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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Aug 05. 2019

가마니처럼

August 2019


4월은 삐딱선을 탔지만 그 주제가 아닌 다른 모든 것에는 괜찮았고, 5월도 나쁘지 않았고, 6월은 앞서 밝혔듯 행복했다. 7월은.. 기억에 없더니 8월이 이제 다섯째인데 그분이 오셨다. 아니다, 이제야 온건가.


재밌는 건 기억에 없다던 7월에 교통카드 사용액이 11만 원을 넘었다는 점이다. 공항버스 한 번을 안 탔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이 하나 나지 않는다. 하긴 어제 점심에 누구랑 뭘 먹었는지도 모르는데 한 달간 어딜 들렀는지 기억날 리가 없다. 6월은 매 주말이 서프라이즈였는데, 7월은 뭘 하고 살았는가. 게을러진 텐션을 탓하기엔 교통카드에 찍힌 액수가 너무.. 큰데. 그래도 이 금액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8월은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거다.


슬럼프다. 즐거워도 딱 1초뿐인 매 순간이 늪지대에 가라앉는 듯한 그 시기. 뭔 말을 해도 혼자만의 아우성 같고, 나의 모든 고민들은 매우 소소해서 아무도 공감 안 해줄  것 같아 만남도 피하고 혼자 저 동굴로 끝없이 슬라이딩하게 한다는 그분이다. 게다가 그분은 기우병도 있어서 '출근하다가 싱크홀이 생기면 어쩌지, 문의에 잘 못 알려주면 어떻게 하지, 보고서 못 쓰면 어쩌지' 같은 앞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까지 솔선수범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 어째 올해는 안 온다 했다.


슬럼프는 늪이다. 뭘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빠져들 뿐. 조용히 있자. 이번 달은 조용히. 깝치지 말고 매사 가만히,

가마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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