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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Nov 24. 2019

거꾸로 걷는다

돌아서기 아쉬워 쓰는 이야기


 날이 차가워지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6월의 그 곳으로 돌아가고야 만다. 특히 이렇게 비까지 오는 날이면 출발 전전날에 갑자기 우비를 사야겠다며 우리가 무슨 민족이냐며, (배달의 민족이라며,) 제 때 배송이 될 것을 염원하며 url을 보내던 생각이 나서 되새김의 급행열차에 합류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에 매몰되어 잊었던 것을 꺼내어 곱씹어 보게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내고야 마는 것. 가을은 그런 걸 그냥 해내는 계절이다.



 반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득함이 느껴지는 그곳으로 돌아갈 때면 나는 다양한 공간에 떨어지는데, 가장 의외의 공간은 ‘차 안’이다.


 한 번은 세상 끝이 낭떠러지 같았던 끝없던 지평선에 부지불식간 침묵이 돌던 차 안에, 또 언젠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백야의 해 질 녘에 찬탄했던, 그래서 속도를 차마 올리지 못했던 그 날의 차 안에 놓인다. 퀸 노래에 왜인지 모르게 무언가가 불끈하고 올라와 감동적이었던 설산을 향해 달리던 그 차 안, 생각지도 못한 뜨거운 볕 때문인지, 대화의 온도 때문인지 손등이 검게 태닝 시켰던 차 안, 한 번 꼬리잡히면 하루종일 돌림노래처럼 놀리며 깔깔가렸던 그 차 안, 끝까지 욕심내었던 맥주 한 박스까지 시원하게 렌터카로 반납했던 바로 그 차 안 말이다.  북적이면서도 딱 1인만큼의 사사로움이 허용되었던 그 공유된 공백이 인상적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분위기에 퀸 노래는 아무리 생각해도 데스티니
갑분보라들판이라 탄성을 질렀으나 카메라는 역시 눈보다 못 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노을. 그 날의 색깔 그 좋았던 날의 바람 다 기억해



 마음처럼 되는 일은 드물고, 차선인지 차악인지를 골라야 하는 일상은 개와 늑대의 시간일 테니 어디까지 공유하고 어디부터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헤매고 있다. 좋기도 싫기도, 하기도 말기도, 맺기도 끊기도. 갈수록 분명하게 생겨야 하는 결절마다의 매듭들이 헐거워진다. 끝이면 안 될 것 같으면서 끝이어도 되는, 불끈 쥐었던 주먹이었는데 스르륵 풀리고야 마는 그런 아이러니가 계속된다. 무엇이든 다 말해도 받아줄 것 같던(실제로도 그러했거니와), 무슨 일이든 무릇 별 것이 아니었던 그 곳의 안정감이 절실해 자꾸만 나는 거꾸로 걷는다.



 눈감고 모른척했던 연중 과제들이 떠오르는 걸 보니 거리에서 캐럴을 들을 일도 머지않았다. 어김없이 지구는 또 한 번의 공전을 마쳤다. 올해 수도 없이 꺼내먹은 아이슬란드, 조금만 더 꺼내서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가야지. 그래도 올해만큼은 (우리가 주차하는 걸 아는지, 매 그 타이밍마다 나오던 그 노래처럼)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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