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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스타쉔 Jan 09. 2019

인문학책(6) 검은 속마음으로 세계를 평정한 <후흑학>

청나라 말기 기인 이종오의 사서를 통한 성공을 거머쥐는 전략 <후흑학>

중국 특파원을 지내며 사실에 기초한 사건들을 중국을 이해하는 시각으로 정리해 놓은 에번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를 시작으로 한 달여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두 번째 책을 선정하면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심천 남 센터장님의 추천서인 <후흑학>을 함께 읽어볼 마음에 추천했는데 독서모임의 동의 하에 선정되었다.

<야망의 시대>가 개개인의 사건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중국 정부의 관점을 추론한 것이라고 한다면, <후흑학>은 중국을 이끈 인물들이 성공한 이유에 대해 청조 말의 기인 이종오의 <후흑학>의 이론에 대한 해설서로 보면 된다.


>> <야망의 시대>는 6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어서 두 번에 나누어 리뷰를 작성했다.

중국을 탐하다 #1 <야망의 시대> https://brunch.co.kr/@sunnygoes/35

중국을 탐하다 #2 <야망의 시대> https://brunch.co.kr/@sunnygoes/41


중국 혁명의 시기에 나온 장개석이 실패한 이유와 모택동이 성공한 이유에 대해 '후흑(두꺼운 면상인 '면후'와 검은 속마음의 '심흑'의 줄임말로, 성공을 위한 뻔뻔하고 음흉한 처세술)'의 관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한 방의 진검승부를 위한 인내, 와신상담(臥薪嘗膽)

후흑의 대가라 볼 수 있는 이는 바로 월왕 윤상(允常, B.C.510~497 재위)의 아들 구천이 B.C.496년에 취리(欈李)에서 오왕 합려를 일격에 무너뜨렸으나 방심하여 3년 만에 합려의 아들 오왕 부차에게 패배하여 20년 간 날마다 쓸개를 핥으며 재기를 꿈꿨다. B.C.473년에 오나라를 정복하여 원수를 갚고 춘추 후기 국제 질서의 주요 축이었던 오, 월 양국의 항쟁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이때 그가 쓴 방법은 부차의 약점을 파악해 세기의 미녀 서시를 바친 것이다.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 중국 소흥의 월왕전에 걸려있다.

저자 신동준은 우리나라에서 후흑의 달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은 바로 황희를 예로 들었다. 두 시비가 사소한 일로 타투며 황희에게 하소연하자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고 하니 부인이 누가 옳은 것인지 묻자 "부인 말도 옳다"고 답했다.

"고금을 막론하고 벼슬살이를 잘한 인물과 명재상으로 소문난 사람들이 대개 이런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위로는 군왕의 목에 나 있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아래로는 부하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늘 웃으며 무사안일을 능사로 삼는다. 후흑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 p15-16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는 이종오의 <후흑학>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종오의 역사 해설서인  <후흑학>을 저술한 궁극적인 목적은 '후흑 구국'이다. 마키아벨리가 조국인 피렌체 공화국을 교황과 외국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독립시킨 후 이탈리아 반도 통일의 주역으로 만들기 위해 <군주론>을 저술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종오의 <후흑학>은 기존의 사서들을 보는 다른 차원의 방법을 제시했고, 승자의 관점만이 아닌 패자의 관점을 함께 분석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 하나 <삼국지>가 아닌 <삼국지연의>를 지나치게 의지하여 - 삼국지연의는 유비, 제갈량 등의 인물에 대한 견해를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의 3단계

1단계 : 후여성장, 흑여매탄 - 두꺼운 낯가죽의 소유자

2단계 : 후이경, 흑이량 - 두꺼운 낯가죽과 검은 속마음을 지녔으나 맑은 영혼의 소유자

3단계 : 후이무형, 흑이무색 - 두꺼운 낯가죽과 형체가 없고 검은 속마음을 가졌지만 무색의 소유자


후흑의 대가, 장량과 유방, 사마의

역사서 <사기>에는 "장량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오직 유방만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따르자 '패공은 거의 하늘이 내린 인물이다'라고 칭송했다"라고 전한다. 유방의 스승 한나라 개국 3 걸 중의 한 사람인 장량으로 그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다는 재주를 타고 난 사람이었다. 초한지제 당시 장량은 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에 반해 손권은 구천처럼 굴신인욕을 했지만 구천의 후흑학으로 나가지는 못했고 오랜 세월 보위에 앉아 있으면서 유아독존의 모습을 보여 외교 면의 실책에서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제갈량은 왕을 보좌할 만한 재목이기는 했으나 사마의라는 후흑 대가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고 이종오는 말한다. 사마의가 구사한 군략의 요체는 상대방을 기만하는 궤사에 있는데 이 핵심은 허허실실이다. 이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자신의 실을 꾀하는 계책을 말한다.


탁월한 전략가 장량




총통을 물려야 했던 '장개석'과 장개석을 제압한 '모택동'

<주역>를 좋아했던 장개석,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정독한 모택동은 서로 정치노선의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사서삼경 중 가장 난해하다는 <주역>을 끼고 산 장개석은 치국평천하의 모든 것을 꿰었다는 자부심에 빠졌다. 경서 - 옛 성현들이 유교의 사상과 교리를 써 놓은 책 <역경><서경><시경> 외 - 를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사서(역사서)에 통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경서는 스스로를 수양하고 심지를 굳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아는 데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이종오가 24사를 통독하면서 후흑의 비결을 찾아냈다고 역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택동은 <자치통감>을 죽는 산간까지 옆에 끼고 살면서 치국평천하의 기본서로 활용했고, 이는 두 사람의 운명을 달리하게 했다. <자치통감>을 열독한 모택동은 유연한 임기응변을 구사했고, 제2차 국공합작과 국공 내전 기간 동안 장개석이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유형의 제의를 한 게 그 증거다. - p163, 166


장개석(좌)과 모택동(우) 정치노선은 달랐으나 모택동은 장개석의 학문을 존중했다.

<후흑학> '1부 후흑학, 난세의 처세술'과 '2부 역사의 승자, 후흑의 대가들'을 읽고 나니 책이라고 다 양서가 아니며, 이 중 어떤 책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지가 사람을 참모로 만들기도 난세의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또한, 후흑을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을 보는 눈과 이를 중용 또는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후흑을 기르는 혜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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