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남자, 흑인과의 데이트
“흑형과 데이트해봤어요?”
“흑형을 경험하고 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던데요?”
안타깝게도 난 처음 만났던 흑인 남사친과의 경험에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I want to make a friend! Not a boyfriend!”
“Absolutely!”
베를린에서 잠시 머물렀던 대학 기숙사에서 유난히 자주 눈에 띄던 흑인 남자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독일의 기숙사는 학교 별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기숙사 별로 여러 대학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주로 베를린 공대생과 훔볼트 대학생들이 섞여있던 기숙사였다. 훔볼트 대학은 베를린에서도 가장 어렵기로 소문난 한국의 연고대 같은 대학이었다.
‘쟤는 영어도 잘하고 독일어도 잘하니 친구가 되면 언어 실력이 자동으로 늘겠군’
모로코에서 왔다는 흑인 남자아이는 -이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국가에서 어머니가 통신사업자를 가진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나의 목적은 언어. 그의 목적은 아마도 캐주얼 플링(Casual Fling), 또는 캐주얼 관계(Casual Relationship)를 원했던 것 같다.
이십 대의 나는 참으로 순진했다. 한국 대학에서처럼 남자들과 맥주 마시며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Do you want to drink beer with me?”
맥주 한잔 하자고 하며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함께 마셨는데, 독일에서는 여자가 먼저 맥주를 마시자고 하면 Sex 하자는 의미라니. 문화 충격도 모자라 그저 맥주 한잔이 불러일으킬 파장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순진한 때였다.
그는 예상대로, 기숙사 다른 층의 자기 방으로 가자고 했고, 내가 건축 전공이라고 하니까 자기가 그리고 있는 설계 도면을 보여주며 나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방은 상당히 어둡고 -유럽은 백열등 하나만 켜고 있거나, 어둡게 하는 편이다- 그는 흑인에 가슴에 털이 수북한 남자였다.
도면을 보여주며 계속 가깝게 다가오던 그와 당황했던 나는 최대한 말문을 돌리며 ‘친구’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당히 다른 의미임을 강조했다.
다행히 교육을 잘 받았던 그는 신사답게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그 후로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때 영어나 독일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독일에서의 기억과 처음 경험한 흑인 남자아이 덕분에 흑인에 대한 거부감은 반감되고, 이후 영국과 호주에서 만난 흑인 남자들을 보더라도 조금은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게 됐다.
호주에서 만났던 퍼스널 트레이너는 몸집이 굉장히 좋은 흑인 선생님이었는데, 호주 여자와 결혼해 퍼스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덩치에 비해 수줍은 많고 다정다감한 트레이너를 보며 피부색이 주는 편견을 버려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영국에서 흑인 남자와 데이트를 한 번 한 적이 있기는 하다. 딱 한 번이었고,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평생 나를 보며,
“You look hot”
이라고 말해 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데이트에 응했나 보다. 귀엽다는 이야기만 평생 듣다 Sexy하다는 이야길 처음으로 들어봤으니까.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들을 잠시 추억처럼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