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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그린 Sep 13. 2022

쓰리아웃

인간관계(10)

인생을 위엄과 품위, 부귀를 가진 꽃 중의 왕 <모란>처럼 피우고 싶다면 <쓰리아웃>이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아경이가 적용하는 강력한 원칙은 <쓰리아웃>이다.


살면서 인연을 맺게 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는 없다.


아경 자신과 영 안 맞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이도 있었다. 


영하 10도였던 겨울에 퇴근 후 지인들과 모임이 있었다. 


A가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식당으로 이동하기로 했기에 A에게 언제 오냐고 전화로 몇 번을 물었는데, 금방 도착한다고 했다. 


그래도 안 오길래 밥 먹기로 한 식당에 먼저 가 있겠다고 그리로 오라고 말하자 A는 거의 다 왔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마땅히 추위를 피할 곳이 없어서 참 힘들었다.


너무 추웠다.


그렇게 10분, 20분이 흐르고 마침내 A는 약속시간에서 30분이나 지나서 왔다.


평소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싫어했던 아경은 10분 정도 먼저 도착했던 까닭으로 거의 40분을 영하 10도의 거리에서 떨었다. 


미련하게도 말이다. 


A는 미안한 기색은 하나없이 마침 백화점에서 신발을 세일하길래 그걸 고르느라 늦었다며, 해맑은 얼굴로 쇼핑백을 달랑달랑 흔들면서 나타났다.


알고 보니 A는 처음 가는 식당이라 길을 헤맬까 봐 일행들을 영하 10도가 되는 길거리에서 잡아 둔 것이었다.  


신발을 고르고 신어보면서 거의 다 왔다고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평소 몸이 약한 척 하던 A는 자신은 추운 데서 잠깐이라도 헤매기 싫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추위에 떨던지 말던지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리게 한 것이다. 


그런 A 덕분에 아경은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앓았다.  


아경도 그리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까 봐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약한 척, 불쌍한 척은 아경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A의 비슷한 행동은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세 번째에 <쓰리아웃>의 룰에 따라 아경은 A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아경이 <쓰리아웃>을 적용한 지인들 중에는 A처럼 약한 척 <동정연극>을 하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그들은 <동정연극>을 하면서 아경이가 자신들을 더 배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예를 들면 여행을 가서 본인이 피곤해서 나가기 싫으면 아경이가 자신을 챙겨야 한다는 식이었다.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부탁하는 척했지만, 그 속내는 <내가 피곤해서 꼼짝하기 싫은데, 네가 어디 감히 챙기지 않고 나가느냐>로 보였다. 


여행의 즐거움은 포기하고 곁에 남아 자신이 심심하지 않게 놀아주며 돌보라는 것이었다. 


아경은 동행자가 불편할까 봐 아파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정 안되면 숙소에 남아 홀로 쉬는 쪽을 택했다. 


자신 때문에 동행자가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 더 불편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요구가 어이없었다. 


그래서 아경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곧이어 빠른 손절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 외에도 타인의 측은지심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덕에 아경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결국에는 그 사람의 본색을 다른 사람들도 뒤늦게 알게 되지만, 기다리는 과정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누가 불쌍한 애를 괴롭히는 못된 애가 되고 싶겠는가. 


하지만 아경은 <저것은 동정 연극이야>라는 직감이 들면 그것을 믿었다. 


작가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람과 소소한 사건을 관찰했다. 


비록 <밥벌이>에 매진하느라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그 원인제공자에게 이야기 속에서나마 복수를 하고는 했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소심한 아경이지만, 나름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다. 


이야기를 잘 만들려면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더 면밀하게 관찰해야만 했다.


특히 입으로만 유독 착한 척, 불쌍한 척, 정의로운 척하는 사람들은 꼭꼭 숨겨두었던 자신의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아경을 굉장히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척했다. 


<천하에 나를 이리도 생각하는 이가 있을까>싶었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을 찬찬히 살펴보면 오직 말로만 아경을 위해주었다.  


말! 말! 말!


일명 입으로만 하는 <립서비스>였다. 


아경도 똑같이 그들에게 말로만 친한 척, 걱정해주는 척, 위해주는 척 장단을 맞춰주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경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경의 맞장구를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이제 감언이설로 아경을 충분히 구워삶았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의 진짜 목적을 드러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없이 했다. 


그때 아경의 내면에서 경고가 울렸다. 


<주의! 주의! 주의!>


그다음은 행동지침이 이어졌다.


<손절하라! 손절하라! 손절하라!>


그렇게 <쓰리아웃>으로 아경의 인생에서 내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아경도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현명한 친구 M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냉정하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그때 M이 대답했다.


“지금까지 네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나마 삶이 무탈하고 평온할 수 있었던 거야”


그 순간, 아경은 정말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경의 삶의 목적이 그랬다.


대단한 성공도, 짜릿한 쾌락도 필요 없었다. 


그저 무탈하고 평온하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늙어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조직심리학 박사 애덤 그랜트 교수는 사람들을 세 분류로 나누었다.


기버(giver) 남에게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려는 사람

테이커(taker)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더 많이 가져가려는 사람

매처(matcher) 남에게 받은 대로 갚아주려는 사람


이 분류에 따르면 아경은 매처(matcher)에 가까웠다.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받으면 꼭, 반드시 되갚아줘야만 했다.


마치 거울처럼 말이다. 


<쓰리아웃>의 원칙을 따라 인간관계를 관리해 온 덕분인지 아경의 곁에는 이제는 기버(giver)가 더 많아졌다. 


아울러 아경도 그들의 친절, 호의, 배려에 감사하고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아경은 <쓰리아웃>과 관련해서 후회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단호하게 관계를 끝냈기 때문에 그들의 행태를 묵묵히 참다가 마침내 그들을 미워하는 지경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고 믿었다. 


쓸데없는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없었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아경은 <쓰리아웃>의 룰을 쭈욱 지켜나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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