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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그린 Jul 09. 2022

네가 산다고? 비싼 것 먹어야겠네

돈과 신용(1)

죽을 때 싸가져 갈 것은 아니지만, 비혼의 삶도 돈이 중요하다.


아경은 오십이 넘도록 비혼으로 살아오면서 중요한 것을 꼽아 보면  


첫째는 '건강'이었다.  

두 번째는 '인간관계다. 아니, '돈'인가? 아경은 잠깐 헷갈렸다.  

세 번째로 '돈'이다. (조금은  인간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누르지 못했다. 그래서 돈이 밀렸다)


아경은 이제부터 '돈'과 관계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거의 다 험담이었다.


남의 뒷담화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있겠는가.


어렸을 때 아경의 꿈은 작가였다.


열두살 때 첫 소설을 썼다. 하지만 열 다섯에 알았다. ‘작가되면 배고프겠구나.’


그것은 아경에게 있어 절대 아니될 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경에게 먹는 것은 가장 중요했다.


그녀는 먹기 위해 사는 존재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밥벌이’가 되는 직업을 얻기 위해서였다.  


수학을 정말 싫어했다. 지금도 숫자에 엄청 약했다.


그렇다고 다른 과목을 잘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수학이 최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아경이 이과를 가서 얼마나 굴렀는지 정말 힘들었다.


암튼 어떻게든 버텨서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에 간신히 들어갔다.


아경이 생각하기에는 취직이 잘되는 전공이었다.


계획대로 운좋게 대한민국의 경제 호황기에 괜찮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 이후 1997년에 IMF가 터졌으나, 무능한 정부에 의한 국내 문제였을 뿐 세계경제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IMF의 정리해고 바람에도 아직 뽀송뽀송한 신입직원인 아경은 다행히 무사했다.


일은 많이 시켜도 월급은 조금만 주는 아주 효율적인 인력인 탓이었다.


그 이후에 20여 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다.  


싱글로 살게 되면 다들 결혼한 동료들에 비해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아이가 있으면 육아에 드는 돈도 만만찮으니 그런 듯 싶었다.


하지만 싱글은 늙어 의지할 자식이 없으니 노후에 돈이라도 좀 더 있어야 한다.  


물론 기혼자들은 알고 싶지도 않겠지만.


아경의 회사 선배 중에 그것을 대놓고 얘기하는 이가 있었다.


때때로 점심을 함께 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아경이 밥을 살 차례가 오면 한마디를 꼭 붙였다.  


“오늘은 아경이가 산다고! 그럼 특별히 비싼 거 먹어야겠네.”  


농담이려니 해서 그냥 웃으며 “그러세요.”라고 넘겼지만, 매번 반복되니 점점 듣기 거북해졌다.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경은 선배에게 한마디하고 싶었다. 결국 못했지만 그때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다.


"선배님, 좋은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하세요. 선배님은 늙어 의지할 자식이라도 있지만, 저는 홀로 지낼 노후를 준비해야 한답니다. 제 돈도 당신의 돈만큼 소중하답니다."


사실 비싼 것을 산 것은 아니었다. 1시간 점심시간 뻔하고, 먹는 것도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고 아경이가 딱히 인색한 편도 아니었고, 신입직원이나 후배들에게는 밥도 사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사고는 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선배는 그것 뿐 만이라 아니라 때때로 그랬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아경은 한때 취미생활로 라틴댄스 ‘살사’를 배운 적이 있는데, 선배는 사람들 앞에서 “얘, 춤바람 났잖아.”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워낙 보수적인 조직이라 친한 이들에게만 살짝 얘기한 건데, 사람 많은 구내식당에서 떠들어대서 아경은 너무 당황해서 아무말도 못했다.


선배는 그런 말이 아경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사람이지만, 어쩌면 일부러 그랬는지도 몰랐다.


아경은 선배가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힘든 와중에 자신의 싱글라이프가 부럽기도 하고 얄미웠나 보다고 생각했다.  


금요일마다 홍대 살사 바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고는 했는데 눈치 없게 너무 자랑한 듯싶기도 했다.


아경은 선배가 속한 점심 모임에서 점점 빠지게 되었다.


그나마 선배에 대한 좋은 감정이 남았을 때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아경은 자신의 돈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을 가까이 둘 필요는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남의 돈도 자신의 돈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말도 그리할 줄 아는 사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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