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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Oct 11. 2019

오로라 없이도 괜찮을까요?

epilogue. 오직 여름의 아이슬란드만이 뿜어낸 것들


오로라. 마치 로리타를 발음할 때처럼 혀끝에서 아롱지게 여운을 남기고 가는 오로라. 그런 오로라를 봤냐는 질문은 아이슬란드로 떠났을 때, 돌아올 때 수도 없이 무조건반사로 딸려왔다. 한여름에 갔으니 오로라는 포기하고 간 셈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단연코 여름에 그 참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남긴다.



 1. 해가 길다.

하루를 이틀처럼 쓴다. 특히 6월 아이슬란드의 해는 일년중 가장 길다. 오후 4시면 해가 질까 일찍 나서야 하는 겨울과 다르다. 한밤 중에도 환한 산과 들을 만끽할 수 있다.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 사이를 활주했던 실프라 빙하 스노클링도 여름이라 가능했다.


  나는 일 년간의 러시아 유학 후로 흐린 날씨를 좋아한다는 말은 잘 믿지 않게 되었다. 잠깐 센티멘털한 무드를 즐길 수야 있지만 기분에는 일조량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걸-사람은 태양(비타민D)의 노예라는 걸 그곳에서 체득했다. 모스크바의 여름, 새벽 2시까지 선홍색이었던 해 덕분에 쌓은 싱그러운 추억들이 떠오른다. 대신 여름이 지나가자 성큼성큼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릴만큼 해는 급속도로 흔적을 감추었고 나무들을 꿀떡꿀떡 눕혀버리던 겨울바람은 유난히 잿빛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도 학교가 끝나 밖으로 나오는 오후 3-4시에도 해가 져있었다. 무덤덤한 성격의 사람들도 겨울이면 우울증에 몸살을 앓는다는 곳- 그건 겨울이 일 년의 반절로 길어서였다. 나 역시 잠깐은 그 고즈넉함과 청아한 눈쌓인 풍경을 즐겼지만 날이 지속되자 정반대의 여름을 기억해버린 몸은 무기력해졌다. 실제로 평온해 보이는 아이슬란드지만 겨울이 길어 항우울약이 보편화되어있다는 글을 읽었다. 자정 가까이에도 활주로에 노을을 걸어주던 아이슬란드. 자연비타민 덕분에 우리는 예상보다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자정에도 어둠을 다 내뿜지 않아요


 2. 내륙 구간은 여름에만 문을 연다.

링로드로 불리는 1번 국도 근방은 주요 관광지들이다. 내륙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그만큼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들이 나온다. 수천년을 극락왕생하는 엘프가 살 것 같은 내륙의 협곡들이 있고 이들은 오직 여름에만(6-8월) 개방한다. 우리가 갔던 피야다르글리야푸르 협곡도 6월이기에 가닿을 수 있었다.

장엄 일순위로 꼽힌 피야다르-캐년. 운 좋게도 우리가 간 날은 캐년 개방 다음날이었다


 3. 운전이 편하다.

생각보다 아이슬란드에서는 교통사고가 많다. 미국처럼 길이 뻥 뚫려 보여도 운전 초보자에게는 운전이 녹록지 않은 곳이다. 그 상습 범인은 눈인데 눈길에 바퀴가 박혀 구조를 요청하는 글을 심심찮게 읽을 수 있다. 겨울에 간 지인은 오후만 되어도 컴컴한 밤에 가려 눈치채지 못한 낭떠러지를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도로 사정도 우리나라 같은 평탄한 도로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포장도로라도 굴곡져서 몸이 조금씩 기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다닌 여름엔 특히 운전 초보자들이 다니기 좋았다. (그럼에도 비포장도로에서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지만) 바퀴를 미끄럽게 만드는 눈이 없고 온종일 해가 시야를 비춰주었다.


 4. 지구 형형색색의 땅불바람물마음을 볼 수 있다. 새하얀 설원도 예쁘지만 겨울이었다면 눈이 덮여 단조로웠을 능선들은 그 결이 다 다르고 풀색이 달랐다. 어떤 건 광이 나는 초록빛, 어떤 건 톤 다운된 노을빛, 어떤 곳은 지천에 연보랏빛이었다. 여름의 폭포들 덕분에 녹색도 밀키스색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에 갔다면 케리드 분화구가 가진 마법의 양탄자 같은 융단결 호수와 마그마의 붉은 흙, 고대 문명을 연상케 하는 문양을 낸 기이한 절벽들도, 스나이펠스네스의 하늘하늘 빛나던 물가도 그 진가를 드러내지 못했겠지. 그렇다고 눈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빙하는 만년설이니까. 빙하를 배경으로 대지에 끝없이 수 놓인 라벤더 빛깔의 꽃밭을 본 게 보너스 광경이었을 뿐.

사계절의 색감을 모두 보여준 아이슬란드의 여름


 겨울의 오로라를 보겠다고 이 많은 걸 포기해도 되는 걸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초심자라면 더욱 여름을 추천하고 싶다. 여름에 이 많은 걸 보았으니 다음에 갈 계절엔 오로지 오로라만 보아도 안심이 될 테니까.


나를 찍어주던, 그런 우리를 담아주던 우리들

 이 글을 마치기 위해 사진을 꺼내보는 지금. 나라는 인물을 풍경 안에 오려다 붙인 것처럼 저 곳에 두 다리로 서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오로지 이 글과 사진들만이 그 곳의 being이었음을 증명해줄 물질이 되었다. 내가 난 지구의 일부지만 태양계의

unknown planet으로 느껴지던 곳. 하지만 여기서 단지 만키로도 떨어져 있지 않아.


이번 생애 한번 더 우리와 함께 해줘



어쩌면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우리는 오로라를

핑계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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