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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Oct 04. 2019

끝나야만 시작되는 것들-블루라군에서의 마지막 노을

day7. 하얀 밤의 끝에서 까만 밤을 생각하며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되게,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 만들어달라는 요구사항, 나도 모르게 주문해버린 아이스핫초코처럼 반대되는 것들의 조합은 매력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천온천에 꼭 가보고 싶었다. 목 아래로는 뜨끈하고 노곤한데, 머리는 약간 차가워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적인 느낌말이다.

바로 이곳이다!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이 그런 곳이었다. 케블라비크 국제공항에서 15분정도밖에 떨어져있지않아 이곳에 도착한 여행자들이나 이곳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관광지라고 한다. 게다가 그 따뜻하고 신비한 우윳빛 물과 무료로 제공되는 실리카 머드라니!


스나이스펠스 반도를 뒤로하고 다시 한참을 달려 블루라군에 도착했다. 줄지어있는 관광객들을 헤치고 예약을 확인한 후 밖이 훤히 보이는 무거운 유리문을 열었다. 뽀얀 물에서는 증기가 폴폴 올라왔고 우리 수영복만 입고 나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공기는 쌀쌀했다.


그리고 살짝, 발을 담그는 순간 목욕탕의 온탕보다는 덜하지만 따끈한 느낌이 훅 몰려왔다. 아침부터 오랜 운전으로 지쳐있던 sunnyi님과 dana님도, 뒤에 타서 괜찮았던 나도 우리를 안아주는듯한 물에 몸을 맡겼다.

우리가 바라본 블루라군

상상해보자. 주변은 검은 용암 바위로 둘러싸여있다. 저 멀리 시선을 돌리면 녹색의 산들이 보인다.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백야로 해는 물을 비추고, 뽀얀 물빛은 햇빛을 반사시켜 반짝인다.



지열로 따뜻해진 물들이 팔과 다리를 감싸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맥주를 한 잔 마신다.


뜨끈한 물 속, 얼굴에 닿는 쌀쌀한 공기, 부드럽고 시원하게 식도로 흘러가는 맥주. 투명한 몸으로 둥실대는 해파리처럼, 우리도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는 투명한 마음으로 물의 찰랑임을 느낀다. 실리카 팩을 얼굴에 담뿍 바르고 바보같은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따뜻한 물 속을 가르며 수영도 해본다. 발을 동동거리며 앞으로 여기저기 떠다닌다.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속에서 손가락은 이미 쭈글쭈글해진지 오래인데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블루라군에서 온천욕을 끝내고 본 노을


무엇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을 방해하는 건 오히려 시간이다. 어느덧 백야인 아이슬란드 하늘에도 조금씩 노을이 진다. 우리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현생으로 돌아가는 내일 아침 비행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따뜻한 물 속을 벗어난다. 공항과 가까운 숙소로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노을을 본다.



"그러고보니 우리, 깜깜한 아이슬란드는 못봤네요."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이슬란드의 밤은 어떨까?' 지구적인 스케일의 이곳이라면 우주의 쏟아질 것 같은 별들도 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장관을 보았는데도 짚어보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이 더 궁금해지는 아이슬란드였다

밤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여행을 되돌아보니 그 긴 시간들이 하루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늘 낮이었기 때문에, 밤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떠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분이 느껴졌다. 어둡고 쓸쓸한 밤이 그리워졌다. 신나는 낮만 계속되면 그저 좋을 줄 알았는데. 하루를 정리하는 밤은 생각보다 소중했고 밝은 낮에 무슨 활동을 했든 간에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잠을 자야만 하는 어둠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낮은 밤과 함께 있고 시작은 끝과 함께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가야만 한다.


역시 반대되는 조합은 매력적이다. 너무도 가까운 이야기를 이렇게 먼 곳에서야 느낄 수 있었던 나는 또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길었던 백야에도 해는 지고, 막이 내리면 조명이 꺼지는 것처럼 길었던 우리의 여행도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지며 마무리되고 있었다. 우리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눈을 감듯이 말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노래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창문을 닫아도 계절은 오고
두 눈을 감아도 진달래는 붉고
긴 꿈에 헤매도 아침은 오고
돌아서 있어도 흔들리는 마음

Ever Ever - VOY(feat. 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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