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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Oct 01. 2019

모든 찬란한 것들은 슬픔을 머금고 있어

day7. 신의 한 수, 스나이펠스네스


선생님들, 하루 더 있다 떠나는 거 어때요?


 검은 폭포에 앉아 정취에 젖어있던 5일째 날 문득

sunnyi가 말했다. 마지막 날은 레이캬비크를 다시 둘러보고 블루라군에서 쉬엄쉬엄 온천이나 즐기다 귀국할 작정이었다. 워낙 빈틈없이 여행 계획을 짜던 sunnyi의 즉흥성을 목격한 놀라움은 뒤로하고, 하루 더 머무는 것을 가늠해보았다. 상상만 해도 신이 났지만 비행기 티켓을 미루고 위약금을 내야 하지만 이게 별건 아냐. 급히 숙소를 잡고 성수기라 숙소가 잘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찌어찌하면 잡을 수 있지. 추가로 갈 곳을 찾아보고 후보야 듬뿍하지 여기까지는 수용할 수 있었는데 귀국일이 월요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산통을 깼다. 더는 미룰 여지없이 미어캣처럼 줄줄이 귀를 쫑긋해 서있는 회사 업무들이 떠올라버렸다. 눈물을 머금고 여행 일수를 더 추가하는 건 포기해야 했다.


그럼 스나이펠스네스를 가보는 게 어때요?


 실은 이 말을 듣게 되어 기뻤다. 무리해서라도 일정에 넣고 싶었지만 워낙 빵빵한 볼 데가 많아 일행들에게 부담될까 봐 살포시 넣어두었던 곳이다. 떠날 때가 되자 모두가 천혜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날 레이캬비크 커피 투어-블루라군 사이에 서쪽 반도, 스나이펠스네스를 조심조심 구겨 넣었다.


 이상하게도 난 유독 스나이펠스네스에 오고 싶었다. 사실 이 곳은 서쪽 끝에 치우쳐있어 여행객들이 반드시 찾는 명소는 아니었다. 게다가 단어 그대로 포스(force) 넘치는 폭포들(foss)이 장대한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정립하는데 상당 지분을 행사하는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추천한 장소이기에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무른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 날도 연일 이어지는 구름 한 점 없는 쨍쨍한 날씨. 온화한 회색빛 화산, 푸른 하늘과 같은 색의 바다가 반도에 당도했음을 알려주었다. 이때 짙은의 <백야>가 bgm으로 흘렀다. 며칠을 마주했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들이 가까워오자 우리는 또 한 번 풍악을 울려대듯 환호성을 질렀다.


초청정 하늘과 바다를 복식 호흡.


 이 날의 반도는 해가 말갛게 내리쬐어 산, 절벽, 폭포가 알알이 보였다. 바다를 두른 섬이 가진 고유의 몽환적 풍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아이슬란드를 집약한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감흥에 흠뻑 젖게 되었다. 게다가 키르큐펠(Kirkjufell)의 4개의 폭포들은 우아한 물소리를 끝없이 연주하는 현악 4중주를 연상하게 했다.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피 연간 달력같다

  

  나의 대학교 1학년 축제가 떠오른다. 그날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정문에 선도부가 없음을 신기해하고 교문 외벽을 창살로 가로막지 않아 자유를 만끽하던 신입생이 기억하는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날’이었다. 하지만 그 신입생은 축제의 한가운데에서도 앞으로 이렇게 즐거운 날은 두 번 다시없을 거라고 직감했었다. 밤새 젊음이 무한한듯 노래 하고 춤추며 환희에 젖는 동시에 속을 알 수 없는 아련함이 밀고 들어와 먹먹해졌었다. 그건 아직 미래를 걱정하기 이른 나이에 순도 100프로로 맞는 즐거운 순간이 앞으로 이렇게 결점 없는 단단한 형태로 찾아오기 힘들 거란 예감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환희의 절정에 있게 되면


 아주 황홀한 풍경을 보다 문득 눈물샘이 차오른 경험이 있는지. 스나이펠스네스에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완벽한 자연의 미장센에 도취되었을 때 나는 찰나의 슬픔을 경험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이 온전히 과거로만 기능하게 될 것임을 깨닫는 동시에 두 눈이 알싸해지는 기분. 이 곳에 오래 머물지 않음을, 유랑하는 여행자임을 더욱 직감하게 되는 아이러니다. 어쩌면 감흥과 슬픔은 한 끗 차이의 감정일지 모른다. 한 번을 꼬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때 느낀 슬픔조차도 훗날 이때의 풍경을 또렷한 거울처럼 마주하게 할 반사적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가을방학


  그리고 다시 점심 먹을 곳을 향해 찾아 나서던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 보랏빛을 머금은 새파란 호수앞에 차를 멈추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셋이 물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백두산의 천지가 이런 광경일까. 우리 기분에 보조를 맞추는 듯 차 안에서는 밴드

LANY의 <ILYSB>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I love you baby, so bad so bad.


마지막까지 숨 멎을 듯 아름다운 식사 풍경을 스스럼없이 내어주던 스나이펠스네스. 기억할게.



 먼 훗날 발걸음을 떼기 힘들어질 때 오늘의 아이슬란드를 기억하며 나는 슬퍼질까. 아님 행복해질까.

무엇이든 상관 없다. 둘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안녕. 나의 우리의 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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