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대학을 즐긴 시간보다 회사에서 버틴 시간이 많아져 버린 빼박의 직장인이 되었지만, 돌이켜 보자면 나의 대학 생활은 매우 왁자지껄했고, 행운처럼 좋은 친구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리고 너무 고맙게도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사뭇 비슷하지만 때로는 다르게 내 옆에 있어주고 있다. 누가 대학친구들은 뻥이랬는지 아주 왕꿀밤을 먹여주고 싶다. 이렇게 노는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바보같은 애들이 버젓하게 여기 있는데.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다 가짜라고 말했던 사람들 다 나와. 아주 불꽃딱밤을 놓아주고 싶다. 사회의 회오리 불꽃슛에 정신 못차리고 힘들어서 노래방에서 진주의 '난 괜찮아'를 부르던 나에게 다 지나갈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을 불러주던 멍청이들부터, 커피마시면 조용히 텀블러 하나 내 옆에 놓아주곤 마실 때 마다 자기 생각하라던 블록버스터급 감동쓰나미 제조기, 니 동굴 니가 문 열고 나와야 된다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촌철살인마까지. 돌이켜 보면 동료, 구성원으로서가 아닌 동아리 오빠,언니처럼 돌봐주던 고마운 동기들이 내 곁에 있다.
바르셀로나로부터의 스페인 여행은 동기언니와 시작하여 친구와 끝나는 여행이라 '사람'에 대한 생각이 문득문득 끼어들었다. 혼자왔지만 같이가 좋구나를 매순간 느끼며, 이번 여행은 이렇게 둘이 왔지만 다음 여행은 꼭 반드시 신혼여행이길 바라고, 그 신혼여행을 같이 올 남자-는 언제나 오빠였다. 서른이 되니 오빠 소리가 더 하고 싶다며-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고 미주알 고주알 떠드는데, 꼬마때 만났는데 언제 이런 주제가 우리 수다의 메인을 차지하게 됐냐면서 솔로만세-를 외치다가도 서울 돌아가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자고 의기투합까지 한 건 비밀이지만-삼창을 했다. 아. 재밌다. 난 역시 혼자는 안되겠어. ㅜㅜ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친구들과 하는 왁자지껄한 여행을 항상 꿈꾼다. 한 차에 옹기종기 낑겨타고는 뀰도 까먹으면서 털면 털리는대로 날리는 먼지같은 지난 추억도 되새김질 하는 신나는 여행. 노래도 신나게 부르고, 주유소에서는 소금에 알감자 찍어 먹으면서, 10년 전 노래를 부르면서 10년 전에 노래방에서 췄던 망나니같은 춤을 추며 히히덕거리는 상상을 많이 한다. 그리곤 정말 한 번이라도 갈 수 있을까란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알싸해진다. 그 동안 서로의 안부에 무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매일을 하루처럼 같이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분야의 각자 다들 환경에서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바라는데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내 고충을 이해하며 훅 치고 들어오는 건 사실 매우 힘든 일이니까. 또 전화업무 한 번 하고 나면 내가 지금 무슨 파일을 찾고 있었는지를 까먹는.. 내가 제일 바쁘고 내가 제일 불쌍한 미생라잎이니까. 그래도 지금이 바로 내가 먼저 빠져나가지 못하게 손 꼭 붙잡고, 내가 먼저 나의 지금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외롭게 고군부투하는 혼자의 시간보다 그래도 복작거리는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고 아련한 법이니까 말이다.
여행을 가면서 여행책보다 먼저 챙긴 책 한 권이 과거미화에 전매특허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따끔한 주사 한 방을 놨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에만 집착해서는 안되고 균형잡힌 시간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병수/마음의 사생활) 가뜩이나 옛날 생각을 많이 한다고 친구들이 놀리는데, 어쩌냐 그럼. 지금보다 그 때의 내가 더 행복하고 더 즐거웠던거 같은데. 일단 당분간은 여행의 기억을 기반으로 해서 현재에 취미를 가져 볼까. 그래도 이 현재에 과거의 내 친구들. 내 동기들은 필요 충분조건이다. 아 나의 순수하고 외로운 짝사랑이여. 듣고 있나, 듣고 있다면 응답하라!
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건, 나도 그들만큼이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하게 하는 강한 모티브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 바랄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만큼은 나를 함께하면 즐겁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따뜻한 내 친구들, 언제나 헛헛해하는 내 마음을 넘치도록 채워 준 멋진 내 친구들. 내일은 더 멋진 내가 되어야 겠다 싶은 바로 지금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