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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May 07. 2024

24'05 발레 <인어공주>

올해 첫 발레공연은 인어공주였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상연되는 발레공연이다. 전직 발레리노이자 안무가인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가 제작한 이 발레는 2005년 덴마크 동화작가인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특별제작되었다. 안무뿐만 아니라 의상, 무대, 조명까지 노이마이어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상상하며 발레 인어공주를 보러 가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발레 인어공주는 디즈니 인어공주와 같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기보다는 안데르센 원작을 기반으로 한 비극이다. 인어 공주 원작은 안데르센의 슬픔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양성애자였던 안데르센은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실연에 빠진다. 이 실연의 슬픔을 담은 게 동화 인어공주다. 발레 인어공주는 슬픈 사랑을 아주 처절하고 절절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너무나 사랑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고, 인간이 되기 위해 끔찍한 의례를 거친다. 신체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의 몸을 얻고, 인간처럼 걷기 위해 연습하면서 수십 번 넘어지지만,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다. 노이마이어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도 상대가 나를 사랑할 책임은 없다는 게 인어공주의 메시지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랑의 모습을 전달해주고 싶었나 보다.

인어공주는 클래식 발레가 아니고 모던 발레다. 흔히 우리가 발레공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의 공연들이 클래식 발레에 해당한다. 클래식 발레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기본적인 레퍼토리가 있어서 기본적인 줄거리, 음악, 안무, 배경 등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클래식발레와 모던발레의 구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고전 발레의 형식을 깨뜨린 작품을 모던발레라고 한다. 모던발레에는 익숙한 스토리나 공식화된 안무가 없고, 안무자의 재량으로 안무부터 시작해 의상, 음악, 메시지 등을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 인어공주도 여기에 속한다. 인어공주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서 오는 아픔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테크닉, 우아하고 조화로운 음악 대신 고통스럽고 추한 움직임과 불안정한 불협화음의 음악이 공연을 채운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시놉시스와 노이마이어의 언론 인터뷰를 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공연이었다. 기존에 즐겨보던 클래식발레와 상당히 다른 형태의 발레에서 오는 신선함도 있었지만, 공연 내내 감정선을 쫓아가느라 힘에 부쳤다.


인어공주에는 클래식 발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고 멋진 발레 동작이 없다. 지느러미를 단 인어는 때때로 우아해 보이지만, 인간의 다리를 얻은 인어는 땅에 발을 디디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 아픔은 짝사랑의 슬픔으로 더 커지는데, 이 모든 슬픔이 발레리나의 몸짓으로 표현된다. 공연을 보는 내내 감정소모가 심했다. 인어공주가 한편으로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 왕자에 대한 사랑이 아름답고 숭고하기보다는 어떤 면에서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존 노이마이어를 현존하는 최고 안무가라고 극찬하는 이유를 공연을 다 보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데 마치 연극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인어의 그 애절하고 절절하고 조금은 지나쳐 집착같이 보이는 짝사랑의 감정이 정말 적나라하게 전달됐다. 이 엄청난 몰입감에는 조연재 발레리나도 한 몫했다. 다른 클래식 발레에서 조연재 발레리나의 연기를 몇 번 봤었는데,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몰랐다. 이 날 커튼콜에서 박수가 그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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