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걱정하는 여행의 묘미
여행을 좋아하세요?
글쎄...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새로운 곳에 가는 설렘보다는 가기 전의 계획과 다녀온 후의 일상이 버겁게 느껴졌다. 걱정쟁이인 나는 '지금은 이렇게 행복한데, 귀국날이 오면 어쩌지?' '돌아가면 일이 많겠지?' 하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자고 일어나면 메시지들이 쌓여있다. 혹시 내가 실수하고 온 건 없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또 확인을 하게 되고, 돌아온 뒤에 일들을 처리하려니 그 간의 일들을 파악하기가 쉽지않다. 그러니까 나에게 여행은, 일기를 안쓰고 보내는 여름방학의 마지막 1주일처럼 달콤하고도 괴로웠다.
하지만 이런 걱정뿐인 삶은 고달프다. 무엇을 해도 즐거울 수가 없다. 더 좋았을 과거를 생각하거나 괴로울 미래만 생각할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걱정으로부터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이 아니면 안될것 같아서'. 그리고 이미 커리어와 이직에 대한 고민속에서 이미 걱정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그렇게 큰 맘 먹고 떠난 이 곳에서 걱정은 조금 더 가까워진 만큼 명확했다. 당장에 가야할 곳, 먹어야 할 곳, 찾아야 할 길.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땅과 흙, 산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걱정도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가서 이직을 어떻게 할 지 보다는 당장 도시락을 펼 장소를 찾는게 더 중요했다.
예약한 스노클링을 놓치고 다음 타임을 겨우 예약했으면서도 도시락을 까먹으니 그저 즐거웠던 시간. 눈앞에 닥치는 파도와 달리기를 하는 그 기분.
뻔해져버렸지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도 여행을 좋아해요.
내 고민이 주제넘게 느껴졌던 지구 스케일의 산,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르며 뻥 뚫린 도로를 달리던 기분. 오직 푸른 산뿐인 도로를 6시간 넘게 달리며 누구에게도 말못했던 사연들을 털어놓으며 속시원한 기분. 적어두지 않으면 흘러갈 생각들이 구슬에 꿰인 듯 알알이 모인다. 그리고 출근하며 주말을 떠올리고 퇴근하며 출근을 생각하는 지쳐있는 나에게 지금, 여기는 어떻냐고 묻는다. 걱정과 일상으로 돌아가던 톱니가 멈추고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그렇지만 돌아가고 싶은 기억이 생겼다는 건 인생의 베이스캠프가 생긴 느낌이다. 또 걱정에게 잡아먹힐 것 같아 무섭다면 이 글들을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내 순간에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