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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Aug 28. 2017

7년차의 여름휴가

August 2017


건물 외벽의 색깔은 내가 좋아하는 채도가 낮은 색들로 가득. 날카롭지 않은 시원쌀쌀한 겨울-봄바람은 설레기에 딱 좋다. 올해 초부터 점찍어 놓고 남몰래 많이 설레했던 여름휴가로의 겨울도시. 부지런히 걸으면서도 손과 눈은 게으르게 움직이고 싶은 도시여행자와 딱 맞는 겨울베이스의 열흘은 오히려 어느 한 구석 시리고 차갑지 않은 따뜻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오래 머물 숙소에는 꽃 한다발을 사 꽂아 두었고, 비가 온 반나절동안은 느긋하게 책도 읽고, 테이크아웃이 안되는 카페에선 노래도 들으며 생일인 친구에게 카드도 썼다. 발길이 닿는대로 3만보 이상씩 걷는 날도 있었고, 카메라도 감당해내지 못하는 아름다운 대자연을 더 많이 담기 위해 괜히 눈을 더 크게 뜬 날도 있었다. 아 미련하게 커피 4잔 마시고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날도, 풀파워로 수영하는 바람에 기진맥진 한 날도 있었구나. am7-pm4까지 영업하는 카페들 덕분에 아침형을 넘어 새벽형인간으로 진화하기도.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1분도 허투로 쓰지 않아 하루하루가 대단히 길지만, 쏜 화살보다도 빠르게 간 최고의 열흘.


왠지 모든게 다 잘 될 것 같은 위로 아닌 용기를 갖고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7년차의 여름휴가. 지난 6번의 여름휴가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면 이번 휴가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수 있는, 어쩌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역시 행운의 럭키세븐.


덥고 습할 줄 알았던 8월 말의 서울 밤공기도 제법 선선하다 싶었는데, 오늘 아침은 싸늘하게도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정말 가을문턱인가보다. 올해 가을도 좋은 사람과, 이왕이면 날 좋아해주는 사람과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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