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스타쉔 Dec 30. 2018

인문학책(5)-중국을 탐하다 #2 <야망의 시대>

진실의 또 다른 이름, ‘치부’


치부를 드러낸다는 의미는 가식이 없이 모든 것을 다 드러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산당의 일명 ‘홍보’라는 미명 아래 통제되고 있는 언론사 중에서도 <차이징> 편집실에서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후수리’ 편집장. 서구화 물결 속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개인적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킨 푸단대 졸업생 ’탕제’. 국민당 정권의 타이완에서 극적으로 도망쳐 중국으로 밀입국해 푸대접을 받았던 ‘린이푸’는 인민 공화국에서 가장 열렬한 경제 대변인이 될 정도로 출세한 정치인이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문 중국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올려 일반인에서 일약 스타가 된 ‘한한’.  

린이푸 Justin Yifu Lin.

한 사람을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으나, 20억 명이라는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중국은 공산주의의 지배 아래 일부 자본주의의 물결을 피할 수 없었음을 역사와 실제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과거 침략으로 타 국가의 정신을 흩트려 놓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언어를 통제했던 것이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 거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민 의식, 정서, 교육 등을 지배할 수 있다.

중국은 그렇게 믿는지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본주의 물결 속 20억 명에게서 나오는 자유의지의 발언을 통제하고자 무수한 노력을 해왔다. ‘홍보’라는 명칭으로 대신 한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통제, 심지어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의 근원을 삭제하거나 실제 인물을 감금하고 협박하는 등 자유의지를 꺾어 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 크리스마스를 맞아 책으로 연출된 탑을 쌓았다. 언론, 지식을 통제하는 중국 정부를 피해 온오프라인 상에서 빠르게 읽고 습득하는 새로운 물결을 본다.


일개 개인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통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더 이상 저항하기가 힘들어진다. 사람의 나약한 부분에 대해 너무 잘 파악하고 이를 조장하는 정부가 비열하게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억 명의 목소리를 한 군데로 모은다거나, 어떤 개혁을 추진할 때 집단의 의견으로 만들려면 공산주의의 실행 방식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진실은 때로는 보고 싶지 않은 치부 같은 존재여서 때로는 보고 싶지 않기도 때로는 봐야만 하기도 한다.




집단 지성이 아닌 집단 문화가 빚어낸 무관심의 물결


2007년 9월. 영국 남쪽에서 서호주 퍼스(Perth)로 어학연수지를 옮겼다. 호주는 큰 땅덩이에 맞게 스프롤링 시티(Sprawling city) - 중심가를 형성하고 주위로 방사형 형태로 형성된 도시 - 를 구성하고 있었다. 한갓진 토요일 오후.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시내에 있던 공중전화 4군데 중 한 군데에서 국제 선불카드를 사용해 한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약 2시간가량 수다를 떨었다. 2시간 내내 쳐다보던 체구가 제법 작은 백인 여자가 - 유럽인인 듯 보였다 - 나의 가방을 순식간에 낚아채고는 달아났다. 와이너리 투어를 간답시고 7센티미터 힐을 신고 검은색 원피스까지 한껏 멋을 낸 나로서는 방도가 없었다. 있는 힘껏 쫓아 그 여자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난, 그 사건 후로 항상 숏 커트 또는 단발만 유지했다. 힘이 부족했지만 가방을 가까스로 빼앗았고, 그 중간에 한국어로 “ㅆ…ㅈ..” 등이 들어가는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주위에 약 15명에서 20명가량 둘러싼 사람 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가방을 되찾고 장렬한 상처를 다리에 남기며 잃어버린 것은 없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마침 도와준 빵가게를 닫던 필리핀 매니저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뭔가 잃어버렸나요?” “아니오.” “이런 일은 퍼스에서 10여 년간 단 한건도 일어난 적이 없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잃어버린 것이 없으니 저희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사실 이런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중국에서 일어났던 2011년 10월 13일 어린 ‘샤오웨웨’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사고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07년의 그 일 이후로 길가다가 어떤 이상한 사건을 목격하거나 하면 곧잘 신고하거나 길에서 지갑을 주우면 갖다 주곤 했는데 오히려 내가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 가령 “누가 신고해 달라고 했어요?”라거나 “여기 있던 돈은 어디 있나요?”라고 묻는 경찰관. 그런 말을 들으면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마!’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화대혁명 포스터


중국에서 일어났던 무정한 사회의 일련의 사건 <제노비스 신드롬>은 비단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중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 대혁명’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대하고 있다.


“개혁과 개방 전이었다면 정신없이 달려가서 내 목숨을 걸고라도 그 아이를 구했을 겁니다. 하지만 개혁 개방 이후라면? 아마도 망설이겠죠. 이전처럼 그렇게 용감하게 행동하지 않을 거예요. 요점은 이겁니다.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거죠.”

- ‘샤오웨웨’ 사건이 일어나던 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 <클레버 하드웨어>를 운영하던 천둥양의 말 p423-424


샤오웨웨의 죽음 이후 그녀를 도왔던 할머니나 아픔을 겪은 가족들은 세간의 관심 -포상금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더 맞겠다-을 너무 많이 받아 직장을 옮기거나 지역을 이주해야 했다.

샤오웨웨의 죽음 후 선전 시는 중국 최초로 착한 사마리아인을 법적 책임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안의 초안을 작성했다.


한국전쟁. 위기의 서부전선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던 우리나라의 경우도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가파른 경제성장과 빈부격차로 감정적 불균형은 더 심화되어 갔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한 자녀만 위하는 가족 세태는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 최고로 여기는 이기주의를 낳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이면에서는 좋은 결과를 나은 부분도 있지만 성장은 경제, 사회와 도덕이 함께 발맞추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정부는 ‘조화로운 사회’를 주창하면서도 ‘왕권 주의’를 실현시키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중국 정부는 마오쩌둥에 대한 숭배로 마오쩌둥의 배지는 너무 많이 제작되어 폐해를 일으킨다거나. 1968년 파키스탄 대표가 마오쩌둥에게 선물한 망고 한 바구니의 상징성은 진귀한 과일로 영구 보존되기도 했다. 공자의 정신을 기리는 것이 열풍이 되어 한 때 사라졌던 공자의 사원 대신 세계 곳곳에 4백 여개의 <공자 학원>을 열고 표준 중국어와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저자가 채택한 ‘정신적 공허’라는 표현이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는 과거 봉건주의 시대에만 하더라도 신분계급을 넘나들거나 비교를 할 수 없고 숙명적 삶을 살아야 하니 오히려 행복했다고 한다. ‘불안’이라는 것은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의 물결, 그중에서도 정신적 성장을 함께 하지 못한 불균형에 있다고 본다.



<야망의 시대>에서 다루는 사건은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한국전쟁과 그 후 급진적 변화를 격은 우리 같은 사회라면 비록 사상과 체계는 다른 이웃 국가지만 사람들의 행태는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문득 저자가 고른 공자의 말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를 되새겨 본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편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 초상지풍필언

君子之德風,小人之德草,草上之風必偃

매거진의 이전글 인문학책(4)-256페이지 <중국 읽어주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