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스타쉔 Jul 15. 2019

나이와 국경을 초월했던 연애, ex-boyfriend

13년 연상연하 커플, 엑스 보이프렌드 이야기

*외국인 ex-boyfriend와의 이야기를 우연히 노트에서 찾게 되어 2년 전의 일이니 이제는 올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났고 연애도 잘하고 있어서 그런지 좋은 추억거리로 남고 있습니다.


베프에서 남친으로 발전했던 전 남친이 한 이야기다.  처음 좋아하게 되었던 이는 다른 사람이었고 우련찮게 나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한 친구로 발전하다 연애까지 하게 된 필리핀 전 남친. 13살이라는 나이는 국경을 넘으니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서로 더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전 남친 라이언 편
Do you know how the true story begins?
너 진짜 이야기가 뭔지 궁금하지 않아?
What's the real story?
진짜 이야기가 뭔데?

필리핀 마닐라 컨벤션센터에 박람회 구경을 하려고 갔다가 그 앞에 카페베네-전시장에 유일하게 있던 커피숍이 카페베네였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어떤 여자애 하나가 혼자 밥 먹는 게 좀 외로워 보이더라고. 유니폼을 보니 전시장에 참가한 직원인 듯 보여서 따라나가 부스를 확인하고 다시 부스에 가서 말을 걸면서 제품을 하나 구매하면서 명함을 받았지. 부스에 네 번 정도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남자 직원하고 여자애만 있어서 F가 상사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남자인 줄만 알았어. 물론 그때는 F에게 관심이 있어서 찾아갔던 게 맞아.
그래서?
그래서 F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만나러 갔을 때 네가 나와 있어서 정말 놀랐지. 난 남자 상사가 나올 줄 알고 있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거든.

- 전 여친 써니 편

해외출장 3년째, 어느 특별할 것 없는 화요일 마닐라 출장길에 올랐다. 대개 전시회는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열리는 것이 다반사고 마지막 날은 대개 일요일이다. 마닐라 첫 전시가 끝나던 날 동행했던 신입 직원의 파릇함 덕분에 전시기간 내내 무슨 일이 생길까 조바심이 났던 나는 전시장 철수를 하고 나서야 마음을 한시름 놓게 되었다.
전시기간 중 우리 부스를 방문했던 -나와는 어째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필리핀 남자 손님 하나가 선물을 주겠다고 박람회 철수 후 만나게 되었다.

만나기 전까지 신입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상한 놈?' 한 명이 쫓아다닌다고 했기에 '만나봤자 별 볼 일 없으니 선물만 받고 가자'라고 말했던 참이었다. "계속 카페에서 기다린다고 하고 좀 이상하게 행동해서 불편해요"라고 말했던 것에 비하면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데다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뭐 잠시 선물만 받을 거면 별일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만났다.

'어! 이건 내가 이야기 듣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데'
인상이 퍽 순진 난만해 보이는 스물다섯의 건장한 청년. 뭐 내 입장에서 보면 어리고 순진해 보이는 그런 나이였다. 선물까지 받았는데 5분도 안 되어 그냥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그렇게 우리는 첫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 당시 나는 집안문제와 여러 가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했고 마닐라에 도착해서는 너무 갈증이 많이 나 하루 4리터씩 물을 마셔댔던 상태로 한마디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후 두 번째 출장길에 시간이 되면 다시 보고마 했다. 두 번째 전시는 급하게 잡힌 탓에 변수가 많았다. 여자 둘이 모든 짐을 무빙 카트도 없이 나르기엔 역부족이었고 이름이 비슷해 착각한 덕분에 전시장 위치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건을 사겠다고 큰소리쳤던 바이어들이 나타나지 않아 대략 물건이 많이 남게 된 상황이 이어지면서 첫 전시에서 만났던 라이언과 전시 관계자 마이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리핀 국민성 중 하나는 호언장담 후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잘 웃거나 호의적이지만 한마디로 뻥카가 심한 편이라는 것을 후에 라이언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됐다.

F에게만 선물을 줬던 라이언은 미안했던지, 밥을 얻어먹은 답례인지 스카프를 선물로 건넸다. 왜 굳이 나까지 챙기나 싶었지만 스카프를 정말 좋아하는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참고로 더위를 잘 타지 않는 나는 40도에 육박하는 마닐라 날씨 속에서도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두 번째 출장 마지막 날엔 계속 리필되는 모히또 나이트 바가 있다고 해 한 사람당 모히또를 아마도 열 잔 정도를 마셨던 것 같다.

돌아가는 날을 하루 앞두고 하루 시간이 되어 마이크 -전시회 주최자였던 마이크는 우리에게 드라이브를 해주겠다며 선뜻 월요일 새벽같이 나와주었다- 가 아침 일찍 차를 끌고 나왔고 라이언도 차를 가지고 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됐다. 사실 마이크는 유부남이었고 내 타입도 아니어서 관심도 없었지만 일상탈출 하루는 퍽 괜찮았다. 따가이따이. 우리나라에선 서울에서 서해안 정도 가는 데이트 코스라고 해야 하나. 활화산 섬이 자리해 유명한 이곳은 전경이 상당히 끝내줬다.
라이언이 전망 좋은 스타벅스가 있다며 길을 안내해 커피 한잔씩 마시고 점심도 먹고 마닐라로 돌아와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는지 예약해 놨던 택시는 오지 않았고 출국시간은 빠듯해오고 있어서 결국 라이언이 공항까지 바래다줬다. 그렇게 마닐라행 두 번째 출장길이 끝났다.

한국에 돌아온 후 라이언은 신입직원이 답이 없자 F에 대한 안부를 나에게 묻다가 한국에 대한 주제로 이어지다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어 말동무가 되었다. 영어로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실력도 늘게 되었고 한국의 문화와 역사 등에 대해 설명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간 외교관의 역할까지 하게 됐다.

아마 2016년 5월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이언은 친구가 없나?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주로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홍콩과 태국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필리핀 내에서도 여행을 별로 해보지 않았던 라이언에게 여행과 출장이 잦은 나의 일상은 재미난 이야깃거리로 들렸던 모양이다.
우리는 거의 6개월간 매일 보이스톡으로 4~5시간가량 통화를 했고 그때만 해도 라이언은 나를 존경? 하는 나이 많은 친구쯤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라이언은 나에게서 나이 차이는커녕 내 나이를 염두에 둔 적 조차 없다고 했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2년 전 당시) 물어보니 친구였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You know I am the best!"라고 자화자찬하던 것이었는데 라이언은 그때를 기억할 때마다 한바탕 호탕한 웃음을 날렸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로 타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질문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오늘은 정말 일찍 자야 해를 외치던 날이면 오히려 잠을 설치고 출근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라이언의 상사이자 친구인 이안은 언젠가 라이언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친구 중 한 명이 약 5년 정도 친구로 지내던  여자 절친이 있었는데, 일상적으로 퇴근하던 어느 날 그녀를 향하는 감정이 다른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전화를 걸어 "Why don't we move to next level?" 이제 다음 단계로 감정을 얾 길 때가 되었다며 사귀자고 했고 그 커플은 절친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나이와 세대 국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고 어쩌면 나는 약간의 선생님 같은 기분으로 신나게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을 했다. 스물다섯의 또래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술 마시고 여자 또는 직장 이야기로 제한되어 있었던 때문인지 라이언은 나의 여행 경험담과 언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 등을 무척 흥미롭게 들어줬다.

6개월간 통화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네가 한국에 오면..."이었다. 먹거리 사진, 국내 여행 사진 등을 보며 관심을 보이던 라이언은 정말 한국에 오고 싶어 했고 결국 비자 신청을 하고 계획을 세워 한국에 오기로 했다. 나는 휴가가 많이 없었기에 긴 추석 연휴 때 국내여행을 휴가 삼아 함께 지내기로 했다.

통화를 하던 어느 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라이언은 본인에게 만약 여자 친구가 생기더라고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여자 친구 생기면 과연 그걸 용납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고 그러면 이 대화를 정말 그리워하게 되겠노라고 라이언은 말했다. 당시 나는 그럼 우리 둘이 만나면 되잖아 라고 되뇌고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나 나이차 때문에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라이언의 첫 번째 한국 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한국에서 경험치를 높여주고 싶었던 마음에 한국에서 알고 지내는 다양한 친구들과의 약속을 만들어 계획을 짰다.
1) 여의도와 인사동 그리고 한복체험
2) 한국 친구들과 함께 속초의 바다 전망 카페에 들렀다가 횟집에서 회도 먹고. 그리고 서울에서 맥주 뒤풀이로 첫 날을 치렀다.-나중에 알고 보니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어 귀국할 무렵에는 손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기까지 했는데 차마 첫 대접에 못 먹는다고 할 수 없었다고 했다.-
3) 제주도 섭지코지 2박 3일
4) 삼청동 투어와 북촌 한옥 마을 그리고 창덕궁
일주일간의 여행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우리의 감정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고 마지막 날 그러니까 라이언의 귀국날 우리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되자 다짐했다.


거의 사귀는 단계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연애 탓에 3-4개월에 한 번씩 만났고, 글을 올리는 지금 시점에서는 ex-boyfriend가 된 2년 전의 일이다.

13년 차이 연상연하 커플, 그 이후
국경을 넘어 문화, 시간, 세대까지 초월하는 문제를 두고 결국 많이 싸우게 되었다.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내가 20대 후반 그러니까 사회 초년생의 열정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이었고 그 부분이 내게는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국경을 초월해 남녀관계의 주도권은 남자가 쥐거나 동등하거나가 가장 좋은데 나의 경우 내가 쥐고 있던 것이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오랜 공백을 깨고 한 국경과 나이를 초월했던 연애로 배운 것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그리고 나의 문화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자는 것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임 식 오브 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