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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Mar 10. 2020

우리는 남이에요

March 2020


본격적으로 화가 나서 쓰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세상이 미친 거 같다가 문득 내가 미친 거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유독 이 구역의 미친니은처럼 굴게 되는 주제 중 하나는 ‘결혼’이다. 건드리면 찌를듯하게 예민하게 굴면서도, 홍대를 걷다 보면 무수히 지나치는 타로카드 집에 덜컥 들어서서는 대뜸 묻는 게 또 '저 결혼은 하나요'라니, 나는 이 구역의 미친 니은이 맞다.


처음에는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엄청나게 조바심이 나서 3개월 만에 결혼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면서 그런 경우 많다면서 내 친구의 친구,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들먹이는 호기도 부려봤지만 일단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좋아지지 않고, 간혹 눈길이 가고, 마음이 기대지더라도 어찌나 시치미를 잘 떼는지 스스로가 정말 대단했다. 대다나다 대-다내.


난 이제 좀 심드렁해졌다. 혼자 하는 일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졌고, 뭐 이 정도면 외롭긴 하겠지만 스트레스 덜 받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보면 왠지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맞고.

나도 내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계속 말하니까 진짜 너무나 짜증 난다. 부모님이 얘기 해, 친척이 얘기 해, 친구들이 얘기 해, 친한 사람도 하고, 안 친한 사람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또 자주 만나니까 모든 상황에서 한 마디씩 거드니 아주 이게 인사다 인사. 정말 이제는 허허실실 웃고 있는 것도 성질이 난다. 주위에서 찾아라, 적극적으로 하라, 기다리라면서 어떨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마라, 결혼한다고 하지 마라, 결혼 안 한다고 하지 마라, 집에 있지 마라, 근데 여행가지 마라, 친구들 만나지 마라, 기다리지 마라 아주 오만가지 행동강령을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내가 아닌 남한테 결혼은?이라고 물어도 되는 오지랖 끝판왕의 문화를 애당초 만들지를 말았어야 한다.


비포선셋에서 그랬다. 사랑의 기회는 생각보다 잘 오지 않는다고. 본인들도 어려웠으면서 남한테는 왜 쉽게 말하냐고. 설령 본인한테 쉬웠다한들 남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왜 갑자기 사람 입 틀어막게 하냐고. 내가 안 하고 싶어 이러고 있냐고. 갑자기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말라고. 받아치면 쎄 보이고, 그렇지 못하면 후져 보이는 당황스러움에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배려의 아이콘 코스프레를 들키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행동 한가지 꼭 알려주고 싶다. (왜 때문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남의 결혼에 적극적으로 원앙세트 놓아줄 거 아니라면 궁금증은 목구멍 밑으로 깊이 삼키라고. 우리가 남이냐고? 남 같지 않아 하는 소리라고?

남입니다! 남이에요! 잊지 마세요, 우리는 남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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