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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Aug 22. 2019

프롤로그 : 너와 나의 다름에 대하여

우리 집 남자사람 관찰기

작은 극장에서 혼자 영화보길 좋아한다. 카페에 앉아 따뜻한 카푸치노 마시며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혼자 걷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하고... 이제는 다 옛날얘기가 되어버린 내 취미생활과 과거 그 시간들이 가끔 아련히 떠올라 눈물이 나려 한다. 결혼 6년차인 나는, 아직 걸음이 서툰 만 1세 아기, 뇌 구조가 궁금한 남편과 교토에 살고 있다. 햇수로 4년째인 교토 생활은 이제 곧 마무리가 될 것 같고, 귀국 후 어떤 정해진 삶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런 건 없다.

나와는 전혀 다른 남자에게 반한 업보로 나는 팔자에도 없는 모험을 벌써 몇 차례 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반 년 동안 지구 이곳저곳을 구경했고, 가진 재산을 탈탈 털어 유학 생활을 하다가 이제 돈이 떨어져서 돌아간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이야기는 차차 풀어가려고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저 평범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고요하게 여생을 살고 싶었던 사람이다. 다소 냉소적인 구석은 있지만, 남의 말에(특히 남편 말에) 종종 휘둘리며 한 번 시작한 일은 소란스럽지 않게 끝까지 버텨보려고 한다. 이런 내 생각에 언제나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남편 앞에서 나는 가끔 할 말을 잃는다.

반대로 남편은 열정적이라면 열정적이고, 과감하다고 하면 과감하겠지만, 나와 달리 한 가지를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일에는 소질이 없어 보인다. 물론 본인은 반론하고 싶을지도. 한 예로 남편은 지금까지 여러 번 직업이 바뀌었다. 인도네시아, 중국, 미국, 한국, 일본 각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지만, 분야와 직업은 일정하지 않았다. 세계화라는 말에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사는 내 입장에서는 한 가지 깨달음만 있을 뿐이다. 우리 집은 '안정'과 관계 없이 살겠구나.




울적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혼자였던 나를 떠올린다. 뭔가를 결정하고 어딘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나만의 시간이 사라진 요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혼할 게 아니라면 상대를 보며 낙담하는 바보짓은 그만 둬야겠다. 차라리 저 사람을 탐구해보자. 자세히 보다 보면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 본인의 허락 하에 나는 '남편의 기록'을 연재하기로 했다. 지나간 어느 날을 소환해 우리의 다름을 설명할 날도 있을 것이고, 현재의 시점에서 괴짜남편을 중계할 날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앞날이 어찌 될지 글을 읽는 분들도 함께 상상해보시길.

16부작 드라마처럼 글은 16회로 진행할 예정이다. 과연 16번의 에피소드로 이야기 보따리를 죄다 풀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 글의 목적은 가장 먼저 내 마음 치료에 있다. 속에 담아둔 말이 내 마음과 몸을 잠식해 어딘가에 이상을 가져오기 전에 나 자신을 지켜야겠기에 조금씩 심호흡을 하려 한다.


남편의 기록 1 - 상견례를 마치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남편의 기록 2 - 얼마 없는 재산, 이렇게 흥청망청 써도 되는 거야?

남편의 기록 3 - 우리 집 남자의 무기는 눈물

남편의 기록 4 - 내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포기를 모르는군

남편의 기록 5 - 운명공동체라는 아픈 말

남편의 기록 6 -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힘든 사람

남편의 기록 7 - 여행 스타일도 다르면서, 꼭 같이 다녀야 한다네

남편의 기록 8 - 손재주는 좋은데 꾸준함이 부족해

남편의 기록 9 -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어

남편의 기록 10 - 머리는 미용실 가서 자르면 안 되겠니?

남편의 기록 11 - 주식회사 남편, 직원은 나 하나

남편의 기록 12 - 드라마 속 로맨틱한 남자의 현실판

남편의 기록 13 - 걸핏하면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남편의 기록 14 - 다른 것과 틀린 것

남편의 기록 15 - 주양육자와 부양육자의 관계

남편의 기록 16 - 최선을 다하고 있다 vs 죽을 힘으로 버티는 중


앞으로 이야기해날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이 사람과 보낸 6년간의 시간이 조금씩 등장할 테고, 내 눈으로 보고 생각한 남편의 모습을 묘사하다 보면 객관성은 떨어질지도 모른다. 연재는 허락했지만, 본인은 절대 내 글을 보지 않겠다는 남편의 말을 믿고 하나씩, 하나씩 고자질 기록을 남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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