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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Oct 15. 2019

안녕이란 말 대신 또 봐요란 말로

epilogue. au revoir, iceland.

아이슬란드. 듣는 것만으로도 나를 이처럼 설레게 하는 명사가 또 있을까. 추석 연휴에 꽃보다청춘 포스톤즈의여행 재방송을 보면서도 마음이 쿵 내려 앉고, 어느 여행프로에도 미동한 번 하지 않던 내가 신서유기에서 1박 3일로 아이슬란드 갔다는 번외 얘기에 움찔거려, 지금의 그곳이 보일까 힐끔힐끔 찾아보기까지 하니 이 것은 필히 병이다. 약도 없다던 상사병이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여행에서 돌아와서 한동안 환영처럼 그 곳이 겹쳐졌다. '레이캬비크에서 봤던 만큼 깨끗하고 파란 하늘', '회픈에 불던 쌀쌀하면서도 다정한 바람', '비크 숙소에 차 파킹할 때 들었던 노래', '스네이스펠스 가면서 찾아 들었던 노래', ‘선글라스 안 벗고 어둡다고 긴장했던 터널같은 어둠’같이 모든 것의 기준이 아이슬란드였다. 심지어 여행권태기가 올 정도였다. 가서 뭐하나, 봐서 뭐하나, 이미 아이슬란드에서 다 보고 온 것을. 주위 사람들의 여름휴가지도 부럽지가 않은거다. 가서 뭐하나 우리는 지구 티끌인 것을. 세상만물이 즐겁지 않고 심드렁한 걸 보니 아, 이래서 아이슬란드 정부에서 나서서 사람들에게 우울증약을 지급하다는 거구나. 또 이렇게 그 곳에 대한 이해가 한움큼 늘어난다.


이 완벽한 여행기억이 훼손될까 주저됨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꼭 한 번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1. 어디에도 없을 감사해 마지 못했던 이 날씨

 시차적응으로 헤매던 도착 다음날, 일찍 일어난 김에 나선 레이캬비크의 한 베이커리 점원은 말했다. ‘너희 정말 운이 좋다! 지난 2주동안 매일같이 비가 왔는데 말이야!’


 스카프타펠 빙하투어 중에 잠시 쉬는데 가이드에게 어느 분이 물었다. '오늘 날씨는 좋은 편인가요?' 적지 않은 돈(인당 10만원남짓)을 주고 하는 투어인큼 내가 지금 하는 이 투어가 평균보다 더 나은 컨디션에서 이뤄지는 것인지 확인 받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 사실, 그리 맑지 않은 우중충한 날이라 다소 맥이 빠졌던 것도 사실인데 이런 질문을 누군가가 해준다니 그 대답이 궁금해 귀가 쫑긋해다. 들려오는 답은 'perfect weather'. 눈 비 뿐아니라 바람때문에 투어가 취소되는 일이 허다한 이 곳에서 바람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날씨는 없다는 말에 '와! 지금 비걱정이 아니라 바람걱정을 했어야 했던거구나' 싶었다. 비바람 걱정 없이 온전하게 즐긴 맑은 하늘을 덕에 마지막 날에 스나이스펠스 반도까지 다녀올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날씨요정이 우리를 보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 이 곳에 다시 온다고 한들 이 하늘을 또 만날 수 있을까.


2. 나를향해 손짓하는 링로드 북쪽의 남성형 볼거리들

 7박 9일이라는 다소 짧은 일정에 우리는 과감하게 링로드의 북쪽을 포기했다. 이제 가면 언제 가나~ 타령을 하며 욕심을 내보기도 했지만, 운전이 서툰 와중에 신밧드와 걱정인형 2명의 조합은 안전제일을 외치며 남쪽을 여유를 갖고 샅샅이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샅샅이라고는 했지만 그럼에도 인랜드는 꿈도 안 꿨다 ^^) 도로에서 만난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들을 보면 그 풍채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모험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에 딱이었다. 바위도 으스러뜨릴 수 있을 바퀴크기하며 흙먼지를 잔뜩 묻힌채로, 때로는 빗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그 위용은 정말이지 절로 어깨가 숙여지는 모습이다. 물론 북쪽에 남겨둔 그 곳들도 마찬가지다. 저세상 폭포의 모습이라던 데티포스와 고다포스, 절대 놓칠 수 없지.

이런 곳을 두고 왔으면 돌아가는 게 인지상정 출처는 인스타그램 @guidetoiceland


3. 그리고 또 다시 이 사람들

오프로드주행 중에도 오류없는 네비게이션 기능만 탑재한다면 가히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람들과 다시 한 번 여행을 꿈꾼다. 숙소 정하자고 만나면 몇 시간이고 숙소 이야기만 하다가 결국 다 예약하고 칼국수 때리고 헤어지는 쿨함이 있어, 가서 입을 옷을 사러 나서면 주구장창 등산아우터만 입혀보고 입혀주던 고집이 있어, 철썩이는 파도만으로도 오장육부 끊어질 듯 웃어대는 헤픔이 있어, 피곤함에 코골고 이갈아도 밤새 눈길을 걸어 어쩌냐는 문학성이 있어, 뽀글이 만들어먹자고 실컷 준비해놓고 봉지라면을 사방으로 뜯어버리는 위트가 있어, 배 안고프다고 하면서 도시락 쌀 때 햇반 절반으로는 어림없으니 나눠먹으려면 둘이 먹으라던 강단이 있어, 연어 자르라면 말없이 잘라내는 잔인함이 있어, 트렁크에 손도 못 댄 한식이 많은데 마트가서 만두부터 사는 식탐이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음악 볼륨을 올려대는 흥이 있어 더욱 값지고 복되었던 순간들이다. 그리고 우리사이에 흐르던 적당한 세기의 바람과 적당한 폭의 거리가 가능했던 나의 이야기들. 오해하지 않고 오해받지 않는 수용과 이해의 온도는 이 추위를 뎁히기에 충분하다.

 



 첫 날, ‘이번 여행을 통해 '유용함의 무용함'을 느끼고 가겠어요’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역시 유용한 것은 유용한 것임을 느껴버리고 돌아왔다. 구글맵이 그렇고, 레토르트 식품이 그렇고, 도..돈이 그렇다. (카드사 사랑해요, 우리 회사 사랑해요)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건가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도 우울한 울컥이는 시간들을 이 여행을 바라보며 많이 삼켜냈기에, 오히려 이 여행을 다녀와서 막막할 거라 생각했다. 다소 헛헛하기는 해도 나는 괜찮다. 모든 것이 다 괜찮았던 그 곳에서 일희일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배워왔기 때문일지도.


 그 곳에서 어떤 노래를 들을까 고심했을 때도 이런 쌀랑한 바람이 불었던 것 같은데, 이 여행의 기록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제법 쌀랑한 바람이 분다. 우리 이 여행의 기억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노래처럼 영원히 잊혀지지 않았으면, 삶이 퍽퍽할 때 하나씩 꺼내먹어도 평생 닳아 헤지지 않았으면.


고마운 아이슬란드,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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