티로 굉장히 눈에 띄는 피지컬을 가졌지만, 이런 그의 피지컬은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 발레리노로서는 불리한 조건이다.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 대해 피지컬만 되는 무용수라는 둥 발레리나를 위한 무용수라는 식의 혹평을 온라인상에서 종종 봤다. 이 논란은 마지막의 바질 바리에이션과 코다에서 모두 종결됐다. 이재우 바질의 독무는 피지컬 좋은 발레리노가 테크닉까지 좋으면 어떻게 무대를 장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날 이재우 바질의 독무 후 여기저기서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정말 멋진 장면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다시 리플레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날 공연에 취한 나는 난생처음 덕질을 하게 된다. 공연이 끝난 후 대기실 앞을 서성이다 조연재 발레리나와 이재우 발레리노의 사인을 받았다. 프로그램 북에 사인을 받아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덕질이 체질에 안 맞는다는 깨달음 또한 얻었다.. 하하
작년에는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를 놓치는 바람에 가을에 있었던 유니버설 발레단의 돈키호테를 봤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원작에 충실한 돈키호테를 선보였다. 개인적으로는 기회가 된다면 두 작품 모두 추천한다. 두 작품 모두 보고 나니 원작 돈키호테와 국립발레단만의 유니크한 돈키호테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단순히 안무 구성뿐만 아니라 무대, 의상과 같은 요소의 디테일이 발레단마다 차이가 나서 같은 작품이어도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발레 관람 후기 마무리는 늘 커튼콜로.. 이 날이 첫 공연이어서 커튼콜 때 강수진 단장님도 나오셨다!
사진출처: 국립발레단 홈페이지(https://www.korean-national-ballet.kr/ko/performance/view?id=1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