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점에 서 있는 패싱
신작으로 이 책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일 때, 하도 많이 들어서 한번쯤 읽은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고전은 역시 고전이고, 고전의 바이브는 절대 모방할 수 없는 것임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무시당하거나, 투명인간 취급받는다의 의미로 생각되었던 패싱Passing은 생각보다 심오했고, 생각보다 이해할 만했다. 두 주인공이 만나는 장소부터가 백인 호텔 라운지 바였으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진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는 궁금했다. 클레어 켄드리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녀는 '패싱'이라는 위험한 일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익숙하고 친근했던 모든 것을 끊어내고, 아마 전적으로 낯설지는 않더라도 분명 전적으로 우호적이지는 않을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으려는 시도에 대해. 예를 들면 출신 배경은 어떻게 설명하나. 그리고 다른 흑인들과 만날 때는 어떤 기분인가. 그러나 그녀는 물어볼 수 없었다. 묻는 맥락이나 말투가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솔직하게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는 질문을 하나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p.34)
패싱을 우리말로 말하자면 무엇일 수 있을까. '백인 인양 행세하기' '백인인 척 하기' 정도가 될 듯싶은데, 이게 다른 사람에게 심각하게 해를 입히는 사기 수준의 것이라면 분명 문제가 되겠지만, 이 책의 단어로 내가 바꿀 수 없는 '얼굴색'으로 인해 차단당하고 단절된 '기회'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는 마냥 패싱을 '거짓말'로 치환할 수도 없을 것이다. '00 인양 행세하기'처럼 00에 나의 워너비인 무엇인가를 대입해본다면 또 다른 말로도 충분히 대체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본다. 패싱에 대해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는 걸까. 결과론적으로 사실이 아닌 거니까 나쁜 것일까, 오류로 뒤범벅된 과정에 따른 결과로 치부하고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한 번도 패싱 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가.
'패싱'이란 게 좀 묘하긴 해. 우린 그걸 비난하면서도 용납하잖아.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기도 하고. 극도로 혐오하고 멀리 하면서도, 눈감아주고. (p.76)
그 밖에
어차피 우리 다 모든 순간에 100프로 진실될 수 없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가정법이 하나의 원동력의 될 수 있기에 패싱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초대한 적도, 환영한 적도 없는 이가 불쑥 나타나 다른 사람을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음이 너무나 이상해 보였기에 이 책이 대체로 불편했다. 싫다고 제대로 말 못 하는 사람, 다 눈치챘으면서 배려하지 않는 사람. 둘 다 너무 답답했던 나는 이제 이 책을 생각하면 racism보다 그 불편한 관계가 더 먼저 생각 날 것 같다. 뭐 그냥 그렇다고.