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변화

8화. 더 할 나위 없었다.

by sunnyi

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도무지 익숙해 지지 않는 순간 중 하나다. 어른이 된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어른이 되는게 맞는가 싶은데, 말 그대로 웃픈 상황이 되어버린다.


까시밀라, 고급의 끝판왕 @barcelona, spain


바르셀로나에서 바로 그 기분이 들었다. 철들고 싶지 않은데, 영원히 천방지방 방아깨비처렁 방아 찧으며 깔깔거리면서 웃고 떠들고 놀고 싶은데, 왠지 이제 그러면 안 될 느낌. 뭔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전혀 눈치도 못 챘을, 굳이 몰라도 되는 고충을 알아버린 느낌. 또 한 번 웃펐다.


내가 나를 챙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긴장했던 1주일도 지나고, 스칠 때 마다 설렜던 유러피안들도 많이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하는 스페인 10일의 시작이었기에 바르셀로나, 낯설지 않았다. 마음 편하게 시작한 이 도시는 가우디의 도시였다. 가우디가 도시를 살렸다. 정말 가우디가 아니었으면.. 생각만해도 아찔한 도시가 바로 바르셀로나였다.


잊혀지지 않는 파도같은 파란 타일 @barcelona, spain


세상에서 절대 시들지 않는 노란 금잔화를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다. 카사비센스의 금잔화타일. 원래 그 곳에 피어있었던 노란 금잔화를 타일무늬로 넣었다고 하는데, 그 아이디어의 구상에서 실현까지 말 그대로 예뻐서 듣는 순간부터 아련했다. 주위에서 자연환경의 모티브를 건축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정말 보통일이 아니었을텐데. 게다라 흔하지 않은 독특한 그만의 시그니처라 다른 사람들이 비아냥 거리고, 수군거렸을텐데 정말 대.단.하.다. 쑥덕거리는게 무서워 나를 다 지워버리고 투명인간처럼 주위에 흔적없이 녹아들기를 바라는 나와는 완전히 다르구나. 이게 바로 세상을 바꿀만한 차이겠지. 따라갈 수 없을만큼의.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그 시선을 이겨낸 지금의 그 거대한 달콤함은 어떤지. 아차 bittersweet인가.

내가 뿅 간 금잔화타일 @barcelona, spain
완벽했던 구엘공원의 하늘 @barcelona, spain


가우디에서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시간은구엘공원에서의 모든 순간들이었다. 내가 이 하늘의 이 풍경을 보려고 여길 왔구나 싶게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귀에서는 항상 적절한 노래-커피소년의 장가 갈 수 있을까 같은-가 흘렀다. 눈을 깜빡이는 1초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며 쉴새 없이 찍고, 웃고, 걸었다. 그리고 계속 행복하다고 말했다. 바로 그 곳에 행복해서 웃고, 웃어서 행복했던 내가 있었다.


너무 따뜻해서 놀라웠던 사그라다 파밀리에 @barcelona, spain
곳곳이 아름다웠던 사그라다 파밀리에 @barcelona, spain


하루종일 한쪽 귀의 이어폰에서 가이드분의 설명을, 때로는 노래를 들으며 걷고, 보고, 감탄했고 이런 여행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가우디만 보이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우리를 케어하는 가이드분이 보였다. 소싯적 대학생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던 나였기에 마음이 쓰였다. 아 힘들겠다.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설명해 주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힘들어보인건 내가 이제 어쩔 수 없는 회사원이기 때문인걸까. 나는 놀러온거지만 그 분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나도 하고 싶은게 있었던 회사원인데, 저 분도 진짜로 하고 싶은게 따로 있었던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생이었을 땐 절대 몰랐을, 카테고리가 다른 같은 미생으로서의 연대감이랄까. 그런데 그 가이드분, 언제나 웃고 있었다. 50장이 넘는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계속해 업데이트 하고 있다고 했다. 진짜 멋진 프로구나, 자기 일을 사랑하는 프로꾼이야. 예기치 못한 순간에 하나 또 배운다.

걷기만해도 설렜던 5월의 여기 @barcelona, spain


관점의 변화는 곧 역지사지의 개념이 아닐까. 내가 좋으면 남도 좋은거고,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거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자. 일단 눈 질끈 감고 나부터 행복해 지는거다. 최선을 다해 모든 순간 행복해지자. 그리고 내 모든 순간의 작은 행복을 축하해주자.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있는 힘껏 행복하자! 모두에게 sanc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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