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지난 사월 독일에 갈 일이 생겨 간 김에 프랑스 알자스 지방과 독일 서부 지역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의 사월 날씨가 어떻냐고 묻는다면 정말 사계절이 다 있다. 짐을 싸기 전 독일에 사는 친구에게 날씨가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온 답변은 날이 좋으면 여름처럼 더워서 반팔을 입고 다니는데, 비가 오면 겨울처럼 춥다고 답해줬다. 답변을 듣고는 아니 그래도 대충 날씨 좀 알려주지라며 짐을 쌌는데.. 여행을 마치고 나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사계절이 다 있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하루 안에 사계절이 있다고 보면 된다. 여름처럼 더워서 땀이 줄줄 나다가도 비가 오면 초겨울처럼 날씨가 추워진다. 그리고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처럼 시원한 바람과 청량한 하늘이 나타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마지막 뒤셀도르프 일정을 빼고는 대부분 날씨가 쨍하니 좋아서 행복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 초반 날씨카드를 다 써서인지 뒤셀도르프에서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동생과 매일 하루 한 장 여행스케치를 했다는 점이다. 성인이 돼서 다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고, 육 년 전 그리스 가족여행에서 그림일기를 쓰겠다고 물감이랑 붓을 바리바리 챙겨갔었다. 그때만 해도 그림 동지가 없어서 외롭고 시간에 쫓기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있다. 이후 엄마도 동생도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여행스케치 동지들이 생겼다. 여행길에 함께 마주한 장소를 각자의 그림으로 남겨보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언젠가 온 가족과 다같이 스케치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또 하나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는 '짐 분실' 사건이다. 출국 당일 비행기 기체에 이상이 생겨 비행기가 한국에서 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환승시간을 2시간 45분으로 넉넉히 잡아놨는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이 환승시간이 45분 밖에 안 남았다. 당연히 환승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의지의 달리기와 패스트트랙 찬스로 45분 만에 환승을 해내버렸다. 문제는 우리는 해냈는데, 짐은 못해냈다. 짐이 환승을 못하고, 주말이 시작되면서 나흘동안 짐 없는 여행을 하게 됐다. 보상여부와 관계없이 매일 생필품과 입어야 할 옷을 사야 하는 건 상당히 괴로운 미션이었다. 그래도 짐 없는 여행을 통해 깨달은 건 짐이 없어도 여행은 된다는 것, 오히려 여행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짐이 없어서 매일 아침 뭘 입을지, 뭘 챙겨갈지 고민할 일이 없었다. 보부상 여행객에 속해오던 나에게는 큰 깨달음이다. 단벌신사의 삶이 얼마나 멋질 수 있는가를 경험했다(물론 짐이 오고서 더없이 행복했지만 말이다).
1. 스트라스부르
이번 여행의 첫 경유지는 스트라스부르였다. 스트라스부르로 정한 이유는 오 년 전 겨울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때, 당일치기로 다녀온 스트라스부르 여행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일 강과 강에 비친 중세가옥 풍경,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 프랑스 음식. 독일에 체류하다 잠깐 들른 프랑스여서 그런지 기억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아쉬움이 잔뜩 남아서 이번에 스트라스부르에 다시 들렸다. 봄의 스트라스부르는 겨울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싱그러웠는데, 예상과 다르게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스트라스부르는 강이 흐르는 조용하고 고요한 도시였는데, 봄의 스트라스부르는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였다. 스트라스부르는 크게 알트슈타트(Altstadt, 올드타운)와 노이슈타트(Neustadt, 신시가지)로 나뉜다. 알트슈타트에는 천문시계가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16-17세기 지어진 독일식 목조주택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쁘띠프랑스가 있다.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노이슈타트는 1871년 - 1918년 사이 독일이 스트라스부르를 점령했을 때 조성한 신시가지 지역이다. 알트슈타트와 노이슈타트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도시 경관이 아름답다. 알트슈타트에는 옛 중세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쁘띠프랑스, 천문시계가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그 외 다양한 관광지가 오밀조밀 모여있다. 그래서 늘 관광객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는 노이슈타트에서 보낸 시간이 더 여유롭고 좋았다.
https://youtu.be/otve6Lu4kyE?feature=shared
2. 프랑크푸르트
이십 대만 해도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전공 특성상 독일을 접할 일이 많아서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나이 삼십이 넘어 뒤늦게 프랑스 신드롬을 겪는 건지 아니면 낭만이 사라진 건지 프랑스의 낭만이 낭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스트라스부르도 좋았지만 빨리 독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음 도시였던 프랑크푸르트가 유독 반가웠다. 프랑크푸르트는 나에게 츠바이테 하이마트(die zweite Heimat, 제 2의 고향)라고 하기엔 너무 오그라들고(ㅋㅋ), 애정이 깊은 도시다. 나의 첫 독일은 아니지만 서울 외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도시기 때문일 거다. 프랑크푸르트 안 지겹니라는 질문도 종종 받지만 익숙함에서 오늘 추억과 즐거움이 있다. 코로나 이후 정말 오랜만에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했다. 2019년 겨울이 마지막이었으니 오 년 만이다. 독일이 좋은 점은 오 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렇다고 하기엔 이번에 재건축 공사 현장이 너무 많았지만). 도시 곳곳을 누비면서 추억이 방울방울을 찍고 왔다.
https://youtu.be/KC_oik-f0p4?feature=shared
https://youtu.be/nfmMz1tkPJc?feature=shared
3. 프랑크푸르트 근교 여행: 마인츠와 뤼데스하임
https://youtu.be/dpIDHnzAafY?feature=shared
4. 뒤셀도르프
뒤셀도르프에 도착하는 날부터 비가 무진장 내렸다. 춥고 축축한 데다 여행의 막바지라 남긴 기록이 많이 없다. 그래도 뒤셀도르프에 사는 친구 덕에 맛있고, 즐거운 여행을 했다. 뒤셀도르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쿤트스팔라스트(Kunstpalast)에서 기획한 팔라스트브루헨(Palastblühen, 꽃피는 궁전) 전시다. 미술관과 플로리스트가 협업한 기획인데, 뒤셀도르프의 플로리스트가 쿤스트팔라스트의 전시공간과 작품에 맞는 꽃꽂이를 통해 작품과 공간을 재해석한 전시다. 아무래도 꽃꽂이 특성상 전시기간이 이 주로 굉장히 짧았는데, 운이 좋게 일정이 맞아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전시장에 꽃내음이 가득해서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향기를 맡는 즐거움도 있었다.
https://youtu.be/qFLdF4-6mFU?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